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홍콩, 그곳에서.
와 벌써 5월 말. 마지막 브런치를 한지 두 달이 훌쩍 넘었다.
완연한 봄이었다. 봄기운이 스며드는 3월 초 오사카를 다녀와 두 달간 회사 일로 정신이 없었다. 브런치를 쓸 시간 정도야 물론 있었지만 떠오르는 글감이 없었다. 잠시 생각을 멈췄다. 하루 24시간은 회사와 집, 그리고 봄노래로 가득한 멜론 플레이리스트가 끝.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봄을 만끽하다보니 5월이 됐고, 연휴가 찾아왔고, 미리 티켓팅 해두었던 홍콩으로 여행을 떠났고, 그 곳에서 나도 모르게 혹독한 오춘기가 시작됐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시공간에서 머리가 띵해지는 순간이 있다. 일종의 충격이라고 해야 하나. 나를 제외한 모든 풍경이 빙글빙글 돌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적막해지는 순간. 인생의 종소리가 내 몸과 마음을 모두 치고 가는 것 같은 몇 초. 그리고 머릿 속에 떠오르는 단 하나의 문장. 대부분 이런 순간에 떠오르는 문장은 되게 철학적이다. 단순하게 살자는 스스로의 태평한 되뇌임이 무색하게 날 혹독한 생각의 늪에 빠져들게 하곤 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두번의 순간이 있었다.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가서 본 파란 빌딩숲. 마지막 날 밤 침사추이에서 바라본 화려한 빌딩숲.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멀리서 바라본 홍콩의 마천루는 내 뇌리에 선명하게 박히면서 하나의 물음표를 남겼다.
이대로 살아도 10년 뒤에 행복하겠니?
'아, 정말 진부한데?'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대륙과 역사를 넘나드는 진리는 흘끗 보면 원래 뻔하디 뻔한 법이다. 중요한건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나도 정말 모르겠다는 거다. 사실 이건 '생각'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나의 이성적 회로에서 나온 게 아니니까. 누군가 내 귓속에 속삭이고 떠난 것처럼 분명 외부에서 유입된 그런 것이었다. 답을 하려고 했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 나는 혹독하게 앓았다. 하루종일 먹질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누워도 잠에 들지 못했다. 모든 일에 의욕을 잃었다. 퇴근을 하고 싶었지만 집에 가고 싶지도 않았다. 잔잔한 노래를 들으며 강남 한복판을 걸어다니는 것이 그나마 마음을 진정시키는 방법이었다. 미세먼지가 뿌옇던 날에도 나는 모든걸 잃은 사람처럼 하염없이 걸었다.
지금 이렇게 브런치를 쓰고 있는건 제정신이 좀 돌아왔다는 뜻이다. 일상은 원래의 궤도를 찾았고 물론 식욕도 다시 생겼다(이건 좀 천천히 돌아왔어도 되는건데..). 하지만 홍콩에서의 물음표는 아직도 숙제처럼 남아있다.
스스로 만족할만한 삶이라고 생각해왔다. 어렸을 적 생각했던 최고의 시나리오는 아니어도, 헬조선에서 이정도 살고 있으면 됐다 싶은 삶이었다. 괜찮은 대학, 전공을 살려 하고 있는 밥벌이, 좋은 동료들, 약간의 사회적 성취, 적당한 월급, 착한 애인, 건강한 가족... 평범한 삶이 가장 어렵다고 했으니 이 정도면 축복받았다고 가끔 감사하기도 한 그런 삶이었다.
하지만 홍콩에서 저멀리 마천루를 바라보며 느꼈던 내면의 울림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대로 살아도 10년 뒤에 행복하겠냐고 누군지 모를 그 누군가가 물었을 때, 순간 울컥했다. 그 곳이 밤이었다면, 옆에 친구가 없었더라면, 혼자 조용히 핸들을 잡을 수 있는 차가 있었더라면, 나는 펑펑 울었을지도 모른다. 아주 서럽게.
네 인생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란 말이야. 자꾸 피하지 말고.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홍콩에서의 며칠은 내게 신이 머물다 간 순간이었던 것 같다. 크나큰 충격으로 며칠을 앓았지만 의미 있었다. 사실 요즘 난 편안한 침대 속에 쏙 들어가 잠잘 시간만을 기다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살았다. 신의 울림이 아니었다면 나는 또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살았겠지. 새로운 일이 생겨도 무덤덤하게 '지금이 좋아'라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가능성조차 열어두지 않은 채로.
지금 당장 일신상의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음이 열렸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불을 걷어내고 두 발을 바닥에 내딛었다. 창문 블라인드 너머로 아침 햇살이 들어오면 옷 갈아입고 나갈 준비가 됐다. 그 새로운 햇살이 무엇이 됐든 간에.
홍콩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를 섬찟하게 했던 글귀 하나를 함께 남긴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채찍 혹은 용기가 되기를.
그는 성인이 된 이후 줄곧 실패를 엄청난 재난 같은 모습으로 상상해왔으나,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실패는 사실 겁먹은 무위를 통해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찾아왔음을 깨닫는다.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알랭 드 보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