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많은 부엉이의 발악
5:50 am, 알람이 울린다.
귀는 이미 잠에서 깼는데 눈은 여전히 꼭 감은 채다. 휴대폰을 충전해 둔 머리맡을 손으로 더듬어 알람을 끄고 한쪽 눈을 가늘게 떠 시계를 확인한다. 일어나야지. 아 일어나기 싫다.... 6시까지 10분만 더? 그럼 영영 못 일어날 텐데.. 그렇게 전기장판의 희미한 온기가 남은 이불속에서 뒹굴던 나는 오늘도 해가 중천에 떠서야 이불 밖으로 겨우 기어 나왔다.
인간의 생리적 욕구에는 의식주를 포함해 수면, 배설, 성 등이 포함된다. 나는 내 욕구 중 수면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따뜻한 옷? 맛있는 음식? 튼튼한 쉼터? 내 수면욕은 다 이긴다. 물론 모든 게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수면의 질이 향상되지만 어쨌든 자리가 바뀌어도 잘 자고, 배가 고파도 잘 자고, 덥거나 추워도 잘 잔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른다고 했다. 중간에 깨서 화장실을 가는 일도 가끔 술 먹은 밤이 아니면 아예 없다.
낮에 15분 눈을 붙여도, 한 시간 렘수면을 해도 밤에 항상 자는 시간이 되면 쉽게 잘 수 있다. 나를 잠과 멀어지게 하는 것은 커피뿐이다. 향은 좋지만 입을 대는 순간 오늘 밤 부엉이가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학교와 회사 생활할 때는 커피를 들이부었다. 당신의 인생에서 시간이 없어서 중요한 걸 못하고 있다면 TV 보는 시간을 줄이라는데, 그땐 줄일 시간도 없거니와 그마저도 일하는 시간으로 대체해야 하니 수면시간을 갈아 넣어야 했다. 나의 가장 중요한 욕구가 파괴되자 일의 효율과 집중력이 떨어진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저 정신력으로 버티고, 쉬는 시간이 생기면 무조건 잠을 잤다. 며칠 밤새고 들어온 날에는 거의 20시간 가까이 자면서 아무런 부가활동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다시 출근한 적도 있다. 다시 생각해도 정신이 피폐해진다.
내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건 나를 돌보는 착한 일과지만,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나는 잠으로 망할 년이라고... 아침의 게으름을 잠시 관대하게 봐주면 금방 재앙으로 발전한다. 주말에 빈둥대며 열몇 시간씩 자는 것도 좀 심한 것 같고, 일에 지장을 주면 큰 문제가 생긴다. 게을렀다기보단 몸이 정상 반응했을 뿐이지만, 회사 다닐 때 수면부족이 쌓여 알람을 놓치고 한번 크게 늦은 이후로는 매일 걱정에 빠져 한두 시간마다 깨기도 했다. 책임감이 수면욕을 이기자 당연히 수면의 질이 크게 떨어졌다. 우울증을 진단받은 이후에도 이런 수면장애 패턴을 계속 보여서 한동안 약을 처방받았다. 애정전선에도 문제가 좀 있었다. 자리는 바뀌어도 잘 자는데 옆에 누가 있으면 못 자니, 예전 연인은 내가 팔베개도 싫다고 하고 등 돌린 채 자니까 서운해하기도 했다. 나는 침대에 한번 들어가면 애정보다 수면이 중요한 사람이지만, 상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때야 깨달았다.
잠이 많아서 돌아버리겠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자 하는 욕망은 항상 갖고 있다. 중학교 때 동네 친구들과 함께 주말 아침 8시에 시작하는 조조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조조할인에 학생 할인, 가끔 통신사 할인까지 받으면 영화값이 3천 원도 되지 않았다. 안 갈 이유가 없었지만 나를 가로막는 아침잠 때문에 항상 약속을 하기 전 고민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겨우 영화관에 도착하면, 팝콘 냄새와 빵빵한 돌비 사운드가 나를 깨웠다. 그렇게 뻑뻑한 눈으로 2시간 영화를 즐기고 나와도 시계를 보면 평소에 내가 일어나는 시간 한참 전이었다.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슬슬 점심이라는 것을 먹으러 집에 가 볼까~' 했던 그때 우리를 머리 위에서 비춰주던 밝은 햇살이 기억난다.
뉴질랜드에서 농장이랑 빈야드 일을 할 때도 좋았다. 실외에서 하는 일은 해가 높이 뜨면 더워서 일하기가 힘드니 일찍 나가서 일을 시작하고 일찍 퇴근한다. 새벽같이 일어나는 건 어김없이 힘들었지만, 3시 혹은 4시에 퇴근하게 되니 왠지 더 많은 자유의 시간이 주어진 것 같았다. 아리까리한 감기 기운으로 선생님의 눈을 속여 조퇴증을 발급받았던 느낌 같은..(?) 일찍 자야 수면시간이 보장되니 밤을 즐기기는 어려웠지만 9시면 불이 다 꺼지고 다들 고요한 하루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분위기에서는 자연스러웠다. 여행하면서 스스로 일찍 일어난 나에 놀라기도. 바다가 보이는 캠핑장에서는 부러 새벽에 일어나 철썩철썩 치는 파도와 뜨는 해를 바라보며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좋았다. 세상은 아직 자고 있고 나만 깨어 있는 느낌이 들어서.
일찍 자도 늦게 일어나는 나! 필시 잠 때문에 망할 것이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 다른 것을 어쩌나. 아침을 늦게 시작하니까 밤늦게까지 깨어있는 패턴을 보이는데 그게 삶의 질에 그다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난 이제 일어났는데 오늘 하루도 벌써 다 가버렸네' 싶다. 사실 남들과 생활하는 시간으로 따지면 똑같으니, 나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인 채로 시계를 본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예술가들처럼 남들 다 자는 밤 시간에 업무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어차피 늦게 일어나는 거 그렇게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해, 한동안 저녁 5시부터 새벽 5시까지 영업하는 펍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었다. 아침에 들어가서 잠을 자고 해가 떨어질 때쯤 일어나 다시 일터로 향하고.. 근데 그건 그냥 똑같은 알바 생활에서 밤낮을 바꾼 것뿐이지, 생활의 질이 올라가는 일은 없었다. 고요한 밤에만 나오는 집중력을 요하는 일도 아니었다. 무역회사 같은 곳에서 타국과의 시차를 고려해 밤에 하는 일이었다면 좀 달라졌을까? 아닐 것 같다. 괜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의 주기에 맞춰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 건강도 정신 건강도 챙기기 어려웠다. 해가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영국 와서도 계속 느낀다. 세시 반에 어두워지고 비가 추적추적 오는 영국의 겨울을 두 번 지나니, 왜 유럽 사람들이 맑은 날 공원 기어나가서 누워있는지 이해가 된다. 내가 이렇게 날씨에 영향을 받는 사람인지, 내 인생에 얼마나 해가 중요한 사람인지 이제야 알게 됐다.
이제 봄이 오면서 해가 좀 길어진다. 비가 덜 오니 아침도 질척거리지 않고 상쾌하다. 볕이 좋은 한낮, 공원에는 친구 연인 가족과 나온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느라 바글바글하다. 그 와중에도 마스크를 쓴 사람은 나밖에 없어서, 환멸을 느끼고 집에 돌아오며 나 모르는 사이 코로나가 사라졌나 검색해본다. 그런 뉴스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으니 동물 동영상으로 마음을 정화시키며,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뛰어볼까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도 역시 실패했다. 사람을 피하려면 오늘은 해가 떨어진 이후에나 나갈 수 있겠다..
과연 내일은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 눈이 뻑뻑하다는 핑계도 그만, 날씨가 흐릿하다는 핑계도 그만. 생각 없이 그냥 몸을 일으켜야 한다. 김연아 전 피겨 선수의 유명한 짤처럼.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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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 @hcatherine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