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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Oct 09. 2018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돌이켜보면 아무 것도 아니었던

* 이 글은 18년 7월 19일 블로그에 먼저 작성되었습니다.


블로그를 뒤지다가 6개월 전에 쓴 성격과 인간관계에 대한 글을 발견했다. 어떤 의식의 흐름으로 썼는지 기억도 흐릿한 이 글을 읽으니, 최근 머릿속에 다시 떠오른 ‘친구’ ‘파트너’ ‘관계’ 등의 키워드들은 잊을 만하면 다시 올라오는구나 싶다. 꼭꼭 씹어 소화시키려고 되새김질을 시도해 본다.


혼자 있는 시간을 풍요롭게 사용하는 것
나에게도 남에게도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 것
적을 만들지 않는 것
나만 놓으면 끊어질 인연에 집착하지 않는 것


굉장히 이상적인 ‘자아 찾기’의 루트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전형적인 합리화의 과정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글이었다. 어릴 때의 외향성을 되살리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내향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흥, 나는 내향적이니까 사람들하고 잘 안 어울리는 거야’라고 자기 위로를 하는 것 같다. 며칠 전 책을 읽다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꿈꾸는 나는 완벽하고 멋진 사람일 텐데, 정작 현실의 나는 그렇지 않기에 괴리감이 상당하고 그것이 자존감의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것. 자존감이 낮았던 그때의 나는 나 자신이 싫어서 스스로 벽을 쌓아 조그마한 성 안에 가두면서 나는 달라!라고 포장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내가 직접 쓴 글에서 이런 감정을 느낄 줄이야. 심지어 몇 년 전도 아닌, 6개월 전의 생각이 이렇게나 바뀌었다.




나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말 거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고 오기를 기다린다. 사실 오기를 기다리는 건 아니고 항상 누군가가 먼저 나를 찾아줬기에 그것에 익숙해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동네에는 항상 나에게 먼저 놀자고 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도 새 학년이 시작되면 누군가는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와 친구가 돼 줬다. 대학교 때도 오티도 안 간 아웃사이더로 시작했지만 곧 주변에 사람이 바글바글해졌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 본 적이 없다. 혼자인 것에 딱히 외로움을 느끼지 않기도 하고, 어디나 먼저 말 붙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외향적인 사람들이 먼저 나에게 다가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딜 가든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은 항상 있지만 그래도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이건 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무언가를 잃는 것이 무섭다. 심지어 연인 사이였다가 헤어지면 애인뿐만 아니라 평생의 친구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잃는 것이라는 생각에 재작년까진 연인관계도 시작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연을 소중히 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떠날 사람들인데, 그렇게 서로에게 잊힐 거면 차라리 끊어내고 말지 라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 때 어쩌다 만나서 번호를 교환한 (얼굴도 희미한) 다른 과 친구,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 한 만날 일 없는 거래처 사람들, 아르바이트할 때 만난 언니 오빠들 등등.. 그땐 친했겠고 연락도 많이 했겠지만 과연 5년, 10년 후에도 그럴까? 무의미하게 번호만 남겨두면서 가끔 바뀌는 서로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나 들여다보기보다는, 인연이 허락한다면 다시 만날 우연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전화번호를 몇 번이나 바꾸고 주소록을 초기화했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이름도 기억이 안 나는 사람. 혹은 뭐 하고 사는지 캐치업하기에는 서로 떨어져서 보낸 시간이 너무 길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 당시엔 내 인생의 중심부에 있었을지 모르지만 서서히 주변부로 멀어지고 결국에는 매일 아침 출근길 버스정류장에서 만나는 40대 직장인 아저씨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사람들. 잊는 것, 잃는 것.



그런 지나간 인연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가 지운 번호 중에 가장 아까운 번호는? 대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들? 유명한 연예인이 돼서 연락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선후배들? 썸만 타다 끝난 잘생긴 친구? 감사하게도 나를 잘 챙겨줬던 직장 선배?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감독님? 아무도 아깝지 않다. 오히려 그냥 평범하게 일상을 같이 보냈던 사람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아르바이트할 때 친했던 키친 셰프님들, 학교 다닐 땐 서로를 몰랐지만 졸업 10년 후에 우연히 만난 중학교 동창, 나의 가치관에 많은 변화를 준 매니저 언니 등등. 아쉽지만 이미 지나갔는 걸 어쩔까. 이걸 계기로 앞으로의 인연은 소중히 할 수 있겠지.



친구 10명만 남겨도 잘 산 인생이라고 하는데, 서로가 힘들면 버팀목이 될 친구들이 10명은 있으니 나는 굉장히 행복한 사람이다. 그중에 누구 하나 내가 먼저 다가간 사람은 없다 하더라도. 이 정도면 잘 산 인생이다. 적정한 선을 지키고 거리를 유지한다면 인간관계가 참 쉽겠지만 그렇지 않기에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겠지. 가진 것에 만족하고 관계에 대해 오만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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