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 아몬드나무
그림을 시작한 뒤 여러 차례 고흐 그림 모작을 시도했다. 스케치 수준에 머문 것부터, 색연필로 색을 더해보기도 하고, 캔버스에 밑칠만 해둔 상태로 머물고 있는 그림도 여럿이다.
미술수업에서도 고흐는 인기가 많다. 그 유명한 해바라기부터 별이 빛나는 밤,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등 고흐의 그림은 한번쯤 그려보고 싶은 대상인 것 같다.
하지만 정작 그림은 나와 둘만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야하지 않던가. 색은 오묘하고, 두텁게 덧칠하는 스타일이 익숙하지 않았고, 두렵기도 해서 초벌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움트는 건, 매력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 특히, 아몬드 나무는 좋아하는 작품이지만 쉽게 시작할 수 없었다. 자연이라는 소재의 형태를 잡는 일은 쉽지 않기에 특히, 하나의 주제가 없이 모두가 주제가 되고 말 듯한 반복적인 가지와 꽃을 묘사하는 일이 어렵게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 무학자로서 부족한 기초를 채우기 위해 주말마다 2시간씩 진행되는 미술수업을 시작하면서 일 년 정도 매주 꾸준히 하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또 이 그림을 완성하고 나면 어떤 그림도 겁날 것이 없을 것 같은 무참한 기대로 시작했다. 바로 꽃 피는 아몬드나무를 말이다.
고흐의 대표작으로도 손꼽히는 ‘꽃 피는 아몬드나무’는 오묘한 색들로 이뤄진 나뭇가지에 하얗게 핀 작은 꽃들. 배경은 묘하게 푸른데, 잎은 없다. 유럽에서 아몬드나무는 봄이 오는 것을 가장 먼저 알리는 파수꾼이라고 한다. 우리의 동백처럼.
겨울이 지나면 가장 먼저 피는 꽃이기에 부활을 의미하기도 한다는데, 겉으로는 평온하고 화사한 자태를 하고 있지만 정작 보호막이 되는 잎이 없다. 추운 겨울바람을 견뎌내는 아픔이 있는 나무. 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이른 봄 다른 나무보다 일찍 꽃을 피운다. 고흐는 이 아몬드나무를 통해 사랑하는 조카의 생명을 축복하는 애틋한 마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이 그림을 시작한 건 지난해 11월. 가을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였다. 봄이 아니라, ‘가을을, 탄다고, 내가…’. 패기 넘치던 젊은 시절을 지나 이제 막 중년을 스스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잠잠하던 마음에 세찬 바람이 관통하고 있었다.
덜컥 다가온 가을은 내가 타던 봄과 많이 달랐다. 내게 봄은 설레고 신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가을이라는 것은 들떠서 오랜 시간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낙담했다, 다시 들뜨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에 봄을 만났다.
내게 이른 봄을 선물해 준 이 그림은 바로 ‘꽃 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있다. 73.3×92.4cm로 30F 사이즈 정도인데, 내가 그린 모작 캠퍼스의 크기는 12F 50.0×60.6cm로 원작의 2/3 정도다.
캔버스가 커지는 만큼 묘사의 영역은 늘어나고, 그만큼 표현해야 하는 것들도 많아진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캔버스가 커지는 만큼 책임이 커진다고들 말하기도 한다. 구도부터, 작은 묘사까지 더 해야 할 몫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원작과 같은 크기의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독학을 할 자신도 없어 단체 수업에서 할 수 있는 최대 사이즈를 선택한 것이 12F. 대장정이 될 것이라는 염려 속에 완성 뒤 좀 더 근사한 뷰를 기대하며 두께를 일반적인 캔버스보다 좀 더 두꺼운 것으로 선택했다.
스케치북에 사전 스케치를 하지 않고 캔버스에 직접 하는 경우엔 실수를 줄이기 위해 구획을 나눠서 진행하기도 한다. 참고한 A4 사이즈의 이미지도 1/16, 12F 캔버스도 1/16로 조각보가 되었다.
시작과 동시에 겁을 먹어서 일까 담을 넘어가는 듯한 구렁이 한마디 등장이다. 실제로는 구불구불한 가지도 스케치는 직선을 연결해서 구도를 잡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아 첫날 심정은 언제나처럼 ‘이 그림이 끝나긴 할까’ 였다. 스케치만 3일. 대충 한 스케치는 필망. 잘못된 기획은 실행의 단계에서 박살이 나듯이 잘못된 스케치는 채색을 할수록 이상해진다는 교훈을 기억하며 눈물이 나도록 프린트한 원본 그림과 캔버스를 보고 또 쳐다보았다.
나름대로는 스케치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실제 채색을 시작하면 있어야 할 위치에 꽃이 없거나 가지의 각도가 달라 다시 형태를 다잡아야 하는 경우도 잦았다.
코로나19가 무색하게 꽃이 피던 지난봄부터 꽃을 그리기 시작해 무더운 여름을 지나며 매주 2시간씩 어김없이 그림 앞에 앉아 손톱만 한 꽃 두 뭉치와 잔가지 하나를 그려오곤 했다. 더디지만 즐거웠다.
다시 가을이 다가온다. 하지만 쓸쓸한 그 계절이 지나면 또 다시 봄이 찾아올 것이다. 아몬드나무의 이 작고 하얀 예쁜 꽃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