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가을한 날들에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었는데 이제는 뜨거운 것을 주문한다.
한국의 사계절이 주는 아름다움은 매번 경이롭지만, 난 특히 가을을 좋아한다. 가을에 태어나서 그런가.
더 이상 퇴근길에 햇빛을 볼 수 없는 계절이 되면, 선선한 바람에 어울리는 가을빛을 품은 아우터로 멋을 내는 것도 좋고, 가을 햇밤을 까먹는 따뜻한 집 거실도 정겹고, 아침저녁으로 어반자카파나 비긴어게인의 OST를 들으며 걷는 것도 즐겁다. 분명 가을만의 낭만이 있다.
나에게 가을의 낭만 중 하나는 부산이었다. 매년 10월 부산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가는 것이 연례행사라고나 할까. 영화에 대해 전문 지식도 없고 영화광이라고 할 만큼 즐겨 보는 것도 아닌데 부산국제영화제는 왜 항상 설렜을까.
바닷바람이 부는 해운대의 저녁, 밤이 깊어도 어두워질 줄 모르는 해운대의 불빛에는 뭔가 뜨거운 것이 있다. 그것이 레드카펫을 밟는 화려한 배우들을 비추는 조명인지, 영화라는 키워드 하나로 부산으로 모인 이들의 열정인지, 사랑하기 좋은 계절에 축제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낭만인지, 또는 그 모든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도 그 뜨거움으로 항상 설렜다.
올해는 부산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좀 슬프다. 단순히 영화제에 못 가서라기보다 나의 가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 것 같아서. 스물일곱의 가을은 한번뿐이고, 매년 해운대에 안고 간 고민과 생각들이 달랐듯이 그곳에서의 감상도 올해만의 것이 분명 있었을 텐데. 그 뜨거운 무언가를 다시 한번 충분히 느꼈다면 좋았을텐데. 뭐 이런 아쉬움이 든다. 어른들이 지나간 청춘을 그리워하는 맘을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다.
집에 가서 영화 한 편을 보고 맘을 달래야지.
그러고 보니 작년 이맘때 '뷰티 인사이드'를 본 것 같다.
재작년 가을엔 베라 파미가와 하정우 주연의 '두 번째 사랑'을 봤었고.
모두 정말 좋았다.
가을이니까.
가을이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