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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피디 Jan 27. 2018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 여행을 하고 글을 쓰는 일이다. 너무나도 운이 좋게 나는 그 두가지를 할 수 있는 곳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 엄청난 행운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배부른 소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매번 이야기 한다.

"회사 돈으로 여행 다니니까 진짜 좋겠다" 또는 "와, 나도 그런데서 일하면 소원이 없겠다"

심지어 우리 회사 페이스북을 팔로우하는 사람들조차 '이 회사는 진짜 꿀이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정말 좋은 조건에서 일하고 있구나' 싶다가도 서러움이 불끈 올라온다. 약간은, 아니 많이 억울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금융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는데, 회사의 장기적인 비전에 따라 사업이 확장되면서 항공과 호텔 분야의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함께 하고 있다. 애초에 이 회사가 나를 스카웃할 때부터 '금융 PR 경력이 있고, 여행 콘텐츠를 쓸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핀테크에서 언론홍보 업무를 하면서 브런치에는 여행기를 쓰고 있던 나를 제격이라고 생각한 대표님 덕분에 면접도 패스하고 회사에 합류했다. 그 후로 정말 정신없이 7개월이 지났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개인 브런치에 글을 두달이나 못 쓸 정도로.


항공과 호텔 분야의 콘텐츠 중 '직접 경험하고 쓰는 리뷰'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해외에 비행기를 타고 나가 호텔에서 잠을 자야하는 일이 많다. 바로 이것이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대목이다. 비즈니스석을 타고 비싼 호텔에서 며칠씩 지내다 오는 것. 사람들이 보는건 딱 여기까지다.


리뷰는 비행기를 타고 호텔에서 잠만 잔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번의 항공과 호텔을 취재하기 위해 우리는 며칠씩 정보를 수집하고, 기획과 콘티를 짜고, 현장에서는 수백장의 영상과 사진을 찍는다. 호텔의 체크인은 보통 오후 3시이고, 객실부터 로비 수영장 피트니스센터 비즈니스센터와 같은 기본적인 부대시설을 다 촬영하고 나면 밤 10시. 저녁을 제 시간에 먹어본 적은 한번도 없다. 잠시 요기를 하고 밤에 찍어야 하는 건물 외관과 바 등을 촬영하고 객실로 들어오면 밤 12시. 찍은 자료를 정리하고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조식 및 현장에서 찍는 리뷰 영상을 촬영하고 나면 체크아웃이다. 다시 다른 호텔로 이동해서 똑같은 일정을 반복한다. 항공은 더 긴박하다. 몇 시간이 되지 않는 비행 시간동안 계획했던 모든 사진과 영상을 찍어내야 하니까. 이런 살인적인 출장에 인원은 보통 두명, 많아야 세명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그랬구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하는 일이 이렇게 힘들어요'가 아니다.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어디 있겠나. 남의 돈을 버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그나마 나는 좋아하는 일을 힘들게 하고 있으니 괜찮은 축에 속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타인의 고통을 아무렇게나 재단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굉장히 불쾌하다. 남들이 "너 하는일 진짜 꿀이다"라고 말할 때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 일은 놀러다니는게 아니며 생각보다 힘들다고 이야기 해도 돌아오는 반응은 똑같다. 애초에 나를 이해할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처럼.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정서적 폭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보통의 기준에서 '부러운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고통에 대해선 무서우리만큼 부주의하다. 그들이 가진 것을 나는 가지지 못했다는 박탈감은 언젠가부터 그들에게 상처를 줘도 무방하다는 이상한 권리 의식으로 변했다. 모르는 사이에 나도 그랬을거다. 나는 얼마나 예민하고 조심스러웠나. 내 기준에서 부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해서 그들의 힘듦에 대해 맘대로 재단하지는 않았는지, 그 짧은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었는지.


샤이니의 리더 종현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맘이 아팠던건 '수고했다고 해달라'는 마지막 한마디였다. 남들이 보기에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그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 '고생했다'는 공감, 토닥거림, 위로 였다는 사실이 나에겐 적잖이 충격이었다. 화려해 보이는 아이돌을 보면서 나도 흔히 이런 말을 했었지. 쟤네는 어린 나이에 저렇게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서 좋겠다고. 저 정도 벌 수 있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참을 수 있을 거라고.


이런 비공감의 한마디들이 모여 한 사람의 영혼을 좀먹어 간거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현재진행형이라는 것도. 그 강도가 작든 크든 간에.




얼마 전 기자를 만나 어떤 일을 한다고 소개를 했는데 처음으로 이런 말을 들었다.

아이고. 힘드시겠어요. 좋아보여도 보통 일이 아닐텐데.


눈물 날뻔 했다. 공감과 위로의 한마디의 힘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 어쨌든 나는 계속 일을 한다.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지만 스스로 힐링하면서 이겨내는 수 밖에. 대신 타인의 고통에는 더 예민하고 조심스러워지는 내가 되는걸로. 사람은 이렇게 경험으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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