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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Jun 26. 2020

캠퍼밴 생활 중간점검

캠퍼밴 여행 1년을 바라보며


웰링턴에서 한인들을 만나 캠퍼밴에 산다고 하면 참 특이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뉴질랜드는 캠핑장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캠퍼밴 여행이 굉장히 흔한 데 비해, 우리나라 워홀러들은 이렇게 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댓글로도 캠퍼밴에서 어떻게 사는지 많이들 궁금해한다. 다들 한 곳에 정착해 집과 일을 구해 돈을 벌고, 번 돈으로 여기저기 여행을 하는 동안 차에서 지내는 경우는 있어도 아예 대놓고 캠퍼밴에서만 지내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는 뉴질랜드에 오기 전부터 아예 캠퍼밴에서 1년을 지낼 작정이었기에, 이왕 할 거 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해 보자는 생각으로 중고차 구입부터 개조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혼자 이 차를 바꿔나갔다. 캠핑도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 없으면서. 훗.



중고차를 사고, 캠퍼밴으로 틀만 개조한 이후 내부는 천천히 살면서 조금씩 고쳐나갔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일단 여행 출발!





아름다웠던 푸케누이의 여름. 이불 하나로도 충분했던 그때,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창 밖으로 뜨는 해를 바라보고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날 수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바닷가에 가서 차를 뒤로 대 놓고 트렁크 연 채로 침대에 (그때까진 매트리스도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요가매트 하나만 깔고 지냈다) 누워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여기가 천국이지!






약간의 보수 과정! 베드 프레임을 짤 때 계산 실수로 중간 다리가 약간 길어진 데다가, 맨날 차 뒤에 앉아있다 보니 경첩 부분이 헐거워져서 새로 드라이버와 경첩을 사서 착착 달아줬다. 그리고 4월까진 따뜻한 날씨여서 괜찮았지만 푸케누이를 떠나고 슬슬 떠돌이 캠퍼 생활을 하다 보니 프라이버시가 중요해져서, 천을 사다가 손바느질로 커튼을 만들었다. 다른 대형 캠퍼밴들처럼 직사각형 모양의 차가 아니다 보니 창가가 약간 기울어져서 커튼을 어떻게 고정시켜야 하나 한참 고민하다가, 벨크로를 붙이고 운전할 때는 뗐다가 밤에는 다시 붙이기를 반복했다. 



전기를 사용하자고 배터리를 낭비할 수는 없는 일, 웨어하우스에서 가든용 꼬마전구를 사서 달아 밤을 의지할 불빛으로 삼아 생활했다. 태양광으로 충전하는 방식이라 배터리를 자주 갈아줄 필요는 없겠다 해서 냅다 질렀는데, 날씨가 워낙 변화무쌍하고 차 안에 두니까 해를 제대로 보지 못해서 효과가 영 없었다.



4월에 한국에 잠시 다녀올 일이 있어, 인터넷으로 캠핑용 꼬마전구를 5000원에 득템했다. 세상에 역시 메이드 인 코리아! 블루투스 스피커로 재즈를 들으며, 디퓨저에서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향으로 가득한 차 안에서 책도 여유롭게 읽을 수 있다.



친구가 선물해 준 드림캐처와 한국에서 가져온 썬 캐쳐. 햇빛이 비칠 때 반사하는 빛들로 차 안이 영롱하게 빛난다. 눈으로 빛을 좇으면서 차 뒤에 누워 하늘 바라보기 최고!



마침 날씨가 점점 추워져서 캠핑용 침낭과 따뜻한 블랑켓을 하나 더 샀다. 벨크로가 떨어지기 시작해서 다른 방법을 생각하다가 엄마가 겨울에 창문에 뽁뽁이를 붙여서 단열을 했던 걸 떠올렸다. 가든 코너에서 대용품을 찾다가, 요가매트를 발견하고 덥석 집었다. 창문 모양으로 잘라 양쪽에 벨크로를 붙여주니 완성. 단열도 되고, 프라이버시도 지켜주고, 커튼보다 더 창문 쪽으로 가까이 붙일 수 있어서 실내가 좀 더 넓어진 기분이 든다. 그렇게 한 단계 업그레이드. 빛이 차단된 후에는 한참 영화와 와인을 끼고 살았다. 



그러다 결국엔 매트리스를 구입했다. 사실 요가매트가 있기도 하고 어차피 한국에서도 바닥 생활을 했기에 별 상관이 없었는데, 점점 추워지면서 차 바닥에서 한기가 올라오는 데다 나중에 캠퍼밴 팔 생각을 하니 매트리스가 있는 게 좀 더 수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에 살 거 진작 살 걸 그랬다고 후회했음. 웨어하우스에서 스펀지 매트리스를 구매해, 주차장에서 바로 포장 뜯고 내 베드 프레임 사이즈에 맞춰 자른 다음 차 안으로 들였다. 세상 편안. 



원래 매트리스 덮개 색깔은 사진에 살짝 보이듯 알록달록.. 너무 정신사나워서 매트리스 커버도 손바느질해서 만들었다. 커튼을 만들까 싶어서 샀던 테이블보가 있었는데 안 쓰고 구석에 처박아뒀다가 꺼내보니 사이즈가 딱이길래 바닷가에서 후딱후딱 자르고 재고 꿰매서 만들어냈다. 나는 원래 무채색을 선호하기도 하는데 어쩌다 보니 침구도 그레이 커버도 그레이라 깔맞춤 한 것 같네. 부지런하게 매일매일 침구정리를 한다. 물론 비가 오면 안에서 개야 하지만 대부분의 아침 시간을 들여 침구를 밖에서 털고 깨끗하게 접어 다니기. 천성이 막 어지르고 그런 성격이 아니라. 아래쪽 수납공간에는 여전히 많은 것들이 꽉꽉 차 있고... 왜 이렇게 짐이 점점 많아지지?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다른 캠퍼들에 비해 별로 없는 편이다. 






캠퍼메이트 앱 짱!


떠돌이 캠퍼 생활은 계속됐다. 어떻게 씻고 어떻게 뭐 해 먹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처럼 self-contained (화장실과 키친 시설이 되어 있는 캠퍼밴. 깨끗한 물과 오수를 담을 통을 따로 구비하고 시설에서 인정을 받아 셀프컨테인드 스티커를 받으면 된다. 사진 참고)가 아닌 경우 돈을 내고 홀리데이파크에 묵거나, 기본적인 화장실 시설이 되어 있는 프리 캠핑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다. 나는 캠퍼메이트라는 앱을 이용하는데, 여행자들을 위한 정보뿐만 아니라 이런 숙박시설이 어디 있는지도 알려주고 리뷰/구글맵 연결이 바로바로 잘 되어 있어서 좋다.


홀리데이파크 키친 vs 노상 키친 (ㅋㅋ)


non-self contained를 위한 홀팍을 찾아가면, 공용으로 사용하는 키친과 화장실/샤워시설이 있으니 호스텔 같은 숙박시설과 다를 게 없다. 무료 캠핑사이트를 이용하는 경우는 화장실은 공용으로 사용하고, 가끔 있는 피크닉 테이블에서 내 캠핑용품을 사용해 음식을 해 먹곤 한다. 



아침에 바닷가에서 눈을 뜨고 물을 끓여서 뜨는 해를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것이 정말,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행복했다. 프리 캠핑사이트 같은 경우 제한 이용 기간이 있어서 천날만날 이용하지는 못하고.. 샤워시설도 역시 캠퍼메이트 앱으로 검색하는데, 주변에 수영장이나 헬스장 같은 시설이 있으면 대부분 핫 샤워를 2-3달러 정도에 이용할 수 있게 해 준다. Hot and Unlimited.. 크으.. 그냥 동네 목욕탕 간다고 생각하고 수건이랑 샤워 바구니 들고 가면 된다. 숙박비도 아끼고, 자유롭고, 안 해본 타입의 여행이라 더욱 좋았다.


어차피 와이파이 없고, 데이터 안 터지고.. 이 시간을 함께하는 건 스포티파이 뿐


아늑하고 따뜻한 조명의 밴에 누워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건 정말 천국 같았다. 특히 캠퍼밴 생활이 좋았던 것은 온전한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허락된다는 점이다. 서울에 살 때도 물론 내 방이 있었지만, 동생과 함께 지내기도 했고 옆집 아랫집 간의 소음 등 이래저래 신경 쓸 것이 많아 일을 마친 이후에도 편안히 쉬기가 어려웠다고 기억한다. 그것보다야 뭐 일에 시달려 쉴 시간도 없었지만. 그래서 캠퍼밴 생활이 나에게는 정말 소중하다. 





밤엔 아늑한 내 공간. 침낭+블랑켓 두 개, 베개는 친구가 주고 간 것까지 총 5개다 (ㅋㅋㅋㅋㅋ) 멀드와인도 끓여먹고.
가져간 책이 call me by your name 하나 뿐이라.. 열번은 넘게 읽은 듯


겨울이 되면서도 여전히 바닷가에서 책 읽는 건 계속하고 있다. 비록 날씨가 좋지 않으면 추워서 문을 닫아 놓느라 소리는 차단되지만 철썩거리는 파도는 볼 수 있으니까. 



현재까지의 캠퍼밴 여행 과정은 이렇다. 물론 불편할 때도 있다. 비가 심하게 많이 오면 파워 선 연결 때문에 문이 완벽하게 닫히지 않아 조금 새기도 하고... 또... 음.... 뭐 불편한 게 이거밖에 없네? 생각보다 나는 캠퍼밴 생활에 적합한 사람인가 보다. 



어릴 때 틀에 박힌 생활을 하면서 항상 똑같은 게 지루했는데, 내가 당장 바꿀 수 있는 게 없다 보니 어른이 되면 자유롭게 살아야지 했었다. 그리고 하나 바랐던 건 특별한 게 아니라 특이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개성 없는 삶이 싫었고 그래서 20살이 되자마자 미친 듯이 (하지만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자유를 만끽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았다. 덕분에 가족들과 친구들은 날 포기했지만. 캠퍼밴 생활도 그런 신념의 일부분이고, 그래서 요즘 들어 많이 듣는 특이하네요, 평범하진 않네요 라는 말이 듣기 좋다. 나는 내가 바라던 내가 되어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하핳 이제 곧 봄이 되고 여름이 다가오면... 또 신나게 캠퍼밴 생활을 할 생각에 설렌다. 



*2018년 블로그에 올린 글을 재구성해서 올리는 중입니다.

*다시 올리다 보니 추억이 방울방울. 다시 캠퍼밴 여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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