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e Night Conversation
77층 전망대 그다음은 롤러코스터로 스릴 업
여행 첫날이 고됐는지, 호텔 침구가 좋아서인지 엄마와 나는 샤워를 마치자마자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고 다음 날 창문 새로 햇빛이 쨍쨍 들어올 때까지 늘어지게 누워있었다. 엄마는 아침형 인간이라 나보다 조금 더 먼저 일어나 부스럭거리긴 했지만, 가족 구성원 누구에겐가 차려줘야 할 아침식사에 대한 부담이 없고 커다란 더블침대를 혼자 쓰며 뒹굴뒹굴할 수 있다는 점에서 - 지루한 삶에서 잠시 멀어지는 여유를 엄마도 만끽하는 것 같았다.
바깥이 훤히 보일 수 있도록 폴딩도어를 다 제쳐놓은, 호텔 1층 식당 겸 라운지에서 컨티넨탈 + 아메리칸이 다 합쳐진 뷔페식 조식을 먹으며 에너지를 충전. 아침부터 빵과 소시지 등을 먹는 게 부담스럽지 않을까 했는데, 시리얼과 요거트, 후식으로는 과일과 커피 등을 빠짐없이 갖다 먹으면서 새로운 스타일을 즐기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는 역시 여행 전에 마음을 열고 시작하자고 제안한 게 잘 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모시고 댕길까, 아니면 엄마도 함께 계획을 짜겠어?" 비행기 표를 끊고 여행 계획을 세울 준비를 하면서 엄마에게 물었다. 계획을 세우다 보면 정보를 너무 많이 얻게 돼서 정작 도착하면 재미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여행지에 대해 뭔갈 알고 가야 더 흥미가 생기는 사람도 있다. 엄마는 어느 쪽인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아 던진 질문에, 엄마는 '내가 뭘 알겠냐. 어디 한 번 모시고 다녀봐라-'라며 기획을 모두 나에게 일임했다. 나는 점진적으로 스릴을 늘리기로 마음먹었고, 당시에는 다큐를 찍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허황된 꿈... 아아..) 예능에서 제작진들이 출연진을 놀라게 하듯 당일에 계획을 공개하기로 했다.
그렇게 공개된 둘째 날의 일정은 놀이공원 가기. 엄마는 놀이공원의 행복감과 롤러코스터의 스릴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인데, 아빠는 그런 즐거움을 모르고 어린 동생은 무서워하기 일쑤여서 나만 데리고 코끼리 열차를 타곤 했던 기억이 났다. 공개된 계획에 엄마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차를 타고 달리는 몇십 분 사이에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거진 30년 전 놀이공원의 기억 이후로는 거의 없었던, 엄마의 놀이공원 즐기기 시작!
골드코스트 근처에는 드림월드와 무비월드 두 개의 큰 놀이공원이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데, 무비월드는 놀이공원 위주라기 보다 체험형 테마파크에 가까워서 나는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가 많(다고 들)은 드림월드 티켓을 예약했고, 스카이 전망대랑 같이 예매해서 할인을 받았다.
여기에는 Tower of Terror 2라고,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롤러코스터 상위권에 든다는 롤러코스터가 있다. 최고 높이 120m에, 최고 속도는 161km/h인 극악무도한 롤러코스터. 스릴을 즐기는 엄마는 이 롤러코스터를 두 번씩이나 타 놓고도 너무 짧다며 아쉬워했다. 나도 웬만큼 놀이공원을 즐기는 사람인 줄 알았지만, 엄마는 찐(?) 이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형태의 놀이기구들을 몇 개 타고는 속이 울렁거린다며 밖에서 사진이나 찍어주는 나를 보며 엄마는 혀를 쯧쯧 차면서 쉬지도 않고 놀이기구에 탑승했다. 도는 형태가 아닌 것들에는 엄마와 함께 했는데, 평일이라 사람도 별로 없는 데다가 너무 신나하는 엄마를 보며 기구 담당자가 자기도 덩달아 신이 났는지 한 번 더 타겠냐고 권유하기도 했다. Kiwi(뉴질랜드인)들이 순박하게 착한 사람들이라면 Aussie(호주인)들은 약간 더 미국인에 가까운 흥이 있는 민족..
조식이 충분하지 않았을 텐데도 엄마는 쉴 새 없이 기구를 정복해나갔다. 부지가 넓어 시간이 부족할 것이라고 예상했는지, 아니면 배고픔을 잊을 정도로 신이 났었던 건지. 아니면 언제 여길 다시 와 보겠냐는 생각이었을까. 점심을 먹겠냐는 물음에 콜라 한 잔이면 되겠다며 더위를 벌컥벌컥 씻어내버리고는 드넓은 하늘 아래 드림월드 도장 깨기를 이어갔다.
드넓은 부지를 점령하고 (.. 어른용은 다 탄 것 같다. 사실 기구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라서) 우리는 옆 동물원에서 시원한 쉐이크를 마시며 한숨 돌렸다. 호주에 왔으면 코알라랑 캥거루 정도는 봐 줘야지. 오지들과 편안히 시간을 보내는 호랑이들을 뒤로하고 돌아와 시원한 저녁 수영으로 마무리!
골드코스트 왔는데 브리즈번 안 가긴 좀 아깝죠
퀸즐랜드 주의 주도인 브리즈번. 골드코스트에서 차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고 우리의 여행은 휴양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도시를 여행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3일차에는 브리즈번에 가기로 했다. 스릴은 잠시 접어두고 관광객 모드 장착!
조용한 숲과 상쾌한 공기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Botanic Garden부터 들른 후, 도심으로 진입해 Southbank Park를 거닐었다. 화창한 날씨에 가족단위로 놀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고, 여행객들도 행복감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였다. 엄마와 젤라또 한 컵씩을 사서 냠냠 먹으며 그늘에 나란히 앉아 웃고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자니 나에게도 행복감이 전달될 법 했지만, 그 와중에 나는 내비게이션을 잘못 보고 한참 돌아돌아 온 나를 마음속으로 후려치는 개 버릇을 또 시전해서 함께 행복감을 즐기지 못했다. 같이 물에 발 담갔으면 엄마도 행복하고 나도 기분이 풀렸을 텐데, 시간이 지나고서야 후회하면 어쩌겠나.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하라는 어떤 명 트윗이 머리를 스쳤지만 이미 감정에 사로잡힌 나는 끝내 빠져나오지 못하고 젤라또 컵 바닥만 탁탁 긁었다.
브리즈번 시내를 가로지르는 페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열려있다. 한강물만큼 지저분한 강에서 타는 페리가 얼마나 재밌겠어 했지만 차가운 바람이 머리카락을 가르자 마음까지 시원해졌다.
요즘에야 개인이 따로 가지고 다닐 만큼 전동 킥보드가 보편화됐지만, 2019년 1월에만 하더라도 전동 킥보드 공유 서비스를 많은 곳에서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뉴질랜드에서 갓 귀국하기 전에 크라이스트처치에 묵으며 Lime 서비스를 이용해보곤 너무 신나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호주에서도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서 냉큼 전동 킥보드를 타 보자고 제안했다. 두 핸드폰에 Lime 앱을 설치하고 카드 결제를 걸어야 해서 엄마는 이번에도 또 습관적으로 '안 되면 하지 말자'라고 새로운 경험을 쉽게 포기하려 했지만, 발동 걸린 나를 막을 순 없으셈. 신나게 킥보드를 타다가 저녁 먹으러 마켓으로.
지평선 너머로 해가 지고 있는 마켓의 밤거리는 아름다웠다. 마켓의 진가인 여러 매대에서 다양한 음식 먹기를 시도하고 싶었는데, 각자 하나씩 선택 메뉴를 골라서 먹고는 애매하게 배가 고프지도 배가 부르지도 않은 상태에서 엄마는 '너 다른 거 또 먹으면 같이 먹고'라며 또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결국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숙소 근처 마트에 들러 엄마가 좋아하는 과일과 맥주를 바리바리 사서 들어왔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발코니에 앉아 2차 저녁을 시작했다.
Late Night Conversation
"안 되면 괜히 하지 마. (=아니면 말고)"
"너 다른 거 먹으면 또 같이 먹고. (아니면 말고)"
배려하는 말이지만 자신의 의사를 숨기는 표현이기도 하다. 내가 나 자신보다 남의 입장을 더 생각하고 살았던 것이 엄마의 영향일까 가만히 생각해 봤다. 그러다 보니 또 한 사람이 머릿속에 가만히 떠오른다. 올해 초에 돌아가신 나의 친할머니. 할머니는 항상 맛있는 것이 생기면 자식들과 손주들을 위해 입을 대지 않는 편이었고, 그게 못마땅했던 아빠는 웃는 소리로 윽박질렀다. "나중에 또 '그때 나는 못 먹었다' 소리 하지 말고 지금 잡숴!" 마음속으로는 드시고 싶었거나, 혹은 혼자 입이었다면 드셨겠지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게 몸에 붙어버려 자신의 의사를 숨기고야 마는 할머니의 모습에, 자식 된 아빠의 한마디는 지금 엄마를 보는 나의 마음과 같은 곳에서 출발했으리라. 고부 간인 할머니와 엄마는 서로 친하지 않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생각이 달라졌다. 이건 모든 어머니들의 공통점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귀한 사람들이 행복해하면 더불어 행복해지는 어머니들의 마음. 드림월드에서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내 가슴속에 잠시 들어왔다가 어색해져 떠나버린 그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을까. 어머니들의 마음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옮겨가는 의식의 흐름이었다. 엄마의 감정과 생각을 더 잘 헤아릴 필요가 생겼다.
벌써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나이다. 내 친한 친구도 최근에 아들을 낳으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직접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 공감능력이 없는 나지만 친구 입에서 나오던 살아 숨 쉬는 육두문자들과, 한때는 반짝거렸지만 지금은 고단함으로 찌든 얼굴을 보고는 엄마가 된다는 것과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에 대한 막중한 무게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역아들은 나올 때 되면 다 돌아와요~" 하던 의사의 말이 무색하게도, 나는 목이 뻣뻣한 국회의원이라도 될 양이었는지 예정일에도 고개를 바닥으로 처박지 않았고 결국 제왕절개를 통해 3.8kg로 태어났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친구는 말했다. "야 너네 어머니한테 절 한 번 더 해라. 3.8kg에 역아라니.."
그리 넉넉하지 않은 집이었기에 엄마는 다양한 부업과 회사 생활을 쉬지 않고 해 가며 사실상의 가장 역할을 했다. 아빠도 할머니도 일을 했지만 육아는 똑같이 일을 해도 엄마의 일이었던 당시, 나를 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엄마는 나를 업고 백방으로 뛰어야만 했다. 그중 다행은 내가 36개월 되기 전에 한글을 뗀 덕분에 버스에서도 창문 밖 간판을 읽어대고, 사무실에서도 인형을 가지고 혼자 쫑알쫑알 떠들고 놀았던 아이라 사람들의 신기함과 귀여움을 한 몸에 받으면서 이 손 저 손으로 옮겨 다녔기 때문에 엄마가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맥주가 슬슬 들어가자, 그때 이야기를 하며 저 멀리 아득한 눈빛을 하는 엄마를 보았다. 나는 엄마의 자랑거리였다는 점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내 성격은 대체 어떻게 형성된 걸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무래도 부모의 유전자나 환경이 영향을 미칠 텐데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는 것 같지 않았다. 아빠와 비슷하다고 느끼다가도 아 저건 좀 아닌데-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엄마와 비슷하다고 느끼다가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생기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혼잣말로 역시 성격에도 엄마/아빠의 유전자가 반반씩 들어있어서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일관성이 없다며 비꼬곤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자라면서 엄마와 보낸 시간이 더 많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같은 여자 입장인 엄마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성격도 점점 닮아간다는걸. 수많은 예시들 중에 '욱하는' 성격을 들어 보이니 엄마는 "그것만은 안 닮아도 되는데.."라고 또 여성성을 운운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제껏 물렁하게 살다가 당하고만 살았던 내가, 내 안에 잠재하던 '욱'을 발견했고 그로부터 생활이 많이 바뀌었으며 그 긍정적인 변화가 엄마의 성격으로부터 왔을지도 모른다는 열변을 토하자 엄마는 흐뭇한 미소를 맥주캔 뒤에 감추며 "그래도 적당히 욱해"라며 굳이 한 마디를 더 얹었다.
연인과 새벽까지 조근조근 떠들며 서로를 몰랐던 시간을 공유하던 그때, 친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왁자지껄 과거를 회상하던 그때. 밤이 깊어지면 어깨를 덮는 어둠 덕분에, 가면을 쓴 것처럼 편하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질 좋고 속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 이런 late night conversation을 정말 좋아하는데- 내가 몰랐던 한 가지가 있었다. 이제껏 엄마의 시간을 알아가는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는가? 나만 놓으면 끊어질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만 억지로 귀 기울이고 친해지려 했던 적은 있었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을 핑계로 정작 내 곁에 항상 있는 엄마의 이야기는 들어보려 한 적 있는가?
가볍게 먹으려고 사 왔던 맥주가 동날 때까지 우리는 질 좋은 대화를 나누었고, 얼굴이 벌게진 채로 침대에 널브러져 잠이 들었다.
엄마와 딸의 관계는 생각보다 팽팽하다. 서로 애처롭지만 또 못마땅하다.
왜 저러고 사는지 짜증이 난다. 서로 불만은 많은데 또 서로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엄청난 동지가 되었다가도 서로를 가장 서운하게 하는 사람이 된다.
서로를 잘 안다고 믿지만 잘 알지 못한다.
어쩌면 엄마와 딸은 제대로 사귄 적이 없는지 모른다.
같이 산다고 사귀게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둘 사이에 이야기가 있어야 사귐은 성사된다.
책 <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