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자매의 잔잔하고 감동적인 인생 이야기
오래간만에 영화를 봤다. 가을바람이 불어서 그런가, 가라앉는 기분을 조금은 평온한 방법으로 달래주고자 영화 힐링을 선택했다. 이렇게 영화가 고플 때 순간 떠올라 보게 된 영화가 명작이면, 그보다 더 진하게 미소 짓게 되는 순간이 없다. 성공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 갔을 때 꼭 보고 싶었던 위시리스트 톱 3에 들었던 영화였다. 여느 때처럼 예매 경쟁은 치열했고 그걸 알면서도 매년 일관성 있게 게으른 나는 역시나 티켓을 손에 쥐지 못했다. 그래도 잊지 못하고 언젠간 봐야지라고 생각했던 건, 이 영화의 스펙 때문이랄까? 일본 배우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조차도(!) 알고 있는 아야세 하루카와 나가사와 마사미가 함께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이니까. 잔잔한 바닷가 배경은 더욱더.
평화로운 배경만큼이나 스토리 역시 잔잔하지만 인물들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사실 절대 잔잔할 수 없는 관계다. 바람피워 집을 나간 아버지, 그 아버지가 밖에서 낳아 놓은 딸, 아버지에게 상처받고 자식들을 버린 엄마, 남겨진 비운의 세 딸. 한국 연속극이었다면 이 정도 인물 관계만으로도 이미 막장의 반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집 나간 아버지는 딸을 낳은 두 번째 여자와 사별하고 아들이 있는 세 번째 여자까지 있다. 더구나 아버지 유산은 친자식도 안 낳은 그 여우 같은 세 번째 여자에게 돌아갔단 말이다. 젠장할. (막장에 길들여진 전형적인 한국 사람의 울분)
그런데 영화 속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셋째 딸 치카는 아버지를 원망해도 모자랄 판에 진심으로 기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 행복하게 살았나 봐"라고. 세 자매는 깔끔하게 유산까지 마지막 부인에게 줘 버린다. 그리고 정말 아무런 갈등도 찡그림도 없이 이복동생 스즈에게 손을 내민다.
우리와 함께 살래? 넷이서. 집은 낡았지만 커서 방이 많아. 우리 모두 일하니까 너 하나 정도는 먹여 살릴 수 있어.
그러고 나서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최고 명장면이 나온다. 놀랐지만 깊이 안도하는, 투정 부릴 줄도 모르게 성숙해버린 스즈의 눈망울. 언니들이 타고 있는 기차의 문이 닫히는 그 찰나에, 스즈는 짧지만 너무나도 간절한 한마디를 내뱉는다.
이키마스(갈게요).
그러고서는 기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든다. 아마도 조금은 벅차고 조금은 불안한 그 상태로.
스즈가 세 자매의 집에 들어온 뒤 영화의 배경은 사계절을 빠르게 흘러간다. 불안하던 스즈의 표정은 점점 안정되고 네 자매의 거리감도 점점 좁혀질 때쯤 나는 점점 첫째 딸 사치의 감정선을 따라가게 됐다. 나도 모르게 너무나 그녀를 이해하게 됐달까.
아야세 하루카가 연기한 사치는 넘치게 정이 많고 자상해 바람이 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핑계로 자식들을 버린 엄마를 미워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두 동생들을 키우고 큰 집의 나무 하나까지 거둬온 인물. 혼자 남겨진 스즈에 대한 연민도 물론 있었겠지만, 엄마에게 상처일 수밖에 없는 스즈라는 존재를 보란 듯이 집안으로 끌어들이며 엄마에게 마음속 깊이 담아둔 무언의 원망을 쏟아낸다. 당신은 우릴 버리고 갔지만 나는 두 동생을 키우고 스즈까지 책임진다고. 이 집안을 이끌어 온건 나이기 때문에 이런 중요한 결정도 내가 한다고. 그러니 결과적으로 당신은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는 사람이 됐다고.
너무나 착한 영화인만큼 사치와 엄마의 이런 갈등조차도 격렬하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엄마는 스즈를 보고 당황하지만 이내 자신이 반발할 권리도 없고 그럴만한 자리도 이미 사라졌다는 것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초조해하는 스즈에게 마른침을 삼키며 '반갑다'는 인사를 건넬 뿐이다. 이런 엄마에게 사치는 '밉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은 끝까지 하지 않은 채 그저 담담하게 매실주로만 마음을 전한다. 떠난 자와 남은 자 사이의 복잡한 감정은 그저 그녀가 오래도록 지켜내 온 집안의 상징인 10년 묵은 할머니의 매실주에만 담겨있다.
영화로는 담담하게 그려졌지만 사치가 쌓아온 마음의 병이 오죽 깊을까. 부모에 대한 원망 속에서도 책임을 다한 그녀는 분명 강인한 사람이지만, 평생 끊어질 수 없는 천륜을 미움으로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는 건 누구에게도 괴로운 일이다. 그런 사치는 책임으로 가득 찬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인 애인에게 위로받고자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는 다른 여자의 남편. 죽도록 원망하는 아버지의 자화상이자 사치 본인을 부정한 여자로 만드는 장본인이다. 그러기에 사치는 스즈를 더욱더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 마치 자신이 짓고 있는 또 다른 죄에 속죄라도 하듯이. 그래서 영화 속 사치는 스즈가 어렵게 꺼낸 이 말 한마디에 아무런 말도 잇지 못한다.
미안해요. 부인이 있는 남자를 사랑하다니.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결국 사치는 그 남자와 헤어진다. 부인을 버리고 너에게 갈 테니 함께 미국으로 떠나자는 그를 따라나서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브런치를 쓰기 위해 며칠 동안 생각해봤는데 답을 찾지 못했다. 내 인생 마일리지가 아직 그만큼 부족한 탓이겠지. 다만 사치의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나는 책임이 있어. 여길 지켜야 해.
개인적으로, 그녀가 스스로를 위해 행복해지길 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마쿠라의 사계절이 정말 진하게 아름다웠다. 눈부신 벚꽃 터널, 여름의 대청마루와 푸른 매실, 카디건과 붉은 단풍, 그리고 고요한 겨울의 일본 다다미까지.
당장 일본으로 떠나 그곳에 흠뻑 취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치카는 그 후 어떻게 살았을까, 나는 어떻게 살게 될까' 생각했다.
보고 있어도, 또 보고싶은, 보석 같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