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회사에서 나를 구입하려나?
최근에 구직 중인 친구를 도운 일이 있었다. 워드로 작성해 그냥 여기저기 뿌리는 지원 서류가 아니라 기억에 남는 CV를 만들고 싶다며 포토샵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에, 학교를 같이 다닐 때도 너는 컴맹이라며 서로 웃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흔쾌히 작업을 해 줬다. 내 코가 석 잔데 누구의 구직을 돕나, 싶었지만 합격 목걸이를 손에 쥐고 돌아온 친구의 소식에 기분이 덩달아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활발하고 성실한 놈입니다! 아주 튼튼하니 한번 믿고 들여 보세요!
원하는 회사에 나의 상품 가치를 최대한 높여서 팔아야 하는 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직활동의 본질이 아닐까? 결과가 날 때까지 끝이 없다고 느껴지는 이 활동 자체가 곧 나라는 상품을 판매하려는 영업이고 마케팅 일지도. 비록 속은 멍이 들고 곪아 터졌어도, 예쁜 포장으로 감추는 약간의 사기를 가미하는 것. 이런 나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겉 포장에 그려진 그림과 속에 담긴 과자가 아리까리하게 다른 모양인 경우는 허다하다.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을 원하는 곳은 드물다. 사회가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원활한 대인관계, 활발함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 자신감 있는 호감형 인간에 국한되다 보니 내향형 인간은 억지로 외향성을 연기해야 한다. 마케터에서 연기자까지, 구직자는 입사 전부터 멀티플레이어나 다름없다.
이직 또한 그렇다. 우리네 부모님 시절처럼 한 곳에서 운이 좋으면 정년퇴직 전까지 회사에 이 한 몸 바쳐 일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수많은 헤드헌터와 잠재적 고용주들에게 끊임없이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의 이력서가 게임만 같다면 편하겠다. '팀원들과의 협업'이 +1, '프레젠테이션 스킬'이 +1, '엑셀 피벗 테이블을 이용한 정보 정리 기술'이 +1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일을 하며 제일 많이 배운 것은 들키지 않고 뒷담화 하는 법, 애미애비는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낮술 하는 법, 이 더러운 업계 다신 돌아오지 않으리라 저주하면서도 회사 문을 여는 순간 입꼬리를 미간까지 끌어올리는 법인데 말이다.
그런데 또 요즘 대세는 퇴사인가 보다. 엄청난 노력의 결과로 거래가 완료된 직후에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지만, 시간이 흐르며 포장재가 점점 닳으면 보호막을 잃은 병든 속내는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없다. 혹은 주변 환경이 도움을 주지 않을 때도 있다. 고무풍선인 내가 가시 돋친 선인장 사이를 뚫고 사막 길을 걸어야 할 때, 사냥개인 내가 과도한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하게끔 철창에 갇혀 있을 때. 반질반질한 새 상품이었던 나는 온갖 잔병과 회의감, 피곤이라는 곰 한 마리를 업은 중고가 되어 터덜터덜 돌아온다.
어떤 포장 안에 어떤 내용물을 갖추고 있는지, 어디에 팔리면 환하게 빛을 내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지. 나를 파는 일은 평생의 고민이 되겠다. 아마 정답은 없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