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당연한' 희생은 없다
이 글은 아직 명절에 내맘대로 놀러 다닐 수 있는,
전을 부치러 시댁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낼 모레면 프랑스 파리로 도피할,
28살 미혼 여성이 바라본 명절에 대한 글입니다.
모두 '부디' Happy holidays-
명절이 달갑지 않은지 꽤 됐다. SNS에는 추석이 되기 전부터 '불편한 질문을 하는 어른들 대처하는 방법'이 큰 호응을 얻고 있고, 인터넷 포털에는 벌써부터 며느리들의 한탄이 줄을 잇는다. 뉴스 곳곳에서는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독거노인들과 소년소녀가장들의 쓸쓸한 명절나기가 조명됐다. 어른이 되면서 바라본 세상에는 명절로 즐거운 이들보다 즐겁지 못한 이들이 더 많아 보인다. 우리 집 명절도 그랬던 것 같다.
엄마는 외며느리였다. 독실한 천주교 집안이었지만 제사와 차례는 뻑적지근하게 치러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가진 친가 때문에 근 20년간 엄마는 명절 노동자가 되어야 했다.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 가족들이 즐겁게 지낼 수만 있다면 일 년에 두 번 그까짓 노동쯤 못할쏘냐고, 엄마는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대 많은 아버지 세대가 그러하듯 우리 아빠는 비뚤어진 가부장 사고에 갇힌 사람이었고, 엄마의 희생을 너무나도 당연시했다. 사위의 도리는 모른 척하면서도 며느리의 도리에는 핏대를 세우는 아빠 때문에 명절이 되면 엄마는 항상 행복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보는 나와 내 동생도 행복하지 못했다. 우리가 머리가 크면서 이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시작했을 때, 명절은 이미 가족의 갈등을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되고 있었다.
많은 부부들이 명절에 심각한 갈등을 겪는다. 명절이 지나면 이혼율이 급증한다는 뉴스는 이제 식상할 정도다. 갈등의 표면적인 원인은 '여자들에게 집중되는 고된 노동'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불합리성'에 있다. 남편은 TV 보며 띵가띵가 놀고 있어도 며느리니까 남편의 조상을 위해 힘들게 명절을 준비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에 수반되는 모든 노동을 즐거이 감수해야 하며, 하루아침에 출가외인이 되어 명절날 부모도 맘 편히 보러 갈 수 없다는 케케묵은 주장들. 그 어떤 이유를 갖대대도 비합리적이다.
그동안 비뚤어진 가부장제의 선봉자들이 줄곧 말해왔던 "이것이 전통이고 유교사상이다"라는 논리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대체 누굴 위한 유교 사상이며, 유교 사상의 본질이 정말 이러한 것이었는지도 의문이고, 유교든 전통이든 이렇게 갈등을 조장하는 비합리적인 사상은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 맞다. 만약 바꾸지 못할 바엔 그냥 따르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전통 따르다가 가정이 분열되면 무슨 소용이냔 말이다.
그래도 주위를 살펴보면 많은 가정들이 변하고 있다. 건강한 사고를 가진 신세대 시부모님들이 많아지면서 명절 노동의 거품도 빠지고 조상을 기리면서 산 사람들도 즐거울 수 있는 바람직한 명절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집들이 많다. 사실 시대를 내려온 관습과 사상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고맙다'는 진심 어린 말 한마디라도 해보는 것이 어떨까. 우리 집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사실 '고맙다'는 한마디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엄마가 참을 수 없었던 건 고된 노동이 아니라 이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아빠의 태도였을 테니까.
세상에 당연한 희생은 없다. 티끌만한 호의라도 상대방이 날 위해 해준 희생은 숭고하고 고마운 것이다. 하물며 본인 부모, 조부모, 그 이상의 조상들을 위해 아내가 베풀어준 수십 년의 희생은 진심으로 고마워야 하는 것 아닐까. 조상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 산 사람들의 안녕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당신의 명절은 진정 '안녕'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