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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마레 Sep 01. 2021

어린이라는 세계

캐러멜 맛 과자를 먹는 아이

2021년 봄, 어린이날을 앞두고 친구의 추천으로 아이들의 책 공부방 선생님이 쓴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에세이를 전자책으로 읽었다. 봄의 따뜻함을 나누는 마음처럼 간질간질해지는 동심을 느껴보고 싶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어린이들 덕분에 웃고 울다가 문득 열 살 난 조카가 떠올랐다.


현유는 숙제하기를 싫어해서 미루고 미루다가 엄마에게 야단맞는 경우가 잦지만, 피겨를 무척 좋아할 만큼 활동적이고, 때때로 아빠의 비논리적인 점을 정확하게 지적해서 가족들을 놀라게 하는 자기주장이 분명한 어린이다. 다소 엉뚱하지만, 독특한 면모가 많은 이 어린이와의 대화는 꽤 즐거운데, 최근엔 코로나 단계가 높은 탓에 만나기 어려워 아쉬운 참이었다.


핸드폰의 사진첩을 뒤져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현유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것 같은 사진을 골라 스케치를 시작했다. 올해는 어렵겠지만 내년 어린이날엔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언젠가 현유도 나를 그려준 일이 있다. 물론 초상화는 아니었지만. 언젠가 부산에서 만나 해운대해수욕장에 함께 갔었는데, 어린이집에서 지난주에 있었던 즐거운 일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면서 우리 부부와 함께 바닷가를 산책했던 모습을 선택한 것이다.


그림을 본 현유의 아빠는 모래사장이 왜 녹색인지, 하늘은 파란색이 아닌 왜 핑크색인지 그림 속 인물들이 누구인지 물었다. 생명공학 박사인 그는 학창 시절부터 예체능을 외면하고 예능에만 집중하며 살아왔다.


피부색에 정답이 없듯이 하늘도, 바다도 그러할 것이기에 나는 현유를 대신해 노을이 지던 시간의 하늘이고, 해수욕장 뒤편 솔숲에 갔었다고 설명하고, 상상 속 그림이라면 어떤 색이라도 칠할 수 있다고, 멋진 그림이라고 폭풍 칭찬을 이어갔다.

하지만 내가 이 그림에서 무엇보다 마음에 쏙 들었던 건 바로 토끼 모양 구름이었다. “토끼 구름, 나비 구름 짝을 지어서~” 이 노래를 부르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푸른 산에 갔던가. 그런데 진짜 토끼 모양 구름이 등장하다니.


현유는 고모인 나를 코미, 혹은 꼬미라고, 나의 남편은 코미부 또는 꼬미부라고 부른다. (자기가 귀엽겠다고) 고모를 귀엽게 부르는 상황에서 생긴 닉인데, 결과적으로는 서귀포 이중섭 거리의 카페 메이비 사장님이 키우는 갈색 푸들의 이름과 같다. 나=코미=푸들?!?!?!


현유는 만날 때면 그림을 그려달라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을 그린 이 그림을 보고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미술대학 교수이자 화가인 내 미술 선생님은 그림은 선물하기보다  팔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곤 하신다. 선물 받은 그림은 필요해서 혹은 마음에 들어서 비용을 들여 구매한 것과는 다르게 부담스럽기만 한 선물이 될 수 있고 보관하기도, 버리기도 곤란할 수 있을 테니까.

강민아, 캐러멜 맛 과자를 먹는 아이. 2021. oil on canvas. 53.0x45.5cm

누가 이 그림을 사게 될까? 코미가 그린 그림 자기 자신이니까 초상화의 주인공인 초딩 현유가 모은 용돈으로, 혹은 예술을 잘 모르지만 딸바보 아빠가, 혹은 딸이 그린 손녀의 그림이니까 모두의 행복을 위해 할머니가, 그림의 가치를 봐야지라고 주장하는 할아버지가 완성된 그림을 보고서, 혹은 스케치를 할 때 생각한 것처럼 현유에게 선물해야 할까?


이 그림은 어디에 머물게 될까. 그 행방이 무척 궁금하다. 조카 현유를 그린 이 그림은 결국 모델의 할머니가 소장하게 되었다. 꽤 시간이 흘러 그림을 배워온 지역의 문화센터에서 단체 전시회를 열게되었고, 이 사진을 전시하게 되었다

지난여름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초상화전에 다녀왔다. 영국의 역사 속 주요 인물부터 예술가, 작가, 가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초상화를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인물의 특징을 잡아낸 상징적인 요소와 심리적인 면모까지 더해져 하나의 초상화를 오랫동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영국 여왕부터 호크니, 프로이트, 비틀스, 에드 시런에 이르기까지 제각각의 특징을 잡아낸 초상화들을 보면서, 내가 그린 현유의 초상화는 그 어린이의 특징을 잘 잡아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현유의 초상화를 그리는 동안 현유와 장난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느낌은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좋아하는 사람들을 그리면서 나만이 알고 있는 그들의 특징을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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