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가장 불안했던 고3. 나에겐 확실한 멘토가 있었다. 영어학원 선생님이었는데, 그 학원이 영어 티칭에 뛰어났다기보다 그 선생님이 나의 멘탈관리에 뛰어났기 때문에 쭉 다녔다고 해야 맞을 정도였다.
일주일에 한번 일요일 저녁, 열아홉의 개복치는 매번 바들바들 불안한 상태로 등원했다가 선생님의 테라피에 안정되어 돌아오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너는 반드시 잘될거다'라고 반복해 확신을 주신 것 뿐이었는데, 그 대화의 힘이 대단했다. 성적이 떨어질때마다 또는 갖가지 이유로 휘청거리던 나를 틀림없이 다시 꼿꼿하게 설 수 있게 만들어주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성인이 되고서도 13년이나 더 산 나는 사회적으로도 너무 공식적인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가끔 열아홉살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마취총을 쏴줘야하는 개복치 수준은 벗어났어도 여전히 일년에 서너번은 무너진다. 다들 그렇지 않나? 그런데 문제는 나에게 더이상 선생님이, 그러니까 멘토가 없다는거다.
이렇게 살면 되는건가? 이게 최선인가?
33살의, 9년차 직장인 여성이자, 언젠가 글을 업으로 삼고싶은, K-장녀이고, 결혼을 아마도 곧 할 것 같고, 그럼에도 여행이 너무 좋은 나는, 요즘 정말이지 내 인생의 갈피를 못 잡겠다. 이렇게 살면 되는건가? 내가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지? 나는 이 일을 좋아하나? 내가 순수하게 좋아하는건 뭐지? 좋아하는게 업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게 가능하대도 결혼과 병행할 수 있나? 아이도 낳아아 하잖아. 내가 더 잘하고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이게 최선인가? 인생의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런 문제들은 영어 한 문제를 더 맞는 것보다 훨씬 더 중대하고 어려운데, 내가 성인이라는 이유로 혼자서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참 버거울 때가 있다.내 인생이 어디로 가면 좋을지 조언을 해줄 멘토가 있다면 참 좋을텐데. 지친 퇴근길에 가만히 들러 차 한잔을 앞에 두고 나를 쏟아낼 수 있는 그런 인생의 선생님이 있다면 좋을텐데.정답을 주진 못하더라도 내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들어주고,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알려주고, 용기를 주고, 위로해주고, 혹은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줄그런 좋은 어른이 곁에 있다면 참 좋을텐데 말이다.
저도 금쪽이하면 안될까요
1인 1오은영은 안되니까
오은영 선생님이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지 이제 알겠다. 우리 아이를 달라지게 만들던 그녀가 왜 방송에서 성인들까지 상담하고 있는지도. 나처럼 '인생의 갈피를 못 잡는 어른'이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겠지.
오은영 쌤은 항상 명쾌하게 분석하고 진단한다. "OO씨는 어떤 사람이에요"라고. 그리고 그 진단은 대부분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일 때가 많다. 그래서 한대 때려 맞은 것 같은 진단만으로도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하는데, 여기에 정확한 솔루션까지 더해진다. 완벽한 해결사의 삼단법이며, 이 시점의 내가 절실히 원하는 멘토의 정석이다.
하지만 나에겐 그녀가 없으니, 이걸 스스로 해보기로 한다. 오은영 선생님이 하듯이, 자꾸만 나에게 질문하고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다보면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나의 어떤 부분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그 안에 보다 나은 삶에 대한 답도 있지 않을까.그래서 펜을 들고 종이를 매개체 삼아 나와 대화하는 연습을 해보는 중이다.스스로의멘토가 되어.
신은 내 안에 있다고 하지 않던가요
불안에 떠는 성인이 참 많다. 문제해결력이 업그레이드 되는 만큼 문제 자체도 더 어렵고 복잡해지는게 인생이니까. 하나씩 차분히 풀면서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인생의 파도는 입체적이고 동시다발적이어서 어쩔 수 없이 압도될 때가 많다. 이렇게 절박할 때 멘토가 던져주는 한 마디가 구명 튜브가 된다면좀 더 쉽게 뭍으로 나갈 수 있을테지만,일단은 구명조끼 입고 두둥실 떠서 버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중얼중얼 스스로와 이야기 하면서.
혹시 아나? 그러다보면 내 안의 신이(구루들은 항상 신은 네 안에 있다고 하지 않던가) 나를 가엾이 여겨 아주 훌륭한 정답을 속삭여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