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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 윤 May 11. 2020

팥죽

인자 팥죽은 고만 물란다.

 동짓날이란다. 텔레비전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냥 넘기자니 엄마가 섭섭해할 것 같고, 끓이려니 귀찮았다. 먹는 사람이 엄마와 나뿐인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귀찮은 마음이 컸다. 난 먹지 않아도 그만인데 엄마가 걸려 마음이 무거웠다. 겨울비도 촉촉이 내리고 꼼짝도 하기 싫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휴대폰으로 이 곳 저곳만 기웃거리며 망설이고 있었다. 

 어른을 모시고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올해가 마지막이 되려나.’하는 생각이 들어 무엇이든 하게 된다. 엄마는 팔순이 지나면서부터 구 년째 아침밥을 드실 때마다 “아이고, 이번 설만 지내고 따뜻한 봄이 되면 가야 할낀데.”하신다. 처음에는 이런 소리를 듣고 엄마의 몸이 조금만 아파도 걱정이 되고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은 몇 년을 듣다 보니 간이 커져서 인지 조금씩 무뎌져 간다. 이별에 적응되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속엔 두 마음이 있다. 한 마음은 ‘야, 엄마가 살아 봐야 얼마나 살겠니. 팥죽 한 그릇 끓여 드려.’하며 날 재촉했다. ‘에고, 맞다. 잠시 나갔다 오자.’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나서려 했다. ‘야, 끓여도 기껏 한 그릇 드시고 말 것을 왜 끓이나? 그냥 한 그릇 사다 드리고 말어.’다른 마음이 귀찮아하는 날 부축이며 막아섰다. 다시 리모컨을 들고 텔레비전을 켰다. 그렇게 마음속의 싸움이 벌어지면서 나는 중간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잠시 앉아있었다.

 마음속의 싸움이 끝날 무렵 손가락으로 머리를 대충 쓸어 넘기고 집을 나섰다. 팥죽 한 그릇 끓여 드리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았다. 몇 해 전부터 끓이기 시작한 팥죽인데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끓이겠나 싶은 생각이 뭉클거리고 올라왔다. 새알은 만들어진 것으로 준비했다. 팥을 푹 삶아 소쿠리에 담아 문질러 팥 앙금을 만든다. 붉은빛에 나쁜 기운이 달아나길 바라며 어린 시절 엄마가 만들어주던 그 맛을 흉내 내어봤다. 

 어린 시절엔 온 가족이 둘러앉아 동글동글 새알을 빚었다. 엄마는 한 번에 새알을 두 세 개씩 만들었다. 아무리 따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하얀 새알이 금세 넓은 그릇 한 가득이다.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엄마는 붉은 팥물이 푸드덕거리며 끓어오르는 새알을 붙지 않게 골고루 펴 넣었다. 붉은 팥물은 하얀 새알을 부지런히 위로 밀어 올렸다. 새알이 동동 떠오르면 팥죽이 완성된다.

 “새알은 나이만큼만 먹어야 한데이. 안 그라믄 자고 일어나면 늙은 할매가 돼 삔데이.”

엄마는 심각한 얼굴로 우리에게 말했다. 한 번 먹을 때 절대로 많이 먹으면 안 된다며 다시 말하고는 한 그릇 가득 팥죽을 담아 주었다. 하나하나 헤아려가며 먹는 팥죽은 나를 안달 나게 했다. 몇 개밖에 먹지 못해서 억울했다. 빨리 커고 싶은 마음에 몰래 몇 알 더 먹은 밤은 걱정으로 지센 적도 있다. 혹시나 아침에 눈을 뜨면 정말 늙어 버리면 어쩌나 두렵고 무서웠다.

 꽁꽁 얼어 있는 새알의 쫀득하고 고소한 맛은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긴 겨울날 봉창 아래 내놓은 팥죽 속의 새알을 엄마 몰래 파먹으면 팥의 달콤함과 새알의 고소함이 뒤엉켜 입안 전체에 퍼졌다. 음식에는 향수와 추억이 묻어 있다. 음식은 추억으로 먹는다. 옛 생각에 다시 찾는 음식은 그때의 맛이 없다. 입맛이 변한 건지도 모르지만 그때 같이 먹었던 사람이 없어 더 그렇지 싶다. 그리운 맛은 추억을 끄집어낸다.

 동지를 흔히 ‘작은설’이라 한다. 태양의 부활을 뜻하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 설 다음 가는 대접을 받는다. 절에서는 이 날 팥죽을 끓여 서로 나누어 먹으며 서로의 건강을 빌어준다. 일 년 중 동짓날 밤이 가장 길다. 이 날만 지나면 밤은 차츰 짧아지고 따뜻해진다.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봄은 새해의 시작이다. 그래서 팥죽을 먹어야 진정 한 살 더 먹는다고 했다. “이 긴 밤을 우째 또 보낼꼬.”하는 엄마의 한숨도 차츰 줄어들지 않을까 한다.

 팥죽이 제법 모양을 갖췄다. 엄마가 끓여주던 것과 모양새가 제법 그럴싸하게 닮았다. 하지만 엄마의 맛은 따라가지 못한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죽을 한 그릇을 보기 좋게 담았다. 모든 것에 어울리는 궁합이 있듯 팥죽에도 어울리는 것이 있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다. 살얼음이 동동 뜬 것은 아니지만 옛날 엄마가 주시던 그 모양으로 최대한 구색을 맞췄다. 

 “엄마, 오늘 동지라네. 맛은 어떨지 모르겠네. 따뜻할 때 드셔 보셔. 엄마 나이만큼 먹어야 하는 데 울 엄마 오늘 배 좀 부르겠는데.”

내 말에 엄마는 

 “인자 팥죽은 고만 물란다. 안 그래도 많은 나이 또 한 살 억지로 무면 우짜노. 아이고, 인자 나이 더 안 물라 했더만 우리 막내 성의를 봐서 한 숟가락만 무보까?”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틀니를 빼고 아래턱을 부지런히 움직여가며 한 그릇을 비웠다. 홀쭉한 입을 닦으며 막내 덕에 배불리 먹어 긴 동짓날 밤 잘 잘 것 같다며 연신 고마워했다.

끓이길 잘한 것 같다. 귀찮아했던 내 마음이 엄마가 비운 팥죽 그릇만큼 가벼워졌다. 웃는 엄마 얼굴만큼 기쁨도 가득하다. 차츰 봄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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