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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피디 Aug 26. 2017

때로는 멀리보지 않는게 좋다

멀리 본다고 뭐가 해결되는 세상이었던가.

멀리 보지 않고 살려고 노력 중이다. 어차피 미래를 준비한다 해도 내 맘대로 되지 않고, 때로는 내가 준비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다가오기도 하니까.




팀원 중 하나가 상담을 요청했다. 평소에 '참 잘한다' 생각했던 친구. 절대 퇴사하면 안되는 나의 팀원이 진지한 표정으로 면담을 요청할 때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이런거구나, 내 상사들이 왜 '드릴 말씀이 있다'는 말에 몸서리를 쳤는지 몸소 느끼며 따라 들어간 회의실.


잘 모르겠어요.
이 길이 맞는 걸까요?


'오마이갓. 안돼. 내가 보기엔 네가 제일 이 길에 맞아. 나가지마. 제발. 난 니가 필요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평정을 유지하며 이야기를 들어줬다. 내가 신입 시절에 똑같이 느꼈던 진로 고민들. 이 길로 커리어를 시작해도 되는걸까, 나는 잘 할 수 있을까, 소질은 있는걸까, 일은 원래 이렇게 힘든걸까, 미련이 남는 다른 길은 접어야 하는걸까. 본인조차도 생각이 정리 안된 표정으로 이야기를 늘어 놓으면서 그 친구는 말했다.


그냥 대리님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어요.
대리님은 어땠는지. 어떤 고민을 하셨었는지.


나는 두가지의 답을 줬다.


먼저 사수이자 팀장으로서 모범 답안을 이야기했다.  잘하고 있다고. 소질이 있다고. 우리 팀이 앞으로 하게 될 재미있는 일들이 참 많다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네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나서 '오프더레코드'라며 직장생활을 몇년 먼저 한 선배로서 이야기했다.


'아니다' 싶으면 그만 두는거야.
'이놈의 회사 이번달까지만이다'라고 생각해버려.




진심이었다. 나의 신입 시절을 나는 그렇게 버텼다. 진로 고민까지는 사실 사치였다. 일단 먹고는 살아야겠는데 일은 힘들고(돈도 별로 안주면서), 매일 혼나고, 상사도 거지 같고. 일하다 병까지 나는 선배들을 보면 내 미래는 더 암담하고. 일요일 밤에는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 그 지옥 같은 시간을 그렇게 꾸역꾸역 버텼다. 한달만 더. 한달만 더. 다음 달에는 기필코 그만두고 만다고 생각하면서.


편하게 생각해.
그래야 버틸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면 맘은 좀 편했다. 사실 직장생활이 심리적으로 힘이 든건 '직장을 그만둬서는 안된다'는 전제가 나도 모르게 머릿 속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 무언의 압박은 '한 직장을 평생직장으로 알고 살았던 부모 세대의 주입'일 수도 있고, '연일 낮은 취업률과 청년 실업을 떠들어대는 사회의 으름장'일 수도 있다. 한 단계 더 나아가자면 '좋은 대학, 남들 다 아는 직장'을 이상적인 삶의 표본으로 설정해 둔 우리네 삶의 모든 장치가 문제일 수도 있다.




엄마,
대기업에 가는거
28살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거.
그게 내가 원하는 행복이 아니야


세상이 달라졌다. 좋은 대학에 나온다고 대기업에 턱하니 취직할 수 있는건 아니며, 대기업이 꼭 좋은 직장인 것도 아니다. 평생 직장은 없으며 알바만 해서 충분히 먹고 살 수도 있다. 결혼은 안할 수도 있고, 남자가 집안일을 할 수도 있는 것이며, 아이는 낳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모든 변화를 부모와 조부모 세대에게 설득하는 동시에, 나 스스로가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되는데에 시간이 걸렸다.


괜찮은 대학을 나오긴 했는데 원하는 대기업에 들어갈 수 없었을 때, 철없던 나의 패배감은 생각보다 컸다. 다행인건 그 때부터 지독하게 '고민'이라는걸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진로와 돈벌이와 삶에 대해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해서. 그러면서 나름대로의 삶의 철학과 가치관이 만들어졌고, 또각또각 내 길을 밟아오고 있다. 그리고 나는 현재의 내 모습에 꽤나 만족하고 있다. 10년 뒤의 내가 지금과 같이 '내 삶에 만족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게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성공이다.


아직 숙제는 많이 남아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보다 두배는 더 남은 내 삶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이며, 파격적일 수도 있는 나의 행보를 또 어떤 식으로 설득시킬 것인가. 능력있으면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라면서도 내 친구들이 낳은 아이를 보면 '손주 타령'을 하는 엄마를 보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그래도

누가 뭐래도,


빛나라 청춘,
누군가는 그댈 보며 맘 속에 별을 심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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