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아르장퇴유의 붉은 보트’ 모작
나는 돈을 받고 사진을 찍는다. 그림과는 다르다는 의미다. 특정 분야의 사진만을 찍는 전업 작가는 아니지만 업무의 팔 할은 홍보물 제작에 기초가 되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서 내가 속한 기업의 새로운 기술이나 경영활동에 대한 보도자료나 인쇄물을 만드는 일을 한다.
때때로 제작하는 영상이나 소셜의 콘텐츠도 글이나 이미지의 구성없이 만들 수 없으니 결국 뭔가를 생각해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일이 주요 업무다.
처음부터 사진을 전공했거나 전문적으로 찍은 것은 아니었지만 순간적인 포착에 성공했거나 구도가 잘 만들어졌을 땐 글의 완성도 이상의 흡족함이 있다.
경험적으로 홍보도구로서의 사진은 호감을 높이고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이기 때문에 정확해야 하는 저널리즘과 유사하면서도 매력을 어필하는 감성적인 터치를 더하기 위한 다양한 모색이 필요하다.
우리는 때때로 멋진 사진을 보고 ‘그림 같다’라고 하고, 근사한 그림을 보고는 ‘사진 같다’라고 한다. 과거 그림은 사진의 역할을 했지만 카메라 발명 이후 그림은 사진이 포착할 수 없는 것, 이를 테면 ‘감정’을 표현해야 했다.
간혹 세밀화처럼 마치 사진 같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그림에 대해 ‘사진 같다’ 이상의 감동과 감탄을 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 그림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소개하는 그림은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가 1875년 그린 <아르장퇴유의 붉은 보트>를 모사한 작품이다. 원작 그림은 하버드대학의 소장본이다.
모네는 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갔다가 1871년 말 프랑스로 돌아와 아르장퇴유 센강 근처에 정착했다. 이 시절은 아내 카미유와 아들 장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던 모네 인생의 벨 에포크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는 일생 동안 빛에 따라 또는 자신의 흥미에 따라 같은 주제를 연작으로 그리곤 했는데, 1875년에 그려진 이 붉은 보트 말고도 조금씩 다른 작품들이 존재한다.
모네는 빛에 따라 변화하는 대상과 색을 표현하기 위해 작업실이 아닌 밖으로 나가야 했다. 하지만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선결 조건이 있었다.
튜브 물감이 발견된 것이 1841년. 화가이자 발명가였던 미국인 존 고프랜도 덕분에 그림을 작업실이 아닌 야외에서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튜브 물감 이전에는 물감을 유리병에 보관해서 이동이 쉽지 않았다. 때문에 튜브 물감의 발명은 인상파의 등장에 절대적인 요소이다.
또 이들 이전에는 그림의 주요 주제가 신화나 역사였지만 이제 풍경화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모네는 ‘스튜디오 보트’라는 이동식 화실을 만들어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또 다른 인상파 화가 마네는 스튜디오 보트에서 아내 카미유를 그리는 모네의 모습을 첫 야외 그림으로 그리기도 했다.
모네를 세상에 알린 <인상, 해돋이>는 화가로 이름을 알릴 당시로서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던 살롱전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낙선전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전시회의 대표작이었다.
당시 이들의 작품은 비평가, 관객들의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 소위 ‘인상 밖에 없다’라고 신랄한 평을 남긴 비평가 루이 르루아에 의해 인상파, 인상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으니 그 또한 아이러니.
과거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들을 보던 사람들의 눈에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은 그리다 만 것 같은, 완성이 되지 않은 실력이 부족한 얼치기들의 그림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이는 대로 그 순간을 포착해 그림을 그렀던 그들은 빛과 색으로 회화의 혁명을 이뤄냈다.
그런데 말이다. 이 그림은, 이 모작은 어떤가. 그림 같은가, 사진 같은가. 달력 같은가. 빛은 색은 어떤가. 혹 인상은 있는가.
그림 같다면… 달력일지라도 감사하다. 하지만 브로콜리 같은 커다란 나무의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얕게 펴진 새털구름과 잔잔하게 물결치는 파도, 물결에 비친 나무와 집, 배들까지. 인상주의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긴 이 그림은 오히려 사진으로서의 성격에 더 부합하는 작품이다.
나는 몇 해 전부터 그림을 그려오면서 내가 촬영하는 사진의 구도나 색감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아마도 어떤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은 빛과 색을 활용한 표현의 영역이다. 그림과 사진은 닮았고 또 다르다. 특히 인상주의 그림은 순간, 눈에 보이는 모습을 포착해 표현하는 일이 주효하다. 하지만 인상주의 작가의 그림을 모사하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원작자인 모네는 정작 몇 시간도 걸리지 않았을, 한 순간을 표현한 이 오래된 그림을 많은 시간을 동안 들여다보았다. 지난 6월부터 5개월 동안 거의 매주말마다 2시간 남짓 관찰을 거듭하며 느리고, 천천히 그려왔다. 이제까지 주로 연습했던 세밀한 묘사보다는 볼륨감과 붓터치가 살아있는 표현은 새롭게 배워가야 할 부분이었다.
코로나 19로 여행이 단절된 시기에 거장의 그림을 따라 그리며 숨은 색을 찾고 숨겨진 표현법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누렸다. 또 모네의 눈 앞에 펼쳐졌을 풍경과 캔버스를 상상하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착각에도 종종 빠져들었다. 그리고 생각한다. 언제쯤 나도 야외에서 생동감 넘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까마득하지만 지금은 그림에 대해 사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 그 또한 좋다. 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