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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마레 Apr 05. 2021

바람 부는 그 섬을 기억한다

제주가 어떻게 변하니?

그 섬은 내겐 없는, 내가 가질 수 없는 어떤 홀림 혹은 신비로움으로 나를 이끌었을까? 사실, 그건 잘 모르겠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불행을 안고 있다’라는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처럼 누구나 아는 제주의 매력에 매혹된 내가 일상의 공간이 된 제주와 불화한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제주에 대한 각별함이 끊어진 것은 내겐 꽤 큰 사건이다. 다양한 일들이 쌓였고, 짓이겨졌고, 떠나온 지 두 해를 넘기고 감정을 삭혀 이제야 생각을 정리한다. 괴롭더라도 모른 체하지 않고, 잊지 않고, 생각의 흐름을 기록하려고 한다.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바로 역사니까. 스스로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 역시 중요하니까. 좋은 무엇에 대해 말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어떤 단절을 기록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마흔을 지나며 스스로에 대해 더 집중하고 나를 좀 더 알고 싶은 이유이고, 글쓰기가 갖는 치유의 힘을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제주올레 천하제일경. 저렇게 맑은 가을 하늘을 펼쳐두고 제주올레 1코스 말미오름에 올라 성산일출봉과 우도를 바라보고 싶다.

좀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더 준비했다면, 달라졌을까? 16년 직장생활에 지친 상태가 아니라 좀 다른 방식으로 쉼 뒤에 제주로 향했다면 어땠을까? 내게 쉼과 여행의 공간이 갑자기 노동과 일상적 공간이 되고 보니 새로운 환경에서의 일은 버거웠고, 무엇보다 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의문과 아쉬움은 여전하다.


육지에 살면서도 주말부부였던 우리는 시차를 두고 내가 먼저 휴직을 하고, 몇 달 뒤 그가 제주에 와서 꼭 6개월을 함께 살았고, 먼저 그가 서울로, 나도 복귀를 하면서 제주생활이 끝났다. 남편은 서울에 이어 상하이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제주에서 육지로의 이사는 일 년 후에나 가능했다.

나름대로인 불화의 원인을 찾아보자면 무엇보다 나는 섬을 둘러싼 바다에 갇혀있는 단절된 느낌, 어떤 답답함이 가시질 않았다. 여행 중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갈증이라 당황스러웠다. 곧 떠나와야 하는 아쉬움이 언제나 더 컸기 때문에 여행 중엔 알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서귀포 자구리공원 잔디밭. 서귀포 우리집에서 한라산을 등지고 직선으로 내려오면 닿는 가장 가까운 바다, 그립다.

특히, 비나 태풍으로 육지로 이동이 불가한 상황이 오면 당장 어디론가  것도 아니면서 갑갑하기만 했다. 여름의 습한 기운도 숨이 턱턱 막혔지만, 겨울의 길고 지루한 저기압성 흐린 날씨는 가슴 한가득 먹구름을 얹어둔  마냥 무거웠다. 괴로움을 호소하자 제주출신 친구가 비타민D 섭취를 권했다.   

내겐 제주는 한국말이 통하는 외국이었다. 언어가 통한다는 점이 오히려 문화가 다르다는 인식을 잊게 하고 오해를 부르는 그야말로 낯선 . 특별히 제주스러운 면모는 그물망으로 묶인   관계의 조밀함,  단단함에 있다. 제주 사람들은 누구나 한두 사람을 건너면 다들 아는 사이. 친인적이거나 동창, 학교 선후배인 동문이거나 친인척의 선후배, 선후배의 친인척이다.

토착민들은 자신들과 같은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  괸당이 아닌 사람들에게 무례했다. 모르는 사람, 처음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대했다. 서비스나 물건의 가격이 다른 경우도 흔하다. 일반적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고, 가까운 사람에게는  친절한 것이 내가 알던 일반적인 방식이었는데, 그들은 기본값이 달랐다.

제주에 살 때 매주 주말이면 제주올레 한 코스씩 꾸준히 걸었다. 가장 큰 호사였다 생각된다. 바람에 날리던 귤색, 바다색 리본이 신나보인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짓궂게 구는 츤데레 경상도 스타일과는 오히려 정반대였다.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조차 친절한 경우가 드무니까, 일상적인 공간에서 만나는 제주 사람들은 무뚝뚝하고 불친절을 넘어 무례하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누군가 4.3을 비롯한 역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노인들만의 문제는 아니기에 역사 문제로만 판단하기는 어렵다. 또한 진실을 마주하지 않은 채 손쉽게 지역적 고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방식으로의 재현은 또 다른 폭력이 아닐까.

때때로 지역의 누군가 소개로 만난 사람들 중에는 섬 특유의 안면인식으로 태도는 친절할 지라도 내용적으로는 오히려 더 무례함을 넘어 참혹할 때도 있었다. 그곳에서 경험한 어떤 사람들과의 만남은 당시 꽤 분명한 태도를 취했을 테지만, 왜 더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상대의 잘못과 무례함, 어처구니없음을 지적하지 않았는지 불쑥불쑥 떠올라 그 상황 속으로 끌려 들어가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는 달리, 이 땅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 특수성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육지 출신 이민자들도 많다. 그들 가운데 다수는 육지의 또 다른 시골 출신이 많고, 그마저 아니라면 도시 생활이 싫은 전원적인 생활, 느리고 한적한 생활을 즐기는 이들이었다. 나는? 나는 쉼으로써의 한적함이 필요했을 뿐 일상은 철저히 도시를 선호하는 사람임을 살아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시골이 일상이 되었을 때 나는 불행했다.

제주의 주요 특징인 관계성은 노동에도 미치는 영향이 크다. 제주의 노동시장은 척박하기로 악명이 높다. 엄격하고 시스템화 된 조직에서 십여 년 일해 온 내 시선으로는 제주에서 업무상 만나게 되는 사람들 중 다수인 토착민뿐 아니라 이민자들도 느슨한 이곳의 방식에 적응한 사람들이기에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제주에서는 주로 누군가를 앞세워 일을 추진했고, 그렇지 않으면 진행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물망 같은 지역인 만큼 관계에 관계가 덧씌워진 특수성은 곤혹스러웠다. 관계성 중심으로 일을 처리하다 보니 당연하게도 정확성이 떨어졌다.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만큼, 함께 일해야 하는데 그 안에서 나 역시 그들과 함께 허우적거려야 했다. 크고 작은 일들이 돌발적으로 발생했고 기존에 하고 있던 해오던, 해야만 하는 일들이 밀려나고 흐트러트렸다. 계속 변화하는 전시 상황에서 즉각적인 의사결정을 해가야 하는 업무 환경은 계획적이고, 단계별 추진과 그에 따른 완성도가 중요한 내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미리 계획하고 공유해서 추진하면 간단한 일들을 위기로 키워가고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그것을 해결하는데 뒤늦게 투입되어 고군분투하며 곤혹스럽기만 했다.


그곳 스타일에 적응한 육지 사람들과의 일처리도 쉽지 않았다. 제주에서 일을 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들 했다. 어쩌면 제주의 방식과 맞는 사람들이 정착한 것일지도. 이렇다 보니 내 방식만을 고집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었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느낌으로 우푸우푸하던 어느 날 깨달았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 판단이 서자 나는 멈췄다. 그들 방식 그대로 지속될 것임을 알기에 동시에 판단도 포기도 빨랐다. 그리고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최근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를 알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나는 감정적인, 그리고 관계성을 지향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관계든, 업무든 분명하고, 명확하고, 서로의 선을 지키는 계획된 것들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처음 알게 된 사람에게 친절하지만 납득이 불가능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유 없이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쉽게 생각하는 사람과는 더 이상 관계를 이어가지 않는다. 관계 중심으로 배려하는 태도는 일도 관계도 망친다고 생각한다. 서로에 대한 배려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배려에 앞서 기본적인 질서를 우선해야 하고,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면 합의 끝에 규칙을 정하고 모두가 그 룰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관계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 제주와 나는 많이 달랐다. 며칠 전, 오랜만에 악몽을 꾸었다. 제주였다. 나는 깨어나지 못한 채 버둥거렸다. 그물에 묶여있는 모양새였다. 흠모했던 제주가 내게 이런 공간으로 등장하다니 당황스러웠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느냐고 소리쳤던 상실감으로 가득 찬 배우의 표정이 떠올랐다. 제주가 이렇게 변하다니.

떠나오던 날도, 가끔 다녀오면서도 언젠가는 다시 제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다시 여행으로 와서 머물면 좋았으니까. 그런데 이제 이별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마음이 더 이상 제주를 향하지 않는다. 일 년 이상 비워둔 집에 남겨진 살림살이를 정리했고, 언젠가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은 완벽한 여행지로서의 제주를 꿈꾼다. 그곳에서 정착해 살 자신도, 의지도 현재로서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작 제주에 가면 또 아름다운 자연과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의 만남에 취하곤 한다. 때로는 내가 사랑했던 제주의 어떤 풍경이 간절하게 그립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제주를 떠나온 뒤 내 그림의 주제는 대부분 제주다. 하지만, 지금은 제주 여행 후에 내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사실이 더 소중하다. 어떤 소중한 대상은 거리를 두고 남겨두어야 하는 관계, 나와 제주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을까.

강민아. 제주생활2 : 바람부는 바당올레. 2021. Oil on canvas. 33.4x5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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