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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Oct 09. 2018

넷플릭스가 주는 고민

의식의 흐름 보소

* 이 글은 18년 9월 18일 블로그에 먼저 작성되었습니다.



아주 시간이 여유로워 중간에 방해받지 않고 긴 호흡으로 1시간 반 내지 2시간 사이의 영화를 즐기고 싶은 날이 있고, 시간을 죽여야 할 때거나 짧은 호흡으로 20분-30분 간격의 시트콤을 보고 깔깔 웃고 싶은 날이 있다. 덕분에 넷플릭스와 왓챠 플레이는 내 카드값 스테디셀러 top 3 안에, 한국의 수많은 편의점들과 함께 오르는 영예를 얻은 소중한 존재다.


한국에 있을 땐 왓챠 플레이와 넷플릭스를 모두 이용했었다. 왓챠 플레이가 영화 평점 앱에서 뻗어나간 앱인 만큼 더 많은 영화를 보유하고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넷플릭스는 자체 제작 컨텐츠가 훌륭하고 여러 종류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왓챠 플레이가 한국 내 아이피만 허용하는 바람에 뉴질랜드에 체류하는 동안은 이용할 수 없고, 넷플릭스는 작년에 잘못된 광고 방식으로 엄청난 반감을 사 구독을 취소하긴 했었지만.



왓챠 플레이는 처음엔 넷플릭스를 베낀 것 같은 앱/웹 UI로 시작하더니 점점 아이덴티티를 찾는 것 같는데, 넷플릭스는 발전이 없다. 넷플릭스 한국지사여 제발 한글 폰트를 다룰 줄 아는 디자이너를 고용하세요.. 썸네일 상태가 정말 심각한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몇 년 전엔 더 했다. 굴림체를 위아래로 110%로 늘리거나 고딕체를 장평 80%로 쓰기도 했으니.. 밀레니엄 초반으로 돌아가 아래한글로 워드프로세서 3급을 딴 초등학생이 만든 것 같았음... 그럴 거면 그냥 원래 포스터를 썸네일로 쓰라고요. 자막은 번역가에 따라 좀 퀄리티가 달라지는 편이지만, 영자막을 볼 때는 (뉴질랜드 아이피를 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자막밖에 못 볼 때도 있다) 이게 자막의 진짜 기능이지,라는 생각이 든다. 청각장애인을 위해 뒤에 깔리는 음향효과들이나 웃음소리의 다양함을 다 텍스트화하고, 아예 말을 하고 있는 캐릭터 아래쪽으로 자막이 깔려서 헷갈림을 방지하기도 한다. 가운데 정렬에 -/-로만 구분하던 기존의 자막으로는 청각장애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짝짝짝.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는, 먹은 다음날의 고통을 알면서도 자꾸 사게 되는 불닭볶음면 같다. 케빈 스페이시 사건 터지기 전에도 하우스 오브 카드는 안 봤고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은 보다 안 맞아서 포기했지만 그 외에 오리지널 컨텐츠들이 너무 재미있기 때문. 가끔 좀 쌈마이로 후려친 저퀄리티 클리셰를 만나면 시발 이것이 대중이 원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자본이 거대해진 만큼 더 많은 감독과 제작자들에게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다. 특히 내가 눈여겨본 것은 CREATOR의 존재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디렉터나 프로듀서가 결정권을 가지고 작품에 큰 역할을 하는 반면 많은 해외 작품들은 크리에이터들이 더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매 에피소드마다 감독이 바뀌거나, 오프닝 크레디트이나 엔딩 타이틀에 디렉터보다 크리에이터의 이름이 먼저 혹은 나중에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겠거니 하고 짐작해본다. 셜록의 마틴 개티스 & 스티브 모팻이 그러하듯이.




요즘에는 코미디를 주로 보고 있다. 웃을 일이 별로 없어서인 것도 있지만 코미디언들의 재기 발랄함과 창의성에 깜짝깜짝 놀라면서 영감을 받는 게 즐겁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개콘이나 웃찾사 등의 극 형식으로 된 공개 코미디에 깔깔 웃으며 코미디언들의 재능에 감탄했었고, 인기가 사그라들면서 그들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것에 안타까워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TV라는 가족 친화적 미디어를 통해 말할 수 있는 소재가 너무나 한정적이기 때문에 코미디 씬이 죽어간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최근의 코미디는 말장난이나 백전백승 분장 싸움, 슬랩스틱으로 점철되다가 그 뻔함과 유치함에 인기를 잃고, 결국 코미디언들이 예능이나 유튜브 등으로 빠지는 것 같다. 그 옛날 심형래 아저씨가 나오는 우리 부모님 세대의 코미디는 똑같은 극형식일지 모르지만 검열이 더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이야기나 사회 비판도 서슴없이 했었다고 하는데, 세상이 진보할수록 코미디는 점점 퇴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 넷플릭스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을 느낀다. 예전에도 유튜브를 통해 루이스 C.K. (인생 망친 사람 이름 많이 나오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를 찾아보긴 했었는데 이렇게 한 시간 내내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익숙한 잭 화이트홀부터 시작했고 신인 코미디언들의 짧은 라인업 시리즈나 베테랑 코미디언들이 한 시간씩 몇 편을 떠드는 시리즈도 보고 있다.


취향저격이라 유튜브에서 관련영상 계속 찾아보는 두 편.


언젠가 본 인터뷰에서 코미디언들은 본인들을 연기 잘 하는 사람들 / 아이디어가 좋아서 코너를 잘 짜는 사람들로 분류를 한다고 했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다르게 분류하곤 했었다. 하나는, 자기가 던진 조크에 빵빵 터지고 관객과 함께 반응하며 목에 핏대 세워가며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는 코미디언들이다. 우리나라 코미디언으로 예를 들자면 컬투 같은 사람들인데, 그들이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다가 웃음을 참지 못해 피식피식 거리거나 풉 하고 터져버리면 그때가 제일 웃기다. 다른 한 분류는, 관객이 앞에서 웃겨서 자지러지거나 미친 듯이 박수를 보내도 세상 뻔뻔히 연기하거나 혹은 엄숙한 장례식에 와 있는 듯 진지하면서 연기의 여백을 잘 살리는 타입. 우리나라 코미디언의 예를 들자면 MBC 코미디언 김완기 씨나 지금은 SNL 작가로도 활동하는 신고은 씨가 있다. 둘 다 진짜 연기 잘 하는데 너무 덜 알려져서 아쉬운.. 넷플릭스 코미디도 쭉 보다 보니 나의 분류로 대충 나눠볼 수 있었는데, 나는 후자들이 하는 코미디에 더 빵빵 터지는 경향이 있다. 어찌나 날카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웃음 포인트를 잡아내는지 정말 혀를 내두를 지경. 전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잭 화이트홀과 러셀 하워드 그리고 코미디 라인업의 미셸 부토, 마테오 레인을 찾아보시고, 후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제임스 에이캐스터와 디미트리 마틴 그리고 지금 웃기러 갑니다의 디온 콜, 베스 스텔링을 찾아보시길. (특히 제임스 에이캐스터는 4편의 레퍼토리 시리즈 다 보고 Written and Performed by James Acaster 뜨자마자 박수를 안 칠 수 없었음. 두 번 봤다. 짝짝짝..) 그들이 코미디 소재로 쓰는 것들도 엄청 다양해서 그걸 보는 재미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금기시되다시피 하는 정치, 동성애, 섹스, 인종차별 등의 이야기로 어떻게 저런 반응을 이끌어내나 하는 마음도 한몫!

개인적으로 시트콤이 다시 황금기를 맞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 옛날 순풍산부인과나 논스톱 시리즈 그리고 잠시 물꼬를 다시 터 준 하이킥 시리즈도 그렇고, 큰 틀을 짜고 코믹 요소를 가미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로는 영애씨가 시즌을 두 자릿수나 넘기며 순항하고 있는 것 같지만 초반 저자본으로 시작된 재기 발랄함은 잃지 않았나 싶고.. 클래식 시트콤인 미란다(전체 시즌 다섯 번 넘게 봄.. 인터넷 접속 안 되는 캠프 사이트에서 볼 것이 노트북에 담아온 미란다밖에 없을 때는.. 이젠 대사도 외울 지경)나, SNL 앤디 샘버그의 브루클린 나인 나인 등을 보면서 시트콤 시장이 줄어든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예전에는 드라마도 많이 봤다. 뭐 지금도 보긴 보지만.. 짧은 호흡의 코미디를 보다 보니 긴 호흡과 착 가라앉은 분위기가 좀 버겁긴 하다. 영드는 넷플릭스 이전에도 워낙 많이 봤지만 피키블라인더스나 콜래트럴, 더 크라운처럼 넷플릭스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된 작품들도 많다. 미드는 워낙 안 봤는데(…) How to Get Away with Murder, 13 reasons why, 슈츠 등.. 미드는 중간에 정서가 너무 안 맞아서 혹은 내게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라서 포기한 게 많다.


잠시 위에서 언급했던 제작진 이야기를 해 보면, 감독이 에피소드마다 바뀌는 건 굉장히 흔한 일이다. 이제껏 나는 좋아하는 연출 스타일의 감독을 발견하면 그 필모그래피를 쭉 훑거나 하는 식으로 작품을 감상했고, 그래서 SJ 클락슨이라는 감독을 알게 됐다. 순전히 데이빗 테넌트 때문에 시즌1만 본 마블 제시카 존스 때문에 기억했었는데 콜래트럴에서 다시 이름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고, 검색해보니 내가 재밌게 봤었던 화이트채플도 그녀의 작품이었으며,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베이츠 모텔, 덱스터 등 넷플릭스 메이저 컨텐츠들을 많이 감독한 사람이었음에... 엄지 척. 이게 내가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작품 제작 환경이었다면, 최근의 작품들은 크리에이터들을 중심으로 이미 탄탄한 이야기 구조가 잡혀 있기 때문에 감독이 바뀌더라도 작품의 질에 크게 영향받지 않고 새로운 연출 방식들을 접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백그라운드 스토리들이 너무 궁금하다. 슈츠로 예를 들자면, 감독이 에피소드마다 바뀌면서 연출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크레딧에 큰 관심 없는 사람들은 느낄 수 없을 만큼 비슷한 씬 트랜지션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문을 열고 닫거나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장소와 상황이 바뀌는) 이런 작은 것들까지도 크리에이터의 관여 부분인가 하는 의문이 있다. 반대로 이지라는 작품을 정말 재미있게 봤고, 각각의 플롯 전개나 연출 방식에서 개성이 줄줄 흘러넘쳐 작가/연출이 다 다를 거라고 예상했으나 조 스완버그라는 감독 겸 작가 겸 크리에이터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기가 막혀 한참 동안 크레딧을 바라봤다.


시즌 간 텀도 신기한 관찰 주제다. 슈츠는(법대도 안 나온 본투비 변호사 마이크가 모든 걸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하는...!!! 반복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질려 더 이상 안 보긴 하지만)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간 텀을 두고 시즌을 방영한다. 각 시즌마다 에피소드들이 10개 이상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기간 동안 대체 어떻게 제작현장이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시의성을 잃지 않는지도 궁금하다. 자본의 힘인가. 우리나라처럼 시청률 봐 가면서 극의 내용을 바꾼다거나 쪽대본이 현장으로 바로바로 날아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겠지,라고 생각해본다.




천직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을 내려놓았다. 오래 일해 본 것도 아니지만 더 늦기 전에 발을 빼고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었고, 그 이후로 돌아가지 않은 지 3년이 되었으니 그나마 퇴사 후 어느 정도까지는 살릴 수 있었던 막내로서의 커리어도 이제는 더 이상 쓸모가 없다. 더 이상 그때의 인연들에게 선배라는 호칭을 쓰지도 않고. 지금 와서 돌아보면 잘한 일인 것 같다. 이렇게 넷플릭스를 보다 보면 미련이 자꾸 튀어나오지만, 워라밸이 박살나서 친구와 가족을 잃고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건 더욱 바보 같은 짓이다. 다 포기하고 돌아갈 만큼 애정이 있지도 않고. 그래서 자꾸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해외 작품들의 제작 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것일 수도 있다.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미련이 나를 이기는가, 내가 미련을 이기는가. 넷플릭스는 그래서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아빠의 담배 같은 존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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