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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Jun 24. 2020

겨울잠 대신 여행 배터리 충전

놀고, 먹고, 마시고, 운동하고, 생각하고, 글쓰고. 안녕 웰링턴!


페스티벌 즐기기!


3주간 웰링턴 시에서 주최하는 음식 페스티벌을 하는 바람에 오후까지 더블 시프트로 일했다. 각 음식점마다 차별화를 둔 버거 세트는 오전에, 오후에는 코스 메뉴를 즐기며 1-3위를 가리는 페스티벌이었다. 먹는 사람들은 즐겁겠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괴로운 이 페스티벌.. 나는 일할 때 바쁜 상황에 놓이는 걸 굉장히 즐기는 변태적인 사람이지만, 바쁘더라도 내가 자율적으로 체크리스트를 하나하나 지워 가면서 상황을 클리어하는 것과 달리, 손님들이 끝도 없이 밀려와 나의 상태가 결정되는 - 타인에 의해 상황이 좌지우지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다. 팩하우스에서 키위가 끝도 없이 밀려오는 것도 마찬가지였고. 그나마 나는 팩커에서 다른 포지션으로 이동하면서 나 스스로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처리할 수 있는 일을 해서 좋았다.


다들 먹는 시간에 음식을 준비해 주는 일을 하다 보니 이골이 나서, 이 페스티벌을 즐길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같이 일하는 셰프님들이 월요일에 다 같이 시티 다른 가게에서 하는 버거도 좀 먹어보자고 해서 감사하게 따라 나갔다. 드래곤 플라이라는 레스토랑에 가서 버거를 먹었는데, 고기가 아니라 돈까스가 들어있는 게 신선했고 코울슬로랑 칵테일 새우랑 잘 어우러져서 맛있었다! 그리고 감자튀김이 아닌 고구마튀김이 나와서 더 좋았다. 각 레스토랑의 아이덴티티도 보여주고, 사람들도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좋은 페스티벌인 건 확실했다.


셰프님들이 뚝딱뚝딱 만들어낸 부대찌개와 폭립 튀김.. 


비가 오던 주말에는 또 함께 저녁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셰프님들끼리 쉐어하는 플랫에 초대돼서, 데킬라 한 병을 사 들고 놀러 갔다. (뉴질랜드 와서 집 같은 집 들어가 본 것도 참 오랜만이다) 메뉴는 부대찌개와 바베큐/고추장 소스를 묻힌 폭립 튀김! 한국에서 날아온 전복도 버터에 구워 먹고! 진짜 오랜만에 심각하게 포식했다. 요리를 업으로 하는 분들이니, 그냥 뚝딱뚝딱 먹을 것을 만들어내 세상 신기해 죽을 뻔했다. 좋은 안주에는 술이 빠질 수 없고, 오랜만에 한국인들을 만나 밤샘 수다와 술판을 벌였다. 심지어 수솊한테는 노래방 마이크도 있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국인의 술자리는 노래방으로 마무리했다. 새벽까지 술 먹고 깨 있어 본 것도 참 오랜만인 듯.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는 언제나 즐겁다. 이후에도 이 플랫에 자주 들러 맛있는 음식과 함께 술판을 벌였다는..




마음의 여유를 찾는 덴 운동이 답이야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오후 3-4시에 일을 마치면 저녁에 딱히 할 게 없어서 운동이나 다시 할까, 라는 생각으로 캠핑장 근처 헬스장을 알아봤는데, 19.99불에 아주 알찬 GX 시간표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 첫 주에는 오랜만에 제대로 운동하는거라 몸도 힘들었는데, 선생님마다 가르치는 스타일들이 다 달라서 적응하기 바빴다. 그래도 금방 익숙해지고 나니 끝나고 운전해서 돌아오는 동안 막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역시 사람은 몸을 움직여야 한다. 주말에는 클래스가 없어서 1층 헬스장을 이용하는데, 기구 이용하는 법은 잘 몰라서.. 근육몬들 사이에서 걍 사이클이나 러닝머신 좀 뛰고 온다. 우울에는 운동이 답이다.


나는 주로 저녁 여섯 시나 일곱 시 반 클래스를 듣는데, 매트 필라테스/요가를 번갈아서 할 수 있어서 좋다. 하루는 필라테스로 코어운동 빡세게 하고 다음날은 요가로 심신을 안정시키고.. 문외한일 때는 그저 두 개가 같은 뿌리를 가진 비슷한 운동인 줄 알았으나 이번에 요가를 접해 보니 둘의 성격이 매우 다름을 알았다. 요가는 정적이고 마인드 컨트롤이나 스트레칭에 더 중점을 두는 반면, 필라테스는 원래부터 재활운동에 뿌리를 둬서 자세교정에 탁월하고, 주로 코어운동이라 속 근육을 단련시키려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상당하다. 그래서 하루는 필라테스로 빵빵하게 근육운동을 하고 다음 날은 요가로 심신을 안정시키면 밸런스가 잘 맞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나는 활동적인 운동을 좀 더 선호해서 필라테스를 하는 날이 좀 더 기대되긴 하지만.. 뉴질랜드에 오기 전에도 필라테스를 했었으니, 한국에 돌아가면 지금처럼 필라테스/요가 수업을 번갈아 들으려고 한다.


하지만 운동은 겨우 한 달밖에 하지 못했다. 웰링턴에 (예상치 않게) 3달 있는 동안 너무 늦게서야 발견해서.. 하지만 다시 운동을 하면서 겨울 동안 찌뿌둥했던 몸을 풀어줬고 다시 복근에 조금이나마 힘이 생겼다. 한동안 술 많이 마시고 운동 안 해서 힘들었던 나의 근육.. 이제 자연으로 돌아가면 잔디 위에 내 매트를 펴고 혼자 운동해야 한다. 선생님이 이끌어 줄 때 제일 열심히 하는 나인데.... 여기서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 새로운 운동 스타일과 이제껏 안 해봤던 동작들을 배울 수 있었다. 아우라가 대단한 화요일 요가 선생님은 스튜디오가 꽉 찰 정도로 회원이 많이 오는 수업을 하는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동작 많이 잡아주셔서 감사한 분. 금요일 필라테스 선생님은 첫날부터 정석으로 나의 이름과 몸 컨디션부터 살피고 시작했고 안 오면 찾아주는 너무 친절한 분이라 감사 인사를 하고 마무리했다. 배운 게 많으니 이제는 혼자 응용해야 할 때다. 이제 운동 안 간다고 누워만 있지 말고 자주자주 매트를 꺼내야지.




관조하는 야매셰프, 나의 과거와 미래는?


쉬는 날 캠핑장 근처 Whitireia Park 가서 글 쓰고, 생각하고, 책 읽고, 노래 듣기의 반복


약 3개월, 추운 겨울을 웰링턴에서 보내고 조금 따뜻해지길래 얼른 남섬으로 내려갈 계획을 짰다. 한 곳에서 오래 정착하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다시 시작할 캠퍼밴 여행에 두근! 날짜를 정하고 페리를 예약해놓고 나니, 일할 때 너무나 가벼운 마음에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비록 내 평생직장이 아니지만 남의 돈 받고 일하는 거니까 책임감을 가지고 해왔는데, 그래도 마냥 매일 똑같이 일하는 것보다는 끝이란 것이 보이니 한결 개운하다. 마치 게임 퀘스트처럼 엔딩이 정해져 있는, 프로젝트성 일에 적합한 사람인 것 같다. 일도 손에 많이 익었고, 음식 준비도 이것저것 도와주다 보니 야매셰프가 된 것 같은 느낌. 사실은 서당개에 가깝지만.. 하지만 내가 해 보지 못한, 해 볼 일 없었던 경험들을 하는 게 신기하다. 이제껏 한 번도 요리에 대해 관심 가졌던 적이 없고, 내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았었는데 키친에서 일을 하다니. 대체 내가 언제 대량으로 버섯을 썰어 보고.. 헴버거 패티를 두들겨 보고.. 비건 패티를 위한 두부를 짜 보고.. 계란을 한 판씩 까 볼 일이 있는지. 어깨너머로 셰프님들을 보며 많이 배웠다. 한인 잡에 대해 걱정을 조금 했었지만, 내가 직접 경험해보고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었으니 일 자체는 후회가 없고, 적당한 때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생각이 협소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사진작가 Sean Tucker 유튜브를 보다가


나는 나를 내향적이라고 정의하면서도 동시에 내향성 인간의 특징인 관찰력, 섬세함, 심사숙고의 능력 등을 가진 적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여기서 일하면서 내향성 특징들을 발견했고, 더불어 스스로 싫어했던 나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생각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남의 눈치를 보는 것. 어릴 때부터 주변 상황에서 한 발짝 멀어져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관점을 바꿔 보니 조용히 상황을 관조하면서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어느 조직에서나 그래 왔는데, 상황을 지켜보면서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고 어떤 점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에 대한 솔루션을 계속 머릿속에 시뮬레이션하던 기억이 있다. 겉으로는 티 내지 않고 입 밖으로는 내지 않으면서 속으로만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시스템의 부조리함을 느끼고 해결방법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혹시 전략 쪽에 재능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Whitireia Park의 워킹 트랙. 해질 무렵에 가면 선선하고 좋다


모든 일에 관여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남에게 일을 못 맡기는 것, 그러다 보니 혼자 일하고 혼자 힘들어하고 불만이 쌓이는 것, 하나하나 발을 담그려고 하니 전체를 보지 못하고 협소한 시야를 가지게 되는 것, 바쁜 상황이 되면 오히려 신이 나서 본인이 해결사라고 믿으며 등판하는 것, 완벽주의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충 하면서 겉으로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 문제 상황이 생기면 말을 횡설수설하며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 이 상황만을 회피하려 하는 것, 대담한 척 하지만 실제로는 소심해서 계속 눈치를 보고 머릿속으로 예상되는 상황을 계속 시뮬레이션하는 것... 이것이 20대 초반까지의 내 모습이었는데, 불행히도 내가 이런 점들을 파악하지 못했을 때는 한 집단의 리더로 있을 때였다. 덕분에 나는 후배들에게 가르쳐준 것이 없고,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거나 근본을 해결하지 못했으며, 인기나 명성으로 자리를 유지했던 리더였다고 자기 평가한 후 이런 특성을 1부터 10까지 강제 개조하는 과정을 계속 겪고 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하지만 창피한 건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잘나도 모든 걸 잘할 수 없으니 파트를 나누고 전문분야를 만드는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모든 건 다 욕심이 문제다. 그때의 내가 욕심이 많아 놓친 것이 많았듯이. 그런 나를 유리병에 집어넣은 것 같은 사람을 보았는데, 덕분에 그때의 내 잘못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기본적인 것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서로 간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팀워크에 갭이 생기고, 리더가 제대로 팀을 이끌지 못하는 동시에 팀원들의 입이 막히면 산으로 가는 배를 맥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다. 실력이 좋으면 경쟁자가 생기고 인성이 좋으면 조력자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믿을만한 조력자가 생기는 건 천운이라고 쳐도, 적어도 지킬 건 지키고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은 알아야 한다.


이제 웰링턴의 바다와 노을도 안녕~


추석 연휴를 맞아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안부 카톡을 보내다가, 엄마의 권유로 동생과 엉겁결에 긴 카톡을 주고받게 됐다. 둘이 같이 자취하면서 얼굴을 보거나 이야기할 시간도 없는 어색한 남매지만 가끔씩 이렇게 일이 생기면 카톡을 한다. 내년쯤 회사를 그만두고 청년창업을 계획하고 있다는 동생의 말에 이제껏 해 왔던 대로 현실적인 조언을 해 줬다. (엄마는 기 좀 그만 죽이라고 했음) 세 살 어린 남동생은 현실감이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생각이 많은 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십 대 중반인 동생을 나는 아직도 너무 어린아이로만 여겼던 모양이다.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면서 적당히 벌고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나와 달리,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며 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노후를 위해 돈을 많이 모으겠다는 목표가 확고했다. 돈이 목적인 동생은 세속적이라는 비판을 받을지는 모르지만 아주 현실적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고, 나는 서른을 눈앞에 뒀으면서도 뭘 하고 싶은지를 아직도 찾아 헤매는 이상주의자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최근에 조승연 작가가 프랑스 사람들과 문화에 관해 쓴 <시크:하다>를 읽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주 35시간만 일을 한다는 것에서 많은 차이가 있지만...) 직업 그 자체보다는, 일을 해서 버는 돈으로 향유하는 취미생활에 더 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일을 수단으로 생각하면 크게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하루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터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고민이 많아지는 밤이었다.


언젠가부터 각자가 처한 모든 문제는,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뿐이라는 깨달음이 있었다. 내가 지금 처한 문제, 동시에 외면하고 있는 비겁한 사실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있지만, 똥을 치우기는 싫다’는 것이다. 한국 조직에서 수직적 구조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막내 생활에서 주어지는 ‘덜 중요한 일’, ‘내 직무와 관련 없는 잡일’을 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다고 자신을 위로하고 위로 올라갈 때까지 버텨야만 하는데 나는 그게 싫었다. 생활이고 친구고 가족이고 다 내팽개치고 나를 괴물로 만들어 가면서 결국 마지막에 얻을 것이 연차가 쌓인 직급뿐이라면 더욱 할 이유가 없었다. 수직적 구조도, 내가 잘못하지도 않은 것에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도, 팀 프로젝트인데 선배들 몇 명만 진행사항을 알고 있어서 관련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는 막내 생활이 끔찍하게 싫었고, 그 짧은 기간이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요즘에도 가끔 꿈에 나오면 울면서 일어난다. 10이 조직 위에서부터 내려오면 할당받고 할당받고 할당받아 1.5를 하느니, 10을 동일하게 1씩 나눠 맡아 처리하는 구조에서 일하고 싶었다. 불가능한 일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막내로 일하는 것이 정신적 체력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이런 불합리들이 고쳐지지 않는 한 나는 회사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면서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발버둥 치는 중이다.



페리 타고 남섬으로!


정착하면 정체되고 모든 것에 금방 질리는 나는 남섬이 기대된다. 새로 일을 시작해도 적응이 끝나면 금방 지루해지고, 취미가 생겨도 천천히 즐길 줄 모르고 미친 듯 달리다가 어느 순간 딱 손을 놓아 버린다. 그래서 캠퍼밴 여행이 잘 맞는 것 같다. 이제 다시 시작할 생각에 들뜬다. 3시간 걸려 페리를 타고 남섬에 간다는 것이 마치 새로운 나라로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3개월 간 정착했다가 다시 떠나려니 기대감과 흥분도가 높아져 간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삶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매일매일이 다른, 내일이 기대되는 생활을 할 수는 있으리라. 여행 배터리를 양껏 충전했으니 이제 다시 떠나야지. 



*2018년 블로그에 작성했던 글들을 재구성해서 올리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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