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마레 May 27. 2020

‘어쩌면 슈퍼맨’의 분노

브렉시트, UK와 EU의 이별

코로나19가 백신 개발을 통해 획기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BC(Before Christ)는 또 다른 BC(Before COVIS-19)로 대체되어 더 흔히 사용되지 않을까? 그렇다. 코로나19 이후 우리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특정 사진이나 그림을 보고 코로나19 전후 시점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니까.

이 사진은 명백히 코로나19 이전 상황이다. 2016년 국민투표 결과, 영국(Britain)은 말 그대로 유럽연합을 탈퇴(Exit)하는 브렉시트(Brexit)를 결정했고, 영국 청년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그 분노를 거리로 나와 표현했다. 영국의 베이비부머 세대가 경제성장과 복지제도의 확충으로 누린 것들을 도무지 누릴 수 없게 된 밀리니엄 세대에게 이제는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마저 빼앗아 버렸기 때문이다.

분명 생각해볼 문제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십년 남짓 남은 사람들이 수십년을 더 살아가야할 사람들의 인생을 마음대로 결정지어도 되는가. 물론 밀레니엄 세대의 투표 참여율이 저조했던 탓도 있다. 그렇다면 젊은 세대의 분노는 정치 참여의식을 돋을 수 있을까?


우선 코로나19 이후, 기존 방식의 시위는 가능하지 않다. 무엇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부터 상상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마스크도 없이, 누군가의 어깨에 올라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 강력한 전염병은 인류가 공동운명체임을 드러내고 있지만, 중국의 여러 도시에서 코로나19로 수많이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을 바로  그 때, 2020년 1월 31일 영국은 유럽연합과 이별했다.


‘이별장면에선 항상 비가 오지’로 시작하는 이별공식이란 노래에선 “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 해봤니? 비오는 날 보다 더 심해. 작은 표정까지 숨길수가 없잖아”로 이어진다. 이별할 때 맑은 날과 비가 오는 날, 어떤 편이 더 나을까. 유럽연합과의 이별 직후 일어난 코로나19 상황은 영국을 더 깊은 혼란에 빠트리진 않았을까? 실제로 여느 유럽 국가들보다 영국은  더 많은 코로나19 확진자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물론 브렉시트가 단 하나의 원인이라고 볼 수만은 없지만.


유럽연합은 정치, 경제 통합을 통한 오랜 공동체였으나, 영국 내 브렉시트 여론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영국의 분담금 부담과 취업 목적의 이민자가 증가하고, 난민들의 유입이 계속되면서 가속화되었고, 보수당이 국민 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하기로 하면서 본격적인 논의에 접어들었다.

영국은 52:48로 유럽연합을 탈퇴를 결정하게 된 2016년 찬반 투표를 시작으로 분담금 문제, 구체적인 경제 현안들의 협상을 이어왔고, 두차례 의회에서 부결되기도 했으나 최근 조기 총선에서 집권 보수당이 하원 과반을 확보하면서 동력을 얻어 브렉시트는 결국 현실이 되었다.

첫번째 유화의 소재를 찾던 나는 2016년 영국의 투표 직후 국내 시사주간지 시사인에 브렉시트와 청년들의 분노를 해설하는 칼럼에서 이 사진을 발견하고 스케치를 시작했다.


사실, 첫 그림을 그리는 생초보에게 인물 그것도 분노를 표현하는 인물은 꽤나 어려운 주제다. 그럼에도 인상적인 이 사진에 꽂히고 보니, 풍경이나 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매주 2시간씩 두차례하는 수업에 빠지지 않고 꼬박 3개월에 동안 스케치와 채색을 이어갔다. 물론 엄청 헤매면서. 때때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것은 그림 속으로 빠져드는 몰입감이었다. 완성을 앞두고 마무리를 할 무렵에는 인물의 눈과 입을 수없이 고치면서 오롯히 그 분노의 감정을 살리려 애썼다.


사진 속 인물을 오랫동안 관찰했던 덕분에 모 글로벌 의류회사의 매장에서 사진 속 주인공이 입은 빨간색 가죽 자켓을 한 눈에 알아보고 반가워하기도 했다. 글로벌한 동시에 한 시대를 사는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고, 지금은 더 명확해지고 있다. 블렉시트에도, 코로나19에도.


함께 그림을 함께 배우고 있는 많은 분들이 자신들의 첫번째 그림은 유난히 조악하고 다시 바라보면 부끄럽고들 했다. 이 그림 역시 신경을 많이 쓴 인물은 그렇다 하더라도 배경이 된 런던 대성당과 주변에 작게 그려진 여러 건물들의 조합은 너무나 어색할 뿐아니라 심지어는 수평조차 맞지 않는다. 바라볼수록 부끄럽지만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준 첫번째 도전이었고, 첫번째 사랑이었다.


꽃은 아니었지만,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브렉시트, EU & UK 등 시사적인 이름만 맴돌던 차에 당시 다섯살 난 조카에게 물었다. 이게 뭘까 하고. 아이는 한참을 바라보더니 꽤나 조심스런 표정으로 “슈퍼맨?!?!”이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파란 슈트를 입고 붉은색 망토를 휘날리며 날아가는 슈퍼맨과 어째 닮기도 했다.


그래 어쩌면 사진 속 청년이 슈퍼맨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히어로도 어서 나타났으면 좋겠다. 코로나19를 이길 백신을 들고서. 한편으론 사회적, 생활 속 거리두기를 하며 코로나19 백신을 기다리는 우리가 슈퍼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 속 슈퍼맨처럼 우리의 분노와 기쁨을 함께 모여 표현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오늘도 꿈꾼다.

강민아. 어쩌면 수퍼맨. 2016. Oil on canvas. 31.8x40.9cm


매거진의 이전글 언니들의 그림을 만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