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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마레 Jun 11. 2020

고객님, 의뢰하신 그림입니다

옥룡이 나르샤, 옥룡설산의 일출 ‘일조금산’

북경, 상해, 리장… 맨 처음 중국의 이들 도시에 가게 된 건 온전히 한 친구 때문이었다. 그랬다. 친구 따라 중국 갔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을 ‘착실하게’라고 쓰고 ‘답답하게’라고 읽어야 할 나는 홀로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친구들은 하나같이 미국, 호주, 캐나다, 프랑스, 중국에 나가 생활하고 있었다. 혼밥, 혼술도 지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친구를 만나러 간 것이 북경이었다. 유럽도, 미국도 무비자인데, 국경도 인접한 그것도 중국에 비자를 받아 여행을 가야 한다는 사실에 어이없어했던 기억이 난다. 중국은 여전히 단기 여행에도 비자가 필요한 국가다.

그 뒤로 몇 차례 중국 몇몇 도시를 여행하긴 했지만, 띠엔띠엔도 모르던 내가 중국이라는 나라, 사실 큰 관심도 없던 이 도시들에 가게 된 시작은 당시 북경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이 친구 덕분임은 분명하다.


북경에서 지내는 2년 동안 몇 차례,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온 뒤엔 독립운동 답사를 하자며 상해와 인근 도시로 옮겨 다닌 임시정부의 흔적을 좇아 여행하기도 했다. 중국어를 모르는 나는 친구에게 많은 부분을 기대어 소위 ‘해선투어’를 했다. 보통 3박 4일 남짓한 짧은 휴가를 즐겼을 뿐이었지만 당시 만난 중국은 너무나 컸고, 거대했다. 뭐 그 시절 유머답게 ‘대륙 스타일’이었다.  

새롭게 해선투어의 깃발이 꽂힌 곳은 운남이었다. 당시 휴직 중이었던 나는 제주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해선은 정치 분야에서 일하다 번아웃되어 휴식을 선언했다. 대학 동기인 우리는 졸업 무렵 유럽을 두 달 동안 캠핑카로 여행하기도 했는데, 그 뒤 둘이 함께 맞는 긴 휴가는 처음이었다. 베트남을 찍고 운남으로 먼저 이동한 해선과 한 주 뒤 합류한 나는 운남 곳곳을 보름 동안 함께 여행했다. 그 뒤 한차례 더 운남을 다녀온 해선은 그 기록을 ‘80일간의 윈난 일주’라는 브런치 매거진으로 남겼다.

이번 그림 옥룡설산의 일출 일조금산은 내겐 최초의 의뢰 작품이라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의뢰라는 말이 너무 격상된 듯 무게감이 느껴진다면, 실제 주문방식은 지나치게 소탈하다.


늦은 저녁시간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 “산 그려줘. 설산”했다. 그렇다. 이렇게 의뢰해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내게 무려 옥룡설산의 일출을 주문한 이는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 준 해선투어 대표이자 운영자, 가이드를 겸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직접 촬영한 사진을 보내와 설산이 그립다고 했다. 언젠가 리장 옥룡설산 기슭에 가서 설산공방을 차리고 자연과 벗 삼아 손재주를 펼치며 조용히 살아가는 삶을 꿈꾸기 위해서 저 그림이 필요하다고 했다.


뭐 설산? 그립지. 나도 그래, 리장에 가야지, 가고 싶다. 옥룡설산 기슭 좋아. 근데 기슭이 괜찮을까? 거기다 설산공방? 뭘 만들건대? 뭐 어때! 뭐라도 만들면 되지. 공방 그럴 듯. 그러면 나는 설산을 그려야겠네. 나는 너무나 쉽게 설득당했다.

이 그림의 제목인 일조금산은 일출 때 만년설에 붉은 햇빛이 비쳐서 황금색으로 보이는 것을 뜻하는데, 결국 일조금산의 옥룡설산이 이 그림의 시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그림을 그린 나는 정작 옥룡설산의 일출, 즉 일조금산을 직접 보지 못했다.

분명 나도 옥룡설산이 보이는 곳에 그녀와 함께 머물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산증으로 침대 속을 헤매고 있었다. 나의 웃기고도 슬프고 고단하기 까지 한 고산증 풀스토리는 그녀의 원남 일주 매거진에 리얼하게 소개되어 있다. 제목이 무려 ‘춤추다 고산증’이다.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하지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풋

그곳에 머물고도 일조금산을 보지도 못한 내가 옥룡설산의 일출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내내 나는 문득  아쉽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다. 내가 그리는 것은 아직은 어둑한 어둠 속 일출일지라도, 금방이라도 시간이 흘러 내가 본 더 맑고 밝은 하늘과 아름다운 설산이 곧 나타날 것만 같았다.

그렇다. 나는 맑고 높았던 그 하늘과 산의 아름다움을 기억한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그 풍광도 그려보고 싶다. 고산증은 내게 아름다운 여행지에서의 손꼽을 만큼의 괴로운 시간을 선사했지만 어차피 직접 체험 말고는 예측할 수 없는 고산증을 겪으며 기차를 놓치고 천사를 만난다는 여행의 묘미를 떠올렸고, 여행은 인생, 인생은 여행이란 오래된 수사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여행은 운남이라는 낯선 곳에서 전혀 다른 방식의 삶에 대해, 또 어쩌면 전혀 다를 바 없는 삶의 방식에 대해 보고 듣고 겪으며 생각하게 했다.

거기다 이 그림은 코로나19로 미술수업이 중단되어 나 홀로 그림 그리기에 나서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무려 의뢰라는 것을 받고서. 소재에 적합한 캔버스의 모양과 크기를 선택하고, 스케치를 하고, 초벌을 거쳐 단계별 색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선생님의 지도편달 없이. 물론, 전문가가 보면 부족한 부분은 너무나도 많겠지만 나로서는 이렇게 혼자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뿌듯하다.


그런데 정작, 이 그림은 의뢰자 해선의 설산공방에 걸릴 수 있을까? 아니 설산으로 떠나기 전엔 오피스텔 벽 한 켠에 걸릴 수 있을까? 그녀의 방에는 호크니의 The Road Across the Worlds의 프린트 물이 걸려있다. 두 그림이 한 공간에 나란히 있을 생각을 하니 꽤나 당혹스럽다. 거장의 옆자리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그래서일까. 그림을 취미로 배우기 막 시작한 사람들은 그림을 선물하지 말라는 조언을 듣곤 한다. 그림은 그리는 과정은 매우 지난하고 힘든 반면, 원치 않았던 그림은 받은 누군가에게는 부담스러운 선물이 되거나 혹은 언젠가 버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했던 그림이라고 해도 자신의 비용을 들여 구매한 것 아니라 누군가로부터의 선물이라면 다소 부담스러운 장식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난생처음 의뢰받은 그림을 그리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직접 보지 못한 일출을 그린다는 묘한 흥분도 있었다. 모자르디 모자란 내 실력보다 좀 더 잘 그려야 한다는 부담감도, 빨리 완성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긍정적으로 작동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언제쯤 설산공방에 걸릴 수 있을까? 친구 해선은 최근 새로운 시작을 했다. 그녀의 다음을 응원한다. 고객님 의뢰하신 그림 옥룡설산, 일조금산 나왔습니다. 쿨럭

강민아. 일조금산 Jade Dragon Snow Mountain. 2020. Oil on canvas. 30X30cm

한 동안 해선의 집 한켠을 차지하고 있던 금산이는 지금은 나와 캐나다 트레일을 함께 다녀온 M언니의 거실로 옮겨갔다. 그녀에게 옥룡설산이, 일조금산이, 리장이, 운남이 더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처음 그린 일조금산은 30cm 정방형의 작은 그림이다. 나홀로 완성에 심취하여 무려 90cm 정방형을 그림을 시작했지만 멈춰서 있다. 캔버스가 커지면 책임도 커진다. 작은 점이 선이 되고 면도 되고보니, 묘사할 영역이 늘어나면서 어려움에 봉착했다.


운남이 그리워진 그녀에게 창으로 보는 듯한 큰 옥룡설산을 그려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2년이 넘도록 완성하지 못하자, 해선이 자신의 그림을 렌트했다. 아 커다란 일조금산 이야기는 다음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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