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 가는 드라마가 생겼다. tvn이 만들었다는 <내성적인 보스>. 아직 보지는 못했는데 홍보 회사를 배경으로 한단다. PR을 하는 사람이 내성적이라니. 나를 위한 드라마인가?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다. 학창 시절에는 그저 친구들과 놀기 좋아한단 이유로 나 스스로가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본질은 내향성이라는 걸 깨닫곤 한다. 꼭 필요한 약속이 아니면 칼퇴 후 집 가서 쉬는 시간이 가장 좋은 집순이고, 친구를 만나도 맛있는 밥에 커피 한 잔이 끝이다. 친해지면 몰라도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낯을 엄청 가린다. 누구와 함께 하는 일보단 혼자 하는 게 편하고, 자연스레 취미도 단체보단 개인전이다. 운동을 해도 수영이나 헬스를 선호하며 여행을 가도 혼자 사진 찍고 글 쓰는 게 좋다. 사람은 끼리끼리 만난다고 내 주위 사람들도 거의 그렇다.
나처럼 내향적인 사람이 홍보를 잘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사실 지금도 많이 한다. 내향적인 성격 자체는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수 없지만 그것이 평생의 직업과 관련됐을 땐 어려움이 생기는 것 같다. 홍보라는 업은 기본적으로 인간 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기본으로 하며, 새로운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야 한다. 그것도 내가 '을'인 위치에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올해 홍보 4년 차가 됐지만 사람을 다루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도 요령이 생기지도 않는다. 술이나 잘 마시면 좋겠는데 그것도 아니다.
홍보를 시작할 땐, 그저 보도자료나 잘 쓰면 되는 줄 알았다. 글로 써주는 건 자신 있으니 끝내주는 기획자료를 만들어주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물론 글쓰기 실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홍보를 하면 할수록 피알맨이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인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사람을 대하고 관계를 다루는 능력을 뜻하며, 이것이 나와 같은 성향을 타고 난 사람에게 쉽지만은 않음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PR이 좋다. 나는 호불호가 강한 사람이라 싫은 건 절대 못하는 성격이다. 그런데 홍보 일은 참 어렵고 힘들면서도 싫지가 않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해 첫 회장 선거를 앞둔 저녁, 무작정 출사표를 던져놓은 만 6살이었던 내가 엄마에게 바들바들 떨며 이야기했다고 한다. "엄마 나 너무 떨려." 언제나 그랬듯이 울 엄마는 "그럼 하지 마"라고 쿨하게 말했겠지. 그런데 그때 내가 이렇게 답했단다.
너무 떨리는데 너무 하고 싶어
홍보에 대한 내 마음도 똑같다. 너무 부족한 점이 많고, 그래서 남들보다 더 스트레스받지만 이상하게도 피하고 싶진 않다. 더 욕심이 난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기자 미팅이 여전히 어렵고, 새로운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일이 많은 홍보직의 숙명이 부담스럽지만, 이겨내고 있다. 오히려 더 많이 부딪히면서. 그리고 아주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더불어 조용하고 신중한 내 성격이 홍보 업무에 득이 되는 때도 종종 발견하고 있다. 허튼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니 사고칠 일이 적어서 좋고, 조용하게 전하는 진심이 기자들에게 더 진실되게 전달될 때도 많다. 강점은 키우고 단점은 보완해 나가야겠지.
내성적인 보스라는 드라마 정보를 보고 문득 든 생각이 이렇게 긴 브런치가 될 줄은 몰랐다ㅎㅎ 혼자 노력하고, 또 주위 선배들의 충고를 달게 받으면서, 나만의 PR 인생을 개척해야겠다.
+ 홍보 회사에는 연우진 같이 잘생긴 보스가 1도 없다.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