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뿅' 하고 나타나 '척' 하고 길을 알려주소
기나긴 추석 연휴가 끝났다. 별거 한 것도 없는데 엄청 힘들다(별거 안해서 힘든거겠지). 연휴 내내 엄마가 아파 응급실을 두 번이나 갔다 왔다. 심적으로 매우 힘든 연휴였다.
'차라리 회사 가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할만 한데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요즘 열정이 많이 식었다. 초롱초롱하던 눈도 경쾌한 발걸음도 못 본지 오래. 친구들에게는 그냥 '우리 아직도 런칭 못했어, 우울해'라고 답한다. 가장 간단하고 명쾌한 대답이니까. 그러나 내 돈 들여 세운 회사도 아니요,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만두고 다른 곳 찾아보면 그만인데 이렇게 정신적으로 시달릴 이유가 없다. 사실은 회사의 런칭보다는 스스로 동력을 잃은 게 문제다. 동기부여의 엔진이 꺼졌다고나 할까.
고등학교 내내 나의 멘토는 영어 학원 원장님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가서 딱 3시간만 수업을 듣고 오는 학원이었는데 소위 '빡센' 학원은 아니었다. 그냥 내버려 둬도 알아서 공부하는 애들에게 최적화된 학원이랄까. 여튼 애들 굴리기 좋아하는 극성 맞은 엄마들은 딱 싫어할 그런 학원이었더랬다.
매주 일요일 저녁에 학원에 갔다. 6시에 시작되는 수업이 끝나면 9시였는데 원장쌤은 날 집에 안보내고 어김없이 불러 수다를 떨었다. 1분 1초가 아깝다는 고3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어떠니, 공부는 잘 되니, 기분은 좋니. 여드름이 더 많아졌구나, 사실 그건 스트레스 열꽃이니까 대학 가면 없어질거야(진짜 수능보고 일주일이 안되어 싹 사라짐). 할 수 있다를 열 번 외치면 진짜 할 수 있게 된대....' 등등. 영어 강사였다가, 주치의도 됐다가, 입시 전문가로 돌아왔다가, 결국 마지막엔 인생 멘토로 끝이 났던 원장 선생님의 수다 레퍼토리는 지금 생각해 봐도 진짜 별거 없었다. 그저 물어보고 들어주고 대답할 뿐.
그런데 그 수다가 정말 신통방통한 힘이 있었다. 선생님과의 대화가 끝나면 난 지친 고3에서 다시 초롱초롱한 열아홉 소녀로 돌아왔다. 발걸음 가볍게 집에 걸어오면서 새로운 한 주에 대한 기대를 품은 채 일주일을 끝낼 수 있었다. 그 수다가 내 에너지를 다시 백퍼센트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던 거다. 나는 동기부여란 이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초롱초롱해 지는 것, 그리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덕분에 개복치 멘탈인 나는 고3 시절을 충만한 자신감으로 지낼 수 있었다.
스무 살이 되고 선생님 곁을 떠나자 나는 방치됐다. 동의한 적은 없지만 사회의 합의에 따라 어른이 된 나는 이제 스스로 동기부여 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슬럼프에 빠졌다가도 스스로 헤어나와야 했고 우울감이 덮쳐와도 혼자 발버둥쳐야 했다. 누구 하나 손 내밀어 주지 않는 처절한 혼자만의 숲에서 맨발로도 걸었다가 동굴에도 숨었다가 별 짓을 다 하면서. 그렇게 대학 시절을 살았다.
선생님처럼 꾸준하면서도 정성스럽게 날 이끌어 줄 멘토를 이미 찾았다면 참 좋았으련만. 그런 스승이 삶에 한 번이라도 스쳐갔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 요즘 같이 심적으로 너무 힘들어 매달릴 곳이 간절한 나날에는 그야말로 하늘에 대고 "숨겨놓은 내 멘토 내놔"라는 억지가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그래봤자 무심한 하늘은 아무런 미동도 없지만.
그래서, 결론적으로 난 아직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친구와 책과 강연 등에 매달리기도 하고, 골똘히 고민하다가 결국 지르기도 하고, 머지 않아 그 선택을 처절하게 후회하고, 또는 가끔 행복해하기도 하면서. 그냥 인생은 이런건가보다 한다.
그치만 내 인생 멘토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은 아직 저버리지 않고 있다. 어떤 형태여도 좋으니 가장 힘든 순간에 뿅 하고 나타나 금빛 동아줄이 되어주기를!
귀한 시간을 내어 나의 브런치을 읽어주는 사람들의 응원이 요즘 인생의 가장 큰 낙이다. 가장 큰 동기부여랄까. 그래서 그 무언가에 고픈 하이에나마냥 퇴근하고 피곤해 죽겠는 눈을 껌뻑이며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Thanks, guy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