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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마레 Nov 07. 2021

아프리카 냥이 수푸의 초상화

루벤스의 수태고지에도 고양이는 등장한다

“어멋!! 이렇게 예쁜 냥이는 누규?”

“탄자니아 다레살람에 사는 여섯살 난 고양이 수푸입니다”


내가 냥이 초상화를 그리게 될 줄이야. 지난번 한라산 강아지 숑이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집 냥이도 그려줘"를 외치는 항의성 힐난과 "깍!" 예쁘다고 돌고래 소리를 낼 캣맘, 캣파파들이 여럿이다.


시작은 지난 8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고양이 수푸를 두고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러 한국에 온 J언니의 안타까운 상황 때문이었다. J언니는 8년 전 아프리카로 떠나 케냐를 거쳐 지금은 탄자니아에서 근무하고 있는 글로벌 NGO 활동가로 나의 한때 하우스메이트다.


탄자니아에서 공공화장실과 우물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J언니는 한국 도착과 동시에 PCR 검사 후 2주 격리를 한 뒤, 1차 백신을 접종하고 3주 뒤 2차 백신 접종을 하고 다시 PCR 검사 후 탄자니아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으로 한국에 왔다. 이른바 백신 휴가다.

1만에 만난 J언니로부터 지난해 탄자니아에서의 위험했던 상황과 긴박했던 시기에 다레살람으로 이주, 그곳에서 현지 직원들과는 분리되어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근황을 들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야말로 J언니와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한 고양이 수푸가 너무 소중하고 고마웠다.  다레살람 지인의 집에 맡겨두었다는 수푸가 염려되고 보고 싶기까지  것이 아닌가.


고백하자면 난 고양이들과 잘 지내는 편이 아니다. 지독한 비염 보유자인 내게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는 건 공포에 가깝다. 어린 시절 마당에서 강아지를 키운 경험은 있어 고양이보다는 강아지가 더 친숙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수푸는 시선을 끄는 아이였다.  

수푸는 스와힐리어로 ‘예쁜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먼저 만난 아프리카 고양이 수푸는 꽤 매력적이었다. 고양이는 처음이지만, J언니의 카톡 프로필 여러 장을 차지하고 있는 수푸의 모습 중에서 표정이 재미있는 사진을 하나 골라 스케치를 시작했다.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을 극대화하고 싶어서 눈앞에 나비도 한 마리 그려주었다. 평소 고양이 수염과는 다르게 사진 속 수푸는 수염이 앞을 향해 있는 만큼 호기심을 일으킨 무엇인가에 집중한 것 같은데,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고양이를 그리는 걱정스러움에 고양이의 형태와 색 표현에 대해 알아보려고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봤는데, 루벤스의 수태고지에도 고양이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엄청난 상황에도 편안히 쉬고 있는 고양이라니… 대단한 녀석들이다.

루벤스. 수태고지. 1628. oil on canvas.79x55cm. 안트웨르펜 루벤스 하우스

루벤스의 시대에 수태고지를 주제로 한 그림 속에도 고양이를 그려 넣을 정도니까, 요즘 가족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반려동물의 모습을 기록하려는 이들의 움직임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프리카 냥이 수푸와는 이름도 비슷한 제주도 냥이 수프도 있다. 수프는 제주 서귀포에 사는 H언니의 가족이다. 그녀는 내게 한동안 수프를 그려달라는 지속적인 엄청난 압박을 하다가 포기하고, 결국 아이패드와 펜을 사서 직접 그리기에 나섰다.


덕분에 나는 잘 알지도 못할 수프의 장난스러운 표정과 스타일이 잘 드러났다. 참, 그리고 아프리카 냥이는 수푸, 제주도 냥이는 수프다. 헷갈리지 말자. 아니, 계속 헷갈린다.

H언니가 아이패드로 그린 반려묘, 수프

서귀포에 살 때 만난 한 후배는 반려동물들의 초상화를 주문받아 그리는 일을 한다. 의뢰인들로부터 반려견, 반려묘의 사진을 전달받아 아이패드로 그린 다음 이미지 파일을 전달하는데, 한 달에 몇 작품밖에 할 수 없어 주문이 밀려있다고 한다.


하지만 난 여전히 직접 물감을 직접 짜고 색을 얹은 유화가 더 좋다. 물감이 조금씩 더해지면서 캔버스가 묵직해지는 느낌도 좋다.

강민아. 수푸 아프리카 예쁜이. 2021. oil on canvas. 19.0×33.4cm

고양이 수푸는 강아지 숑이를 그릴 때보다 조금은 더 능숙하리라 생각했지만, 곱슬곱슬 뭉치는 강아지의 털 표현과 고양이의 짧고 날카로운 털 표현은 많이 달랐다. 이렇게 또 배운다.


지난 주엔 여름부터 틈틈이 그려온 수푸의 초상화를 다 그렸다고 사인도 하고 사진도 찍었는데, 냥이의 상징인 긴 수염을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 12시간 탈출극을 함께한 J언니의 가족 수푸의 초상화는 우여곡절 끝에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내게는 임보를 맡았다가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엄빠가 된 선배 부부의 고양이 ‘코루’의 초상화가 기다리고 있다. 난 이렇게 고양이 화백이 되는 걸까. 두근두근.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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