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을 우연히 엿보았… 누군가 내 이야기를 써 준 것 같다면
<편집후기>는 오경철이라는 출판편집자의 첫 번째 책이다. 난 이 책을 알라딘 추천 목록에서 본 뒤 아무 고민 없이… 주저함 없이 주문했고, 책이 도착한 그날부터 손에서 놓지 않고 한 번에 읽었다. 평소와는 달리 다른 책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작지 않은 글씨에 자간도 넓은 200페이지 후반의 두껍지 않은 책이었으니 긴 시간이 걸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마음이 복잡했던 탓에 딴짓을 할 법도 했지만, 주말 내내 더디게 읽었다.
저자는 나와 같은 학번에 동갑으로 Y대 국문과를 졸업한 재원이었다. 군대를 다녀왔을 테니, 출판사 취업은 나보다 2~3년 정도 늦었을 테지만, 사회 초년병 시절 내가 보았던 출판사 풍경과 별로 다르지 않은 그 시절을 책 속에서 오롯이 보여주었다.
그리고 20년 남짓한 시간 동안, 편집인으로 살아오며 겪어낸 ‘일의 기쁨과 슬픔‘을 진솔하게 담고 있었다. 물론 그는 나보다 스펙이 좋았고, 역량도 뛰어났을 테니 좋은 출판사에 입사했을 테고, 지금까지 출판인으로 살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지방대 신방과를 졸업했던 20대 초반의 나는 언론사 시험에 낙방을 이어가다, 좋아하는 책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출판사에 이력서를 넣기 시작해 자기 계발서를 주로 내는 출판사에 겨우 입사해서 3개월 만에 퇴사했다. 내가 경험한 출판사가 모든 출판사를 대표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출판사에 머무는 중에도 다른 몇몇 출판사 면접을 보기도 했는데, 그 짧은 기간 동안 나는 알아버렸다.
책은 사서 읽는 게 가장 좋은 거라는 걸.
첫 직장이라고 부르기엔 짧은 기간이지만, 나 스스로에겐 흙역사로 남았다. 그 출판사를 그만둔 뒤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나는 한 에너지 공기업 홍보부에서 일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그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
저자의 첫 책을 읽은 뒤 몇 달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책 <아무튼, 헌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그가 중국어를 전공하다 Y대 국문과로 편입했고, 졸업 후엔 한 보일러 회사의 홍보부에 취업했다가 교육기간 중에 퇴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홍보인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일까? 아니면, 출판인이 되어야만 한다는 걸 알았던 것일까 궁금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의 책을 통해 내가 가보지 않은 출판편집인의 길을 엿보게 된 것은 분명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어쩌면 내 시간은 어쩌면 그가 가보지 않은 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대학을 졸업하고 인턴과 알바 사이 어딘가에 머문 상태일 때부터 나는 신촌에 살았고, 저자가 책 속에서 늘 다녔다고 쓴 그 헌책방들을 나 역시 쑤시고 다녀왔으니 어느 헌책방 입구에서, 계산대 앞에서, 책장 코너에서 스치듯 지나쳤을 것이다. 좋아하는 장르마저 겹치니… 대체로 문학이라고 해두자. 오히려 마주치지 않은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가 소개한 다양한 에피 역시 겹치는 것이 많았다.
그가 내 이야기를 읽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지 않은 것은 내가 <보일러 홍보하는 사람으로 사는 후기>라는 책을 쓰지 않은 탓이고, 내 헌책방 이야기도 꺼내놓지 않은 탓은 아닐까. 물론 안물안궁일 수도 있다. 그래도 이 글은 내 글이니 어쩔 텐가.
내 헌책방 이야기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되는데, 부산대 앞 헌책방들을 시작으로 국제시장 앞 보수동 헌책방거리까지 섭렵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읽은 소설이 지금 평년 기준으로 2-3배는 훌쩍 넘을 것이다. <편집후기>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애잔함이 녹여져 있었다면, <아무튼, 헌책>은 그냥 내 헌책 이야기를 누군가 대신 써 준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편집후기>의 첫 문장처럼 ‘책을 많이 읽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편집자가 된다’ 하지만 편집자가 책을 만들기 위해 마주하는 원고는 좋은 문장이기 어렵다. 책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들의 과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책을 만들 수는 없다.
홍보는 어떤가. 홍보는 책을 만드는 일은 아니지만, 온갖 과정을 거쳐 결국엔 좋은 문장에 기반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관계를 이어가는 일이다. 둘은 다르면서도 닮았고, 비슷하지만 분명 다르다.
저자의 책에서, 우연히 연결된 소셜미디어에서 일을 멈추고 글을 쓰고 싶어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그러하기에 응원한다. 지금은 멈추어 버린 그의 소셜미디어를 떠올리면서… 그가 진솔한 글을 쓰고 있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