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ynergist Dec 16. 2018

숏컷만이 탈코르셋의 전부가 아니다

본 투 비 청개구리의 탈코르셋 이야기

대학교 새내기 때의 나를 기억한다. 나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얼굴엔 선크림만 달랑 바른 후 백팩을 덜렁덜렁 메고 학교를 다녔다. 외형만 봐서는 요즘 많은 여성들이 실천한다는 탈코르셋이었다. 성격이 수더분해서 사람들과 금방 친해졌고 입이 걸은 탓에 후배들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오래된 맛집의 욕쟁이 할머니 이미지가 생겼다. 선배들은 종종 말하곤 했다. 너 3학년만 돼 봐라, 화장 안 하고 치마 안 입고 배기나. 근 10년이 지나고 나는 서른을 보름 눈앞에 두고도 여적 이렇게 산다. 하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면, 내가 자존감이 높아서, 혹은 올바른 가치관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부끄럽다. 나는 나 자신을 남성으로 포지셔닝하고 싶었기에 그랬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깨닫기를, 사회는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성공했거나 훌륭한 여성상을 가까이 접한 일이 없었고, 미디어에서도 남성은 멋지게 나오는 반면 여성은 남성을 백업하는 부차적인 요소로 사용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같은 동네에 살던 친척만 해도 아들을 꼭 낳아야 한다며 굳이 없는 살림에 누나 다섯을 위로 둔 막내아들을 봤다. 학교에서도 남자아이가 반장, 여자아이가 부반장을 하는 경우가 잦았기에 어린 나의 눈으로 본 위계서열은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결론을 가져왔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성폭행을 당할 뻔한 일을 겪고 나서부터는, 여성으로 사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아예 남성적인 것들을 습득하는 과정을 겪었다. 치마도 안 입고, 엄마가 머리를 묶어주는 것도 싫다고 하고, 운동을 배우기 시작하고, 욕을 숨 쉬듯 하고, 남자애들하고 더 어울렸다. 그러면 남자들이 나를 동등하게 대해주는 동시에 성범죄의 타깃에서 벗어나게 될 것 같았다.


신체 이미지에 대한 가치관을 확립하는 데에는 미디어도 큰 역할을 하지만 부모님과 가족들의 역할도 아주 크다고 한다. 아빠는 어릴 때부터 외모의 중요성을 나에게 입력시켰다. 너는 예쁘긴 한데 코는 나중에 성형해야겠다, 걸을 때 좀 예쁘게 걸어라, 머리 매직하니까 예쁘던데 또 안 하냐 등등. 엄마는 외모에 대한 지적은 하지 않았지만 행동과 태도를 조금 더 여성스럽게 좀 하고 다닐 수 없냐는 소리를 지겹게 했다. 그놈의 여성성이 뭐라고, 나는 부모님 말 잘 듣는 ‘척’ 하는 본 투 비 청개구리라서 한 귀로 흘리고 더욱 막 나갔다. 대학교 2학년 때 머리를 숏컷으로 쳐 버리고, 탈색에 매니큐어로 빨간 머리를 하고 다녀서 다른 단과대 사람들도 알 정도였다. 슬랙스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패션은 더욱 유니섹스 스타일로 변해갔고, 졸업사진은 위아래 새빨간 바지 정장을 입고 6mm 투블럭을 한 채 찍었다. 부모님은 어느 순간부터 딸년의 지랄을 그냥 다 포기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게 다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었음을 이제 안다.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으면서 여성으로서의 나 자신을 인정하는 법을 알았다. 사춘기 시절 내면의 자아와는 계속 부딪혔었다. 나는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났는데 정신적으로는 남성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나를 세뇌시키니, 내가 선택한 가치관 때문에 성 정체성도 흔들렸다. 나는 사실 레즈비언인가? 내가 아직 나를 잘 몰라서 그렇지, 나중에는 FTM 수술을 하는 게 아닐까? 한편으로는 여성의 2차 성징이 시작되면서 더욱더 혼란이 가중됐다. TV에서 보니까 다들 매끈한 다리를 가지고 있던데, 나도 한번 제모를 해볼까? (남자애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잡지에서 보니까 모델 피부들이 너무 좋던데, 나도 폼 클렌저라는 걸 써 볼까? (화장도 안 하지만) 머릿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떠들듯 ‘아니야, 너는 남자처럼 사니까 다리털이 나도, 피부가 깨끗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야.’ 하는 소리가 계속 맴돌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이제는 그 혼란이 내 그릇된 가치관에서 시작되었음을 안다.




나는 작년 말부터 다시 머리를 기른다. 오히려 코르셋을 조이는 걸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탈코르셋은 사회가 원하는 여성상으로 살지 않는 동시에, 내가 좋고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나름의 해석을 내렸다. 나를 옥죄는 것에서 벗어난다는 게 가장 핵심인 것 같다. 한 번쯤 머리를 길러보고 싶었으나 ‘너무 여성스러우면 안 돼!’라는 그릇된 생각 때문에 실천해보지 못했다. 숏컷 하면 꾸밈 노동에 들어가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여성들은 머리가 빨리 자라기에 한 달에 한 번씩 미용실에 가 줘야 하고, 반곱슬이거나 직모인 경우 제대로 말리고 제품을 사용해 머리를 정돈하는 데 꽤나 많은 시간이 걸리기에 돈과 시간을 절약해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탈코르셋의 취지에 완벽히 부합하진 않는 것 같다. 나는 지금 여행 중이기도 하고, 동양인의 머리를 제대로 손질하지 못하는 미용실에 머리를 맡기고 싶지 않아서 적당히 길러 묶고 다니고 있다. 필요하면 끝쪽 머리는 내가 잘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치마도 입고 싶던 적이 있었다. 학교 졸업하고 나서 치마를 한 번도 나 스스로 사서 입어본 적이 없었는데, 날씬해 보이기 위해서 살을 꽉 조여준다는 스키니진보다는 적당한 길이의 치마가 편한 게 사실이다. 고등학교 때 교복은 플레어스커트였다. 아랫배를 꽉 조이는 주름 네 개를 규칙상 못 트게 했던 중학교 때 교복 치마보다는 확실히 편했다. 여행 중이라 치마는 입지 않지만, 여기서 나는 적당히 헐렁한 레깅스나 반바지만 입고 다닌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스키니진은 절대 다시 못 입을 것 같다. 내 몸에 더 이상 압박을 가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롱스커트를 사면 사겠지.


요즘 넌 왜 탈코르셋 안 해,라고 하면서 페미니즘에 관심 가지지 않는 여성을 오히려 공격한다는 여성들이 있다고 한다. 모든 신념은 자신의 선택과 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누구 하나 강요해서도 안되고 그로 인해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건 한국 페미니즘이 나아가는 길에 뒷걸음질만 치는 꼴이다. 내 가장 친구 중 하나는 예쁜 가방을 사는 걸 좋아한다. 비싼 명품이든, 저렴한 보세 제품이든 가리지 않는다. 그 친구가 어느 날 한탄을 했다. 나는 직업이 디자이너라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것뿐인데, 남자들로부터는 그 흔한 된장녀 소리를 듣는 것도 모자라 이젠 여자들한테까지 탈코르셋을 강요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냐고.




페미니즘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의 ‘우리’는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남성도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불합리한 가부장제와 남녀차별이 남성들에게도 어떠한 악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남 이야기가 아니니, 마냥 거리 두지 않았으면 한다. 최근 유명 래퍼가 페미니즘에 관해 온라인에서 디스전을 벌이는 걸 실시간으로 보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반대 의견을 말하면, 혹시라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의견이 틀렸거나 부당하지는 않은 지 갸우뚱해보기라도 해야 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팩트체크와 자기 검열 없이 내 의견만을 몰아붙이면 안 된다는 건 토론하는 법을 막 배운 초등학생들도 안다. 이건 고집이고 아집이다. 또한 자신이 옳은 줄 알고 평생 살았고, 앞으로 바꿀 생각도 없고 바꿀 이유도 없는 사람들의 변명이다.


추가로, 페미니즘 진영 중 래디컬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나는 그들도 역시 나름의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고, 어느 정도는 그렇게 강경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미러링이라고 해 봐야 하루가 멀다 하고 살인 폭력을 휘둘러 뉴스를 채우는 남성들에 비하면 소소한 수준이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건을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지지할 생각이다. 영화 서프러제트에서 나온 대사가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우리가 돌을 던져서 유리창을 깨지 않으면 그들은 들어주지 않아요.


백인에 맞춰진 아름다움의 기준을 따라 화이트닝 제품을 사고,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데 일조하는 애플힙 운동과 가슴 라인을 돋보이게 하는 브래지어를 하는 등의 삶을 조금씩 버려가고 있다. 나는 빈야드에서 일하는데 살이 좀 타는 게 당연한 거지, 라며 뉴질랜드의 강한 햇빛에 피부가 아프지 않도록 선크림을 바른다. 다리에 셀룰라이트 좀 생기면 어때,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몸매는 나에게 비현실적이라는 걸 아니까 저녁에 하는 요가와 필라테스는 90% 이상 건강이 목적이다. (솔직히 100%라고는 말 못 하겠다. 여전히 군살은 빼고 싶은 욕심이 있다.) 어차피 없는 가슴 더 조여서 뭐해, 괜히 불편하던 브래지어는 벗어버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티셔츠만 걸치고 다닌다. 내 몸과 마음에 조금 더 여유를 주면서, 여성으로서의 나 자신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나 자신도 찾아가려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이가 들면 겁이 많아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