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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피디 Dec 15. 2016

시련 후에 오는 것들

열두살의 인생수업

난 초등학교 시절 외톨이였다. 왕따, 아니 은따라고 해야 하나.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악랄하게 친구를 괴롭히는 범죄적 성격의 왕따는 없었으니까. 그냥 좀 안 놀아주고 뒤에서 욕하는 정도? 여하튼 난 12살에 따돌림을 당했다.  


새삼 브런치에 어린 시절의 비화를 털어놓는 이유는 이제 그 일이 아무런 상처가 되지 않기 때문이고, 또한 그 경험이 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였다는걸 인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내 어린 시절의 아픔을 스스로 치유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밤마다 진실하고 간절하게 내일의 안녕을 기도했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 전까지 나는 항상 주목받던 아이였다. 자랑은 아니지만 공부도 잘하고 외모도 준수했고 인기도 많았다. 엄마가 매년 열어줬던 생일파티에는 항상 수십 명의 친구들이 한아름 선물을 가져왔고, 선생님들은 항상 날 칭찬하면서 티 나게 예뻐했다. 집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 할아버지의 공주님 대접을 받았다. 모자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환경이 그랬으니 나의 태도도 그에 맞게 형성되었을 것이다. 칭찬받는 것, 주목받는 것, 모든 상황에서 중심이 되는 것이 당연했을 거다. 아마 조금 재수 없었겠지.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섭섭하게 했을 테고 소외감을 느끼게 했을지도 모른다. 어린 나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에서야 이렇게 예상을 해볼 뿐이지만, 그 따돌림의 일부분은 내 탓도 있었으리라. 


열두 살이면 가족보다 친구가 좋을 나이. 함께 밥을 먹고 공기놀이를 할 친구가 없다는 건 어린 내가 견디기에 가혹한 스트레스였다. 밤마다 진실하고 간절하게 내일의 안녕을 기도했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주도자였던 그 아이의 지휘 아래, 여전히 친구들의 시선은 차가웠고 교실에서 난 혼자였다. 눈치 없는 담임 선생님은 티 나게 날 예뻐해 줬지만 그래서 내 신세는 더 고달팠다. 그렇게 엄마에게도 말 못 한 채, 5학년 일 년이 갔다.

    


"어쩌면 그건,

좋은 경험이었는지도 모른다"


많이 힘들었지만 그 후로 나는 많이 성숙해졌다. 어느 날 엄마와 예방접종을 하러 소아과에 갔는데 주사가 더 이상 무섭지 않게 느껴지는 거다. 정말 초딩다운 사례일지 모르지만... 겁이 많은 내가 인생의 첫 풍파(?)를 겪은 이후로 주사가 무섭지 않게 됐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그때 생각했다. 나름 철학적으로. 아, 인생이란 고난으로 고난을 이겨내는 것이로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나이에 그리 심하지 않은 강도로 인생의 좌절이나 슬픔, 외로움을 겪을 수 있었다는 건 어쩌면 좋은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이전의 내가 갖고 있던 단점들이 더 부정적으로 발현되지 않도록 한 템포 잡아주는 역할을 했달까. 이 경험 덕분이었는지 열두 살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인간관계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다. 열두 살과 가까운 몇 년 동안은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친구 문제에 신경 쓰긴 했지만 덕분에 항상 조심했고, 노력했고, 감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겸손함을 배웠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을

생채기 없이 끌어안는 방법"


지났으니까 하는 말이지 사실 '시련에서 배운다'는 말은 아픈 과거를 애써 받아들이려는 합리화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교훈으로 남았으니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게 말이다. 또는 앞으로도 찾아올 시련을 조금은 덜 힘들게,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위한 마음 준비일지도 모른다. '이것도 인생수업이 될거야'라고 여길 수 있도록.


그것이 합리화에 불과할지라도 우리가 이런 명언을 마음에 품고 사는 건, 그게 삶의 지혜이기 때문일 것이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을 생채기 없이 끌어안을 수 있게 도와주니까. 그리고 몇 글자에 불과한 이런 말 한마디가 어떨 때는 우주보다 더 크게 날 위로하는 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난 오늘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세상에 나쁘기만 한 경험은 없다', '시련에서 배운다' 같은 문장들을 되뇐다. 내가 어려움들을 달게 이겨내고, 이 고달픈 경험이 언젠가 귀하게 쓰이기를 바라면서.  




P.S. 그래서 나는 초딩들의 사회생활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 아이들의 인생은 그들의 나이에 걸맞게 힘들다. 전국의 초딩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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