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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Jul 12. 2020

뉴질랜드 남섬 여행 시작!

픽턴-블레넘-카이코라 지나 크라이스트처치로~


남섬으로 통하는 첫 번째 문 픽턴


픽턴에 도착한 건 10월 1일 밤 열두 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페리 안에서 넷플릭스로 첼시 퍼레티와 존 멀레이니 스탠드업 코미디 두 편을 보고 깔깔거리니 금방 도착할 시간. 같이 페리를 이용한 다른 캠퍼밴과 함께 픽턴과 블레넘 사이에 있는 프리사이트로 달렸는데 하필 공사 중이라니. 다시 픽턴 근처로 돌아와 DOC 캠프 사이트를 이용했다. 남섬 가면 엄청 춥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꽁꽁 싸매고 잤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좋다. 뭐 봄이니까 당연한 얘기지만, 날씨 앱을 켜 보니 기본적으로 15-6도 정도 되는 듯. 정신 차리고 씻은 후 픽턴을 둘러보기로 했다. 픽턴은 페리를 타러 왔다 갔다 하는 여행자들의 거점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블루브릿지 사무실에 정작 블레넘 여행책자는 없고 픽턴 여행책자가 따로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귀여운 키위 엽서.. 뉴질랜드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들이 적혀 있다. Sweet as!


뭐 할만한 게 있나 둘러봤지만 역시 별건 없다. 슈퍼마켓도 그 흔한 카운트다운 파캔세이브 따위 없으며 포스퀘어가 전부인 조그마한 마을이다. 하버 근처로 하이스트릿이 조성되어 있고 오션뷰 카페들이 줄지어 있으며 사이사이 기념품 가게들이 채워져 있는 곳.


에너지바 껍데기가 주는 교훈. If you want something to happen. Go out and make it happen.


근처 공원에 갔다가, 하버로 이동해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오랜만에 오션뷰를 즐겼다. 다시 여행을 시작하니까 웰링턴에서 바다 근처에 갔던 느낌과는 또 생판 다르다. 근처에서 넬슨이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는 히치하이커 커플을 봤는데, 신기하면서도 부러우면서도 나는 히치하이킹 여행은 못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경험에 한계를 두고 싶지는 않지만 카우치서핑과 더불어서 굳이 하고 싶은 여행 스타일도 아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과 말하는 것 그리고 아는 사람과도 스몰톡이 어려운 나로서는 태워주는 운전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할 길이 없을 것 같다.



오후까지 픽턴에 늘어져 있다가 (말 그대로 아이스크림 먹고 뒹굴면서 늘어져 있었음) 블레넘 방향을 향해 아래로 달렸다. 픽턴과 블레넘 사이에 있는 다른 프리사이트를 찾았고 마침 바다 근처라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온갖 잡생각과 그것들을 붙잡기 위해 끄적거리는 메모 그리고 오랜만에 책 읽기로 하루 저녁을 보냈다.
 



빈야드의 천국 블레넘
살며 여행하기, 여행하며 살기



블레넘 초입부터 빈야드가 엄청 보인다. 호크스베이와 더불어 말보로 지역이 와인으로 유명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와인 투어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인포센터 건너편에는 아예 와인스테이션이라는 펍이 있고, 인포센터에 들어가면 가장 크게 비치되어 있는 것이 와인 셀러들을 표시해둔 지도다. 하지만 이렇게 또 와알못은 와인 산지를 그냥 지나치고.. 끝도 없이 심어진 포도나무들을 보자니 헬기로 농약 치는 미국 밀밭이 떠오르면서... 저 끝도 안 보이는 나무들에 랩핑/프루닝 등 일했을 워홀러들을 생각하고 감정 이입하니...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 내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지.


키위캠프 님들 전국으로 확대좀.. 진짜 너무 편하다
불고기 양념 찹스테이크와 맥주!


블레넘에서는 무인 캠프그라운드인 키위 캠프에 묵었다. 키위 캐시 카드/키링을 이용해서 온라인 충전하고 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서 아주 편리했음. 웰링턴에서 끊어놨던 시티 피트니스 이용권도 토요일까지라 블레넘에서 운동 열심히 하고 마지막까지 돈 아깝지 않게 다님. 헬스 끊어놓고 이렇게 열심히 다닌 게 내 인생에 없었던 일인 것 같은데....



타운센터 주변으로 조그마한 개울이 흐르고 있어서, 공원이나 워킹트랙이 아주 잘 되어 있다. 아기자기한 공원에서 멍 때리기.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양이 뛰노는 언덕도 있다.



저녁 다섯 시가 넘어서 개울을 따라 워킹트랙을 산책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반려견을 끌고 나와 산책하며 눈인사를 하거나 안부들을 묻는다. 마치 로컬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햇빛 아래 걷는 산책길. 살며 여행하기, 여행하며 살기. 
 



카이코라 지나 이스트코스트 드라이빙



아직도 남섬 이스트코스트는 지진 피해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픽턴에 도착하자마자 '크라이스트처치까지 SH1 고속도로 재오픈!'이라는 표지판을 봤는데, 달리다가도 여전히 30으로 시속을 줄여야 하는 때가 허다했다. 블레넘 지나 카이코라 근처 해안도로를 달릴 때는 더 자주 그래서, expect delays라는 문구가 전광판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저어기 누워있는 바다표범


카이코라는 동해안에서도 seal이라고 불리는 바다표범? 물개? 가 많이 나타나는 걸로 유명하단다. 중간에 날이 저물어 바닷가 홀리데이파크에 묵기로 하고, 코 앞에 있는 바닷가 산책을 나갔다가 물개를 발견했다! 아파서 누워있는 아이 같았음.. 불쌍. 



4월부터 9월까지 손목시계를 못 차고 다녔다. 서머타임이 끝나서 1시간을 조절해야 했는데 그거 돌리기 귀찮아서 6개월을 가방 속에만 보관했던... 10월이 되자마자 다시 서머타임이 시작됐고 손목시계를 찰 수 있게 됐다. 저녁이 길어져서 캠핑 요리하며 선선한 바람을 맞기에도 좋다. 푸케누이가 생각나서 더 좋고.. 바닷가 캠핑장 바닥에 주저앉아 떡볶이를 해 먹으며 맥주를 마시다, 캠퍼밴 타고 신혼여행 온 한국인 부부를 만나 호빵을 얻어먹었다.. 내가 한국인인 줄 모르고 두유노 호빵 영어로 말을 거시다가 떡볶이를 먹는 걸 보고 아 한국인이네! 하시던.. 그릇에 올린 귤로 작은 보답 했다. 잠깐의 소중한 인연.


바닷가에서의 소중한 아침식사 (미숫가뤀ㅋㅋㅋㅋㅋ)와 필라테스




작은 마을을 지나치지 말자


중간에 들른 호숫가. 물과 하늘 색깔 영롱


크라이스트처치 방향으로 달리다 보니 작은 마을들을 많이 만난다. 큰 거점 도시들에 대한 정보만 많이 알고 가다 보니 작은 마을을 그냥 지나치기 마련인데, Cheviot이라는 마을에 잠시 멈췄다. 포스퀘어에서 식재료만 사려고 들른 마을이었는데, 토요일을 맞아 온 동네 할머니들이 나와서 좌판을 깔고 뜨개질 거리들을 팔거나 하는 소규모 마켓을 열고 계셨다. 마켓이라기보다는 그냥 동네 사람들이 만날 자리를 만드는 게 목표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따뜻한 동네. 한참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근처 바닷가로 향했다. 



타운센터에서 약 15분 달리자 나온 고어 베이. 짙푸른 남태평양이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다. 워킹트랙을 따라 산 높은 곳으로 올라가 뷰를 감상하려고 했는데 나무 덤불에 뷰가 잘 보이지도 않는다. 관광 도시였다면 다 베어내고 전망대를 만들었겠지만.. 철썩거리는 바닷가에서 한참 놀다 돌아왔다.


노을 지는 하늘이 너무나 아름답다. 조용히 혼자 차를 마시고 노래를 들으며 장관을 바라보던 저 날을 잊을 수 없을 듯.


이번에 들른 마을은 그레타 밸리. 사실 마을 자체는 굉장히 작고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캠프그라운드가 마음에 들었다.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테니스코트/필드에 딸린 시설물을 캠퍼들에게 개방하면서 도네이션을 받는 형식이었는데, 깜깜해지기까지 나 혼자밖에 없어서 밥 먹고 노래 부르고 산책하고 그네 타고 놀면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캠퍼밴으로 여행한다는 건 굉장한 시간적/공간적 자유를 준다. 8인실 호스텔에서 묵었다면 나만의 공간은 커튼도 없는 고작 싱글 침대 하나의 크기였겠지만, 나는 캠퍼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다가도 내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면 차로 쏙 들어오면 된다. 겨울을 보내면서 캠퍼들이 많이 없어 좀 심심하긴 하지만..
 



크라이스트처치 도착!


바다가 보이는 뉴브라이튼 도서관


크라이스트처치에 진입하자마자 뉴브라이튼 비치로 바로 달렸다. 마린 퍼레이드를 따라 상점들이 서 있고, 바닷가를 바로 마주 보는 도서관에서는 빵빵한 와이파이가 터진다! 와이파이 빵빵에서 도시를 느끼는 21세기 인간. 
 
여기 크라이스트처치에서나 혹은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이제 일을 슬슬 시작해야 한다. 근데 너무 하기 싫어서 고민 중. 나를 일로 처넣기 위해 여기 있는 동안 타이어를 갈고 한국행 비행기표를 미리 예약할까 생각 중이다. 계좌에서 천불이 빠져나가면 일을 하겠지.....
 
일이 하기 싫은 이유는 하나다. 여기서 농장, 팩하우스, 한인잡을 경험 하면서 (공장이 많다는 크라이스트처치에 왔지만 아직 잘 모르겠음) 단순 반복 노동과 상대적으로 높은 시급이 주는 정신적/물질적 풍요로움을 맛봤는데 이걸로 내 성이 차질 않는다. 결국에 나는 하루에 8시간 이상을 보내는 '직장'이나 '일터’에서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거기까진 좋다. 그런데 생각이 또 투머치로 흘러갔다. 앞으로 한국에 돌아가든 다른 곳에 또 돌아가든 구직 활동을 해야 할 텐데 거기에 관련된 경험을 쌓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새로운 경험이 나의 미래 취업에 도움이 되는가?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결정한 것은 새로운 경험의 지평을 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홀로 여행을 하고, 익숙하지 않은 일들을 해보면서 딱 1년은 현재를 살아보려는 노력이었다. 하지만 또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나를 압도했다. 남은 3개월의 여행이나 일이 ‘나 자신과 1년을 채워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시작될까 봐 걱정이 되는 것이다. 물론 다르게 생각해보면 3개월이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언제 내가 또 워킹+홀리데이의 적절한 밸런스를 누릴 수 있을까. 진짜 일이 시작된다면 스트레스에 치어 죽어버릴 거면서... 매일 운전을 하는 건 좋은데 잡생각이 많아져서 큰일이다. 
 


*2018년 블로그 포스팅을 브런치로 옮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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