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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마레 Jan 22. 2021

그림도 늙어간다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제목이 길다. <미술품을 치료하는 보존과학의 세계> 부제도 길다. 제목에도 부제에도 ‘과학’이 들어간다. 과학책인가?


이과생이 정했을 것 같은 이 명확한 딕션의 제목이라니, 죽음과 떡볶이를 나란히 쓴 감성 터지는 에세이 제목만큼이나 불편하다. 거기다 예술도 묻어있다는 건데... 뭐지 싶으면서도 호기심이 일었다.


책을 좀 살펴보았더니 저자는 과학고와 카이스트 출신으로 우연히 미술품 보존 분야에 꽂혀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실제 미술관에서 복원 업무를 해온 보존가, 보존과학자로 은유적으로는 ‘미술품 의사’라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러니까 과학자와 예술가의 교집합 영역에서 다소 과학적이면서 예술적 활동을 하는 흔히 접하기 어려운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였던 것.


두 영역이 교집합으로 묶이기 어렵다는 것은 점에서 공감이 일었다. 석탄과 발전설비를 도구로 에너지와 리더십, 혁신, 신뢰, 그린 뉴딜, 심지어는 행복을 파는 게 나의 일이니까.


최근 발견한 책 추천하는 팟캐스트 리스트에서 제목만 접하고 방송은 듣지 않은 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는 셰익스피어가 전염병을 피해 칩거하며 <리어왕>을 썼다며, 강력 팬더믹 덕분에 몇 년째 들고 다니던 글 뭉치를 풀어놓을 잉여의 시간이 생겼다고 했다.


나는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브런치의 다른 매거진에서 유화를 그리며 겪은 이야기를 담은 <그림 산책> 쓰고 있었을까? 팬데믹 덕분에 모든 수업은 중단되었고 미술품의 보존을 둘러싼 이야기를 읽고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는   없었을 놀라운 세계를 알게 되었으니 셰익스피어 만한 행운인 건가.


미술품 보존은 전혀 알지 못했던 분야라서 신기하기도 하고 또 자신의 영역에서 이렇게 풀어놓을 이야기가 있다니 저자가 부럽기도 했다. 세계 미술관을 다니거나 그림을 본 감상으로 책을 내놓는 자칭 평론가들의 글에서는 찾기 어려운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


성당의 예수님 그림이 세월 속에 지워져 가는 게 아쉬워 직접 떨어진 부분에 물감을 채워가다 원숭이를 그려 넣은 할머니, 고흐가 동생 태오에서 쓴 편지에 등장하는 레슬러들의 그림을 찾지 못했는데 가작으로 평가된 한 꽃 그림 아래 그러니까 아래 층위에서 발견되었다거나 하는 복원을 둘러싼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도 즐거움을 주었다.


나는 5년 남짓 유화를 취미로 그려오면서 실제로 궁금했던 많은 부분을 이 책 속에서 해결하기도 했다. 실제 화가들은 그림으로 표현하다 보니, 글을 쓰지 않아서 인지 제작 과정에 대한 책이나 글이 거의 없다. 아쉬워하던 차에 브런치에 주로 유화를 그리는 과정에서의 이야기를 담게 된 것이다.


전공자가 아닌 상황에서 그림을 그려오면서 완성한 지 몇 년 만에 유화의 표면이 갈라진 이유와 빛과 색, 그리고 세월이 미술작품에 미치는 영향에 이르기까지... 모르던 많은 부분을 보존의 영역에서 공부하고 겪은 경험을 한 저자에게 듣게 되다니 꽤 풍성했고 유익했다.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 김은진 / 생각의

2021.1.15-20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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