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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Oct 09. 2018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모든 건 돈이 문제다

* 이 글은 18년 7월 26일 블로그에 먼저 작성되었습니다.



부자 되세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You Only Live Once
최근 강타한 퇴사 열풍까지,


만약 수중에 몇 년간은 벌지 않아도 될 자금을 저축해 뒀거나, 분홍 돼지가 번호 일곱 개를 주는 꿈을 꾸고 로또 1등에 당첨됐거나,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던 주식이 대박 났거나, 부모가 어마어마한 자산가라서 물려받을 재산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는 항상 돈 문제에 얽혀 산다. 작게는 어제 친구가 카드로 다 계산해 계좌 이체해주어야 할 술값부터, 갚아도 끝이 없는 학자금 대출, 전세자금, 사업 대출 등등.. 대부업까지 광고에서 상큼한 노래를 불러대는 걸 보면 빚이 없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로 돈에게 쥐어잡혀 사는 한국사회다. 그 좋다는 여행, 퇴사,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기 등등.. 돈 있으면 도전 못 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막상 회사 때려치우고 욜로족으로 살면서 여행도 다니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도 찾자니, 어찌 됐건 따박따박 로그인했다가 카드값으로 로그아웃하는 월급이 없어질 게 두렵다. 누가 그 좋은 거 할 줄 몰라서 안 하나?



최근 유튜브에서 타투이스트 도이의 인터뷰를 보았다. ‘공부를 하고 대학원까지 나와서 디자인을 하고 있는 이 모든 기술들이 굉장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살았는데, 시간당 페이로 계산을 해보니까 최저임금에 수렴하더라. 돈이 없어서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를 사회가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에 화가 난다.’라고 말하는 영상이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전문지식과 기술을 요하는 대부분의 직종들도 저렇지 않을까. 내 경우를 계산해 봤었는데 최저임금에 수렴하기는커녕, 10년 전 고등학생 신분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 받았던 최저임금보다 적은 돈이어서 충격을 금할 길이 없었다. 나는 디자이너도 아니고 나의 작업들을 입증할 포트폴리오도 없는 분야에서 일하다 보니 남은 게 없다. 학교는 휴학도 오래 했었고 끝무렵엔 복수전공까지 하느라 늦게 졸업한 편이고, 일하다 때려치운 후 방황하느라 경력 안 되는 다른 일들만 하다가 뉴질랜드에 온 지금, 나는 이렇게 능력도 가치도 애매한 서른이 되어가는 건가 라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도이는 또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직장이 금전적/심리적 안정을 주지 못한다면 내가 하면서 행복한 일을 하자’고. 저는 그런 능력도 없고, 하면서 행복한 일이 뭔지도 모르고, 돈도 없어요. 엉엉.



뉴질랜드는 최저시급이 16.50불이고 캐주얼 노동자라면 의무적으로 받는 8% 홀리데이 페이가 있어서 17.82불이 최저시급이라고 보면 된다. 한국 돈으로 계산하면 시간당 만 오천 원 정도인데, 이제 겨우 8천 원에 합의했다는 우리나라의 두 배다. 일하면서 박탈감을 느꼈던 때가 있다. 아보카도 농장에서 꼬박꼬박 휴식시간과 점심시간 받아가면서 주 5일 하루 9시간 일해서 15일 번 돈이, 내가 한국에서 좋아하는(줄 알았던) 일을 하면서 정해진 쉬는 시간도 없이 하루에 2-3시간 자고 많게는 주 7일 일하며 한 달 번 돈보다 훨씬 많다는 걸 알았을 때. 심지어 세금도 훨씬 많이 떼어가는데 말이다. 물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욕망이 돈을 많이 버는 것에 대한 욕망을 이길 순 없다. 알았다고 매슬로 새끼야. 자아실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돈까지 많이 버는 건 무리일까?



있을 땐 펑펑 쓰게 되고, 없을 땐 그때의 나를 원망하며 눈물 흘리는 게 돈이다. 우리 부모님의 경제력은 끝과 끝을 달렸다. 엄마는 없는 티끌도 아껴서 태산을 만드는 사람이고, 기분파인 아빠는 그 태산을 만드는 방법도 모르거니와 자주 무너뜨리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 나는 엄마로부터 절약을 배웠지만 답답함을 느껴 극단적으로 아빠의 소비력도 체득했다. 그래서 나는 개처럼 벌어서 개처럼 쓴다. 잘 모으고 잘 쓴다. 그러다 보니 돈이 많을 때도 있고 아주 없을 때도 있다. 다행히 나는 돈에 집착하지 않는 편이고, 그 갭에서 느껴지는 풍족함과 불안함을 너무나 잘 알기에 적정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2018년 새해가 밝았을 때 서로에게 적나라한 욕망을 담은 덕담이 반짝 유행이었다. 덜 일하고 많이 버세요, 한 것 없이 큰 소득 얻으세요, 얼떨결에 큰 성공하세요, 나만 잘 되게 해주세요, 하는. 인터넷에서 발견하곤 깔깔 웃었다. 누구나 바라지만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소망들. 웃기에는 좋은데 현실성은 부족하므로, 전주 여행 중 만난 글귀를 소개해본다.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적당히의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고 아주 잘 산다는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이 글귀를 마주친 이후로 항상 마음에 두고 산다. 모든 건 돈이 문제라고 생각은 하지만 내가 해결할 수는 없는 걸 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사는 것이 순리 이리라 하고, 그저 나는 ‘잘 사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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