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작은 안내
“해피엔딩이 아니라 아쉽더라!”
영화 라라랜드 포스터를 그리는 내내 자주 들었던 이 이야기는 이 영화 결말을 둘러싼 아쉬움이었고, 결혼을 앞두고 세드엔딩에 가까운 영화 포스터를 그리는 나를 향한 염려였다.
정작 내가 봉착한 문제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20호(72.7 × 60.6cm)라는 큰 사이즈 캔버스에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 가로와 세로 어느 면도 30cm를 넘지 않는 작은 그림 밖에 그려보지 않은 내게 캔버스가 획기적으로 커진 데다, 이 그림의 포인트인 춤추는 남녀 위로 펼쳐진 보랏빛 하늘 그라데이션은 사실 내 실력 너머의 일이었다.
입시미술은 커녕 초딩 때도 미술학원 한번 다녀본 일이 없는 내가 “이제 그림 사이즈를 좀 키워보자”라는 선생님의 장기 실력 증진 프로젝트성 제안에 덜컥 20호를 선택한 것은 정말이지 겁이 없어서, 더 정확히는 뭐가 뭔지 몰랐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처럼 유화가 뭔지, 20호가 뭔지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좀 해드리자면 우선 학창 시절 흔히 접해본 수채화와는 달리 유화는 기름을 활용한다는 점을 기억하시라. 그럼 어디에 그릴까? 캔버스는 수채화의 종이 같은 유화의 스케치북인데 면, 아사, 혹은 면과 아사를 혼용해 짜여 있고, 가로와 세로 크기와 비율이 종류별로 다르다.
캔버스는 1호부터 100호(162.2 × 130.3cm) 그 이상도 있다. 1호가 2호의 절반이거나 100호가 1호의 100배 크기는 아니다. 캔버스 1호(22.7 ×15.8cm)는 흔히 엽서 사이즈라지만, 국제 표준 우편엽서인 A6(14.8 ×10.5cm)와는 차이가 있다. 흔히 화랑에서 전시 화가의 홍보물을 A4 절반인 A5(21 ×14.8cm)로 제작해 엽서라고 부르는데, 여기에서 캔버스 1호와 표준 엽서 사이즈가 혼동을 일으키는 것 같다. 결국 캔버스 1호는 A4를 반으로 접은 크기에 가깝다.
초기 화가들은 직접 캔버스를 만들었겠지만(물론 지금도 만들 수는 있다) 언젠가부터 캔버스를 화방에서 판매하면서 규격화되었는데,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캔버스는 10호, 20호, 30호, 50호, 100호이며, 각 호 뒤에 F, M, P, S가 붙으면서 사각형의 비율이 달라진다. 인물 그리기 좋은 F(figure), 풍경을 그리는 P(paysage), 바다 풍경을 그리는 M(marine), 정사각형 S(square)가 있어 그림 소재에 맞춰 선택하면 된다.
랄랄랄라 라라랜드는 20호F 면천 캔버스로 선택했다. 이제부터는 뭘 해야 할까? 셀프 페인팅이나 가구 리모델링을 해봤다면 들어봤을 젯소칠이 먼저다. 젯소는 캔버스의 표면을 매끄럽게 해 묘사가 많은 작품의 경우 완성도를 높일 수 있도록 돕는다. 고흐처럼 터치를 살리고 물감 두께를 돋우는 작품이라면 젯소칠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캔버스가 준비되었으니 스케치를 해볼까? 초보자의 경우 캔버스에 바로 스케치하기는 어렵다. 물론 할 수도 있지만. 꼼꼼한 스케치는 그림의 완성도를 높이는 기초인 만큼, 내 경우엔 다섯 작품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스케치북에 비율에 맞춰 정확하게 스케치한 뒤 캔버스에 옮겼다. 지금도 좀 섬세한 특징이 있는 작품이라면 스케치북에 스케치를 먼저 해보고 옮기거나 캔버스에 두번째 스케치를 하기도 한다.
스케치북 위에 트레이싱지(기름종이, 미농지, 반투명종이, 비침종이라고 혼용되는) 같은 기능성 종이를 놓고 스케치를 따라 그린다. 캔버스를 맨 아래, 그 위에 먹지, 맨 위에는 그림을 옮겨둔 트레이싱지를 놓고 따라 그리면 캔버스에 스케치가 옮겨진다. 이때 세심하게 옮기지 않으면 색칠을 하다가 점과 선이 없거나 때로는 면도 사라져 있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젯소칠한 캔버스에 스케치까지 옮겼다면. 이제 정확한 색을 만들어서 초벌 색칠을 하면 된다. 라라랜드 경우 남녀 인물과 가로등 같은 구성이 하단에 집중되어 있고 매우 간단한 반면 그라데이션이 핵심인 작품이었다. 당시의 나는 매번 지난번과 같은 보라색을 만들지 못해 20호 전체를 덮는 그라데이션을 꽤 여러번 반복했다. 고수의 선 하나가 초보에게는 넘사벽인 것처럼 구성과 묘사가 복잡하지 않았으나 내게는 한숨을 짓는 날이 많았던 작품이었다.
동일한 색을 수업시간 중에 다시 만들기도 쉽지 않았다. 넓은 면을 칠해야 했기에 용케 딱 맞는 색이 만들어졌다 한들 물감 양이 적어서, 또는 기름 양이 많거나 적어 색을 더 많이 만들어야 했지만 필요한 그 색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그러데이션이 반복되자 내가 그때그때 칠한 보라색이 아닌 꽤 다른 보라색이 은은하게 비치기 시작했다. 새로운 색을 칠해도 이미 오래전에 칠해둔 색이 반영된 최종적으로 발현된 다른 보라색이 나타나는 것이 유화의 특징이다.
매번 전체 그라데이션을 해야 하는 실로 무한반복. 그러니까 색을 만들고, 덮고, 다시 덮으며 라라랜드 속에, 라라랜드와 함께 살았다. 그야말로 실력이 모자라니 몸이 고생하는 꼴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실력이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나의 부족한 관찰력과 색 조합력이 만들어낸 우연이 다시 새로운 우연을 만나는 무한도전이 아니었을까.
시행착오를 수없이 넘기고 내가 배운 것은 유화는 아무리 덧색으로 결국엔 풍성한 색을 표현해 낼 수 있다 해도, (물론 이것은 엄청난 위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벌이든, 두 번, 세 번째 묘사이든 최대한 실제에 가까운 색을 만들어 써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 지진아였던 나는 단순히 색을 섞어 필요한 색을 만드는 일조차도 쉽지 않았다. 보라색은 무지개 색을 기준으로 남색에 가까운 보라색인지 빨간색에 가까운 보라색인지에 따라 그 색을 더해 혼색해야 했는데, 그 조차도 헷갈렸고 여기에서 채도를 낮추거나 높이기 위해 어떤 색을 더해야 할지 몰랐다. 색에 유능한 누군가가 바로 옆에서 섞어준다면 몰라도 절대음감처럼 거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했다.
부자 엄빠를 둔 초딩처럼 108색 컬러를 쓴다고 해서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유화는 흰색이 포함된 옅은 색끼리 혼색할 경우 원색을 섞는 것에 비해 쉽게 탁해지기 때문에 가능하면 정확하게 관찰해 원색끼리 섞어 딱 맞는 색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실질적으로는 그림의 완성도는 높이고 작게는 고민을 줄이며 크게는 노가다를 없애는 길이다.
나의 무참한 나날 속 수많은 시행착오 덕분에 랄랄랄라 라라랜드는 배어 나오는 깊이가 남다른 보라색 그라데이션이 완성되었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춤추는 스케치를 한 것이 2017년 3월, 이 그림에 서명한 시기는 2018년 2월이니 꽉 채워 1년이 걸렸다.
물론, 일주일에 두 번 2시간씩 퇴근 후에 하는 수업에 매번 참석하지 못했다. 출장도, 프로젝트도 많았고, 결혼 준비도 했고, 결혼도 했고, 신혼여행도 다녀왔고, 교통사고로 목과 어깨를 다쳐 팔을 들어 올리지 못해 작은 표현 밖에는 할 수 없어 그림은 한없이 미뤄지고 더뎠다.
영화 라라랜드가, 1년에 걸쳐 대단원의 막을 내린 내 그림 랄랄랄라 라라랜드가 내게 준 메시지는 단 하나였다. ‘있을 때 잘하자!’ 배우지망생 미아와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은 서로의 삶에 변곡점이 되어준 연인이었다. 그들이 그때 만나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지금 그 미래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속 스토리도, 나의 그림 랄랄랄라 라라랜드도 마찬가지.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자” 이 작품 덕분에 그라데이션도, 보라색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그것은 나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