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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 윤 Mar 13. 2020

엄마의 봄

엄마의 방문 앞에 서면 가슴이 조여 온다

엄마는 담배를 즐긴다. 유복자인 나를 낳고부터 피기 시작했다고 한다. 속앓이를 하는 엄마가 안쓰러워 주위 아주머니들의 권유로 시작했단다. 엄마는 담배가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 갈까, 거동이 자유롭지 못해 요강을 사용하니 사위가 불편해할까, 본채에서 돌아가면 나오는 작은 방에 기거하신다. 엄마가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요강을 문 밖에 두는 일이다. 밤새 잘 주무셨다는 표시기도 했다. 



매일 아침 엄마의 방문 앞에 서면 가슴이 조여 온다. 가슴이 콩닥이고 침이 마르는 긴장감이다. 밤새 안녕이란 말을 경험해 본 나이기에 그 심정을 잘 알고 있다. 시아버지께서 정말 저녁 잘 드시고 주무시는 길로 영영 세상을 떠나셨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말이 있다. 이 세상 삶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길이 이토록 쉽고 간단한 일인지 몰랐다. 난 불안한 마음에 신발 소리도 요란하게 내어 본다. 엄마가 듣고 일어 나 있기를 바라며 엄마 방문을 연다. 


엄마는 언제나 반듯이 누워 계셨다. 문을 열고 들어가도 미동이 없다. 나는 엄마를 부르며 내려다본다. 엄마의 움푹 들어간 눈과 힘없이 반쯤 열린 입으로 손을 가져가 본다. 작은 엄마의 몸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갈비뼈 마디마디 골이 생긴 앙상한 가슴에 귀를 바짝 기울여 본다. 말라붙은 가슴이 조금씩 팔덕이고 있다. 내가 어린 시절 저혈압으로 자주 쓰러 졌던 엄마의 모습으로 자연스레 생긴 주검을 체크하는 방법들이다.


엄마는 인기척에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어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올려 본다. 

“아이고 야야, 놀래라. 밖에 비 오나?” 

습관처럼 하시는 말이다. 산에 꽃이 피었는지, 잎이 돋았는지, 무엇이 그리 애타게 봄을 기다리게 하는지, 일 년을 넘게 계절과 날씨 상관없이 물어보셨다.

“엄마 오늘 큰 언니 온다던데.”

갑자기 초점 없던 엄마의 눈이 갖고 싶은 장난감은 선물 받은 아이의 영롱한 눈처럼 반짝이기 시작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보고 싶은 이도 많은가 보다. 며칠째 보고 싶어 꿈에 보인다던 큰 언니의 방문 소식에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언니 오는 것도 볼 겸 계단으로 가서 머리를 빗자고 하셨다. 힘없는 다리를 겨우겨우 옮겨 바깥세상이 훤히 내려 보이는 햇살 좋은 곳에 자리했다. 희끗희끗한 윤기 없는 머리를 참빗으로 곱게 빗어 넘겨 몇 되지 않은 머리카락을 닿아 나비 핀으로 고정시켰다. 동글동글 예뻤다.

 “아이고 시원하다. 누가 이리 해주겠노. 죽어라고 쳐 박아 놓았던 니가 내를 이리 해주네. 내가 니한테 해 준기 뭐 있다고...”

“엄마는 당연히 내가 해줘야지요.” 

언제나 미안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셨다.

“저그 너거 언니 아이가?”

정말 언니였다. 엄마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흐릿한 눈으로 얼마나 한 곳을 향해 있었던지 저 멀리 오고 있던 언니를 먼저 알아보았다. 자식을 그리는 마음이 이토록 간절한지 왠지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언니도 손을 흔들며 뛰어 왔다. 


“우리 엄마 오늘 진짜 참하네. 시집가도 되겠다.” 

언니가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인사를 했다. 구십을 넘보는 엄마도 육십을 넘보는 언니도 햇살 좋은 오후 한가하게 장난치며 뒹구는 어미와 새끼 고양이 마냥 천진한 얼굴이었다. 엄마를 덥석 안아 차에 태우고 휠체어를 싣고 외출을 했다. 워낙 작은 체구라 업고 움직이면 편하다. 그럴 때마다 전해오는 엄마의 무게와 온기가 줄어들고 있음을 느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뭉클함이 올라왔다. 나는 휴우~ 긴 한숨으로 슬픔을 숨기며 웃어 보였다. 


봄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왔다. 햇살 또한 아름답게 비추었다. 나는 거울로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엄마와 언니를 훔쳐보았다. 둘은 아담한 몸에 쌍꺼풀이 짙은 큰 눈, 오목한 콧방울까지 닮아 있었다. 딸 셋 중에 큰 언니가 가장 엄마와 닮았다. 신이 난 엄마는 연신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나도 덩달아 목소리가 커졌다. 엄마가 저리 좋아하는데 다들 자기 살기 바빠 엄마가 기다려 주지 않음을 알고 있지만 현실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다.

점심으로 찹쌀 수제비를 먹기로 했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것이라 종종 오는 집이었다. 휠체어에 앉아 여기로 가면 어디고 저거는 무엇이고 하며 말을 막 배운 아이처럼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찹쌀수제비가 나왔다. 


“아이고, 시원하겠다. 잘 묵어꾸마.”

엄마는 힘없는 두 손으로 그릇을 감싸고 뜨거움도 잊은 채, 그릇에 얼굴을 묻고 국물을 들이켰다. 

두고두고 생각 날 음식. 새가 울고 꽃이 피는 햇살 좋은 날이면 더 그리워질 울 엄마의 모습. 엄마도 우리도 이제 다가 올 엄마의 봄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알고 있다. 엄마의 그렇게 총명한 눈동자가 자주 흔들림을 느낀다. 언니와 난 말이 없었다. 우리의 시선은 온통 엄마에게 머물렀다. 엄마의 소중한 모습 하나하나를 기억하기 위한 눈빛이다. 봄은 때가 되면 돌아온다. 하지만 엄마는 한 번 가면 영영 볼 수가 없다. 엄마의 봄이 조금 더 오래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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