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25일의 기억을 더듬다.
더블린에 와서처음 본 하우스메이트 인터뷰를 마치고 20분 가량 버스를 타고 홈스테이 가정으로 돌아온 나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첫날의 주소지 불명 사건에 대한 사과의의미로 그 전날을 집 옆에 위치한 하루 60유로짜리 게스트 룸에서 지낸 나는, 내가 원래 신청한 방으로 옮겨가기 위해 방에 들어가 짐을 모두 꺼낸 후 홈스테이의 벨을 눌렀다.
[어서와, 오늘 어때?] [뭐, 그저 그랬어. 나 이제 내가 쓸 방으로 옮겨 갈께. 아, 혹시 나 테스코에서 산거 냉장고에 좀 넣어둘 수 있을까?] [엄… 미안한데 우리는 학생들이 음식 사 놓은 거 냉장고에 못넣게 하고 있어.] [그럼 요리도 안되겠네?] [응. 미안해.] [응. 알았어. 규칙이라니 어쩔 수 없지. 이따 봐.]
방으로 올라와 내 인생의 낙 중 하나인 요리를 여기 머무를 13일간 못하게 될 거란 생각에, 기분이 살짝 나빠졌다. 이윽고 저녁시간이 되었고, 냉동 감자튀김 데우는 냄새와 생선튀김 냄새가 났다. 리뷰에서 저녁식사가괜찮다는 말을 들었기에, 저녁 먹으라는 소리를 기다리는데 아무도 노크를 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시 한 번 홈스테이 에이전시의 소개글에서 추가사항 항목을 클릭해보니, 역시나.
<가벼운 아침(우유+시리얼) 제공됨. 빅 브랙퍼스트는 4유로추가시 가능. 점심은 끼니당 2유로, 저녁은 4유로. 빨래는 10유로>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홈스테이를 예약할때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은 부업 삼아 홈스테이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돈을 밝히는 경향이 명백히 보였었다. <아이리쉬 전통 저녁식사는 끼니당 6유로 추가. 점심도시락 2유로. 픽업서비스 30유로. 영어 과외 시간당 10유로> 등의 보기 거북할 정도의 상업성이 풍기는 광고가 많았기에, 아무래도 용돈 벌고, 적적함을 달래려고 홈스테이를 하는 것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들 위주로 연락을 다 취했었는데, 모두 다 현재 방이 없다고 거절당했고,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먼저 연락이 온 아주머니가 평가가 나름 괜찮고, 가격도 저렴해 신청했었는데, 역시 처음의 내 예상이 맞은 것 같았다.
일단 저녁은 때워야겠기에, 더블린에 도착하자마자 내 입천장이 다 까지게 만든 주범인 워커스 솔트앤 비니거 감자칩 한봉지를 가방에서 꺼내 펑 터뜨려 뜯고, 센트레에서 산 단맛이 전혀 없는 사과를 우적우적 씹어먹으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강매 당하는 느낌때문에 기분이 뭔가 나빴지만, 그렇다고 집에 있는 사람들이 아래층에서 하하호호 웃으면서 저녁 먹는데혼자 방에 혼자 콕 박혀 감자칩과 요거트, 과일 따위로 쓸쓸하게 침대에 앉아 미드나 보며 저녁을 때우기도 싫었다. 그리고 4유로라면 밖에서 사 먹는것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싼 수준이었기에, 하루에 한 끼 정도는 따뜻한 음식을먹어주는게 그냥 서로 윈윈이겠다. 하는 마음이 드는데, 또 막상 나 내일부터 저녁 너네랑 먹을께! 라고 하기엔 돈 안쓰려 버티다 굴복하는 것 같이 보일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작은 상황극을 하기로 결심했다.
[설리반 아줌마, 저 잠깐 나갔다 올께요.] [응. 어디 가게?] [잠깐만 쇼핑센터. 아까 시티 센터 페니스에서 본 티셔츠가 너무 마음에 든 게 있었는데, 거기 사이즈가 없대서, 옴니센터 페니스엔 있나 보려구.] [어? 지금 닫았어 쇼핑센터.][정말?(나도 알아. 이 아줌마야. 나도 인터넷 찾아봤어.)] [응,거기 일주일에 몇 번씩은 일찍 닫아.] [아. 할수 없네. 근데 나 저녁도 안 먹었어.] [정말? 센트라는 아직 열려 있을꺼야. 거기 다녀와.] [흠. 근데 사실 나 홈스테이에서 저녁 제공되는게 돈 받는건 줄몰랐어. 당연히 숙박료가 저렴해서 리뷰를 보고 저녁 제공이란 걸 안 믿기긴 했지만.] [홈페이지에 나와있었는데?] [응. 근데 그거 지금 봤어. 그런데 내가 집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나, 알아야 할 점이 있냐고 도착전이나 도착 후에 계속 물어봤을 때 말해줬으면 좋았을 것 같아. 출국 날짜가 다가와서 급해서 잘 안 읽어보고 컨펌했었거든.] [오, 미안해. 너말고 사실 집에 묵고 있는 프랑스인들도 우리 집에서 식사 안 하거든.] [진짜? 사람 목소리 여럿 들려서… 홈스테이 하는 학생들 다 같이 밥 먹는줄 알았어. 그리고 남자 목소리도 들리길래…] [아, 너 내가 말한 프랑스남자애가 말하는 줄 알았구나. 개 오늘 아침에 나갔어. 니가 들은 목소리 그거 우리 아들이야.] [엥? 애가 도대체 몇 명이야?] [네 명.] [그렇구나. 어쨌든 나 그러면 남은 날 동안 저녁 신청하고 싶어. 여기 50유로. 그리고 나중에 빨래도 신청하고 싶은데, 괜찮지?] [응. 문제없지.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유럽 학생들은 내가 저녁이나 점심 돈 받는다고하면 싫어하길래. 그리고 뭔가 강매하는 것처럼 생각하더라구. 거스름돈은나중에 첫날 아직 못준거랑 같이 줄게.] [아… 알았어.(아니 냉장고도 닫아놓고 주방도 못쓰게 하는데, 강매가 아니면 뭐냐고 이 아줌마야. 강매 맞거든?) 그럼 나 나갔다 올게.] [응. 다녀와.] 그리고센트레에서 간식거리를 사서 다시 홈스테이로 돌아온 나는, 내 옆방에 지낸다는 프랑스에서 온 새라를 만났다.
새라와의 대화는사실 쉽지만은 않았다.
[안녕!] [안녕!] [니가 그 여기 묵는다는 프랑스 여자애구나?] [미안, 뭐라고?] [니가 그 프랑스 여자애구나?] [아! 아! 그래. 내가 그 프렌치야!] 내가 한 말을 몇 번이나 알아듣지 못하고 되묻는새라였지만, 그래도 이 집에서 뭔가 말상대가 생겼다는 데서 안도감이 왔다. 새라의 전공은 산업 및 건축디자인. 하지만 프랑스에서 일을 구하기가 힘들고, 영국은 사람들이 친절하지 않아서 싫고, 아일랜드는사람들이 친절해서 여기로 왔단다. 하지만 자신의 영어실력이 좋지 못해 일을 구하기가 힘들고, 전공을 살릴 일을 구하기도 힘들다고, 그런데 내가 들어오기 전 내 방을 쓰던 남자애도 프랑스애라 영어를 늘릴 기회도 없어서, 새로 구한 집은 아이리쉬 가이 세명이랑 같이 살기로 했다, 등등. 이야기를 하다 보니 착한 애 같아서 내일 같이 점심을 먹자고이야기하고, 방으로 돌아와 시계를 보니 10시가 넘었다. 하지만 알렉스는 아직도 연락이 없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페이스북에서더블린에 거주하고 계신 LG글로벌 챌린저 대원분이 가르쳐준 그룹에 들어가 수많은 프로필에 연락을 해보았지만, 알렉스가 내 문자를 읽씹했듯 모든 메시지가 읽씹당했다. 그렇게, 나는 마지막 희망인 알렉스에게 집착하며, 그렇다고 메시지를 보내지도못하고 카톡으로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알렉스가 문자가 안 온다며 징징거리다 뜨끈뜨끈한 핸드폰을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