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대단하다
점점 진해지는 추위에 아침마다 출근길은 고역이다. 전기장판에 치즈마냥 눌러 붙은 몸뚱아리를 떼어내는 것이 1차 챌린지. 그 다음 옷 사이를 파고드는 기분 나쁜 찬 바람을 이겨내고 역까지 당도하는 것이 2차 챌린지. 그리고 왕복 두 시간의 만원 지하철이 3차 챌린지. 그냥도 고된 출퇴근 길인데 옷이 무거워지는 겨울이 되면 더욱 진이 빠진다.
오늘은 비가 오면서 기온이 더 떨어진다 해서 캐주얼한 다운패딩을 입고 싶었는데 미팅이 있어서 코트를 차려입었다. 오전 9시. 무겁지만 썩 따뜻하진 않은 검정색의 헤링본 코트를 입고 단풍잎이 말라 비틀어진 강남의 출근길을 걸으면서 문득 생각했다.
아, 난 평범하게 사는건가?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른다. 사실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난 평범하게 사는 축에 속할 것이다. 대학을 나와서 밥벌이를 하고 있는 20대 직장 여성. 무난하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별탈 없이 이어나가며 월급을 받고 사는 것이 과연 평범한건가? 하루 두시간의 출퇴근과 업무 스트레스와 그 모든 불편한 관계를 견디고 얻어낸 것이 그저 월급과 '평범한 삶'이라는 가벼운 칭호라면, 나는 너무 허무하다.
우리 사회는 과소평가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겸손이 미덕이라 여겨지는 사회라서 그런가. 내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나와 같은 삶을 사는 직장인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대단한 것이다. 책임감을 갖고 본인의 영역에서 하루 8시간 이상의 노동을 꼬박꼬박 수행하며 돈을 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제발 이 어려운 삶을 평범한 것이라고 주입시키지 말라. 그리고 평범함이 마치 쉬운 것인양 당연하게 말하지도 말라. 그럼 졸지에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린 나도, 또는 본인이 평범하게조차 살지 못한다 느낄 누군가도, 다 슬퍼진다.
다 상향평준화되면 좋겠다. 우리가 "난 그냥 평범하게 살아"라는 말로 스스로의 삶을 수많은 일개미 중 하나로 만들기보단, "나 특별하고 대단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어지러운 시국에 날로 국격은 떨어지고 있지만 나의 품격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