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피디 Nov 30. 2016

나는 평범하지 않다

아니, 대단하다

점점 진해지는 추위에 아침마다 출근길은 고역이다. 전기장판에 치즈마냥 눌러 붙은 몸뚱아리를 떼어내는 것이 1차 챌린지. 그 다음 옷 사이를 파고드는 기분 나쁜 찬 바람을 이겨내고 역까지 당도하는 것이 2차 챌린지. 그리고 왕복 두 시간의 만원 지하철이 3차 챌린지. 그냥도 고된 출퇴근 길인데 옷이 무거워지는 겨울이 되면 더욱 진이 빠진다.


오늘은 비가 오면서 기온이 더 떨어진다 해서 캐주얼한 다운패딩을 입고 싶었는데 미팅이 있어서 코트를 차려입었다. 오전 9시. 무겁지만 썩 따뜻하진 않은 검정색의 헤링본 코트를 입고 단풍잎이 말라 비틀어진 강남의 출근길을 걸으면서 문득 생각했다.


아, 난 평범하게 사는건가?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른다. 사실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난 평범하게 사는 축에 속할 것이다. 대학을 나와서 밥벌이를 하고 있는 20대 직장 여성. 무난하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별탈 없이 이어나가며 월급을 받고 사는 것이 과연 평범한건가? 하루 두시간의 출퇴근과 업무 스트레스와 그 모든 불편한 관계를 견디고 얻어낸 것이 그저 월급과 '평범한 삶'이라는 가벼운 칭호라면, 나는 너무 허무하다. 


우리 사회는 과소평가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겸손이 미덕이라 여겨지는 사회라서 그런가. 내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나와 같은 삶을 사는 직장인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대단한 것이다. 책임감을 갖고 본인의 영역에서 하루 8시간 이상의 노동을 꼬박꼬박 수행하며 돈을 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제발 이 어려운 삶을 평범한 것이라고 주입시키지 말라. 그리고 평범함이 마치 쉬운 것인양 당연하게 말하지도 말라. 그럼 졸지에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린 나도, 또는 본인이 평범하게조차 살지 못한다 느낄 누군가도, 다 슬퍼진다.


다 상향평준화되면 좋겠다. 우리가 "난 그냥 평범하게 살아"라는 말로 스스로의 삶을 수많은 일개미 중 하나로 만들기보단, "나 특별하고 대단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어지러운 시국에 날로 국격은 떨어지고 있지만 나의 품격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B형 여자와 AB형 남자의 2천 일간의 연애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