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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피디 Sep 23. 2017

"가족 같은 회사? 그게 가능해?"

새로운 방식의 동기부여

새로운 회사에 온지 벌써 세달.

시간이 정말로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생각보다 일이 되게 많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스트레스는 적어졌다. 일의 양과 스트레스는 비례 관계가 아니라는걸 느끼는 요즘이다.


야근이 많아지고 일이 힘들어졌는데도 맘이 편해진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봤다. 이렇게 빠르게 새로운 회사를 사랑하게 된 이유도.



우리 회사 목표는 5층 사옥을 짓는거야


지금 회사는 되게 특이하다. 스타트업 한복판에 있었던 나에게는 굉장히 낯선 환경이다. 끊임없이 매출 목표를 공유하고, 업계 사람들과 소위 '네트워킹'이라고 부르는 인맥 쌓기에 열을 올려야 했던 환경에서 무인도로 온 기분.


네트워킹에 노관심인 우리 대표님의 관심사는 '이번 휴가 때 누구는 어딜가니까 어떤 맛집을 추천해줘야지' 또는 '회사에 원두가 떨어져 가는데 스타벅스에 한정판 원두가 나왔으니까 그걸 사서 다들 먹어보라고 해야지' 내지는 '청담동 다운타우너 아보카도 버거가 짱 맛있으니까 이번주엔 누굴 데리고 가서 먹어야지' 이런거ㅋㅋㅋㅋ(물론 우리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이 0순위고)


하루는 대표님이 심각한 얼굴로 전체 회의를 소집해서 이런 질문을 하셨다.


땡땡 대리, 우리 회사의 목표는 뭐라고 생각해?


스타트업 마인드를 갖고 있는 나는 당연히 '연간 매출 몇 억' 또는 '엑시트'를 생각했다. 그런데 대표님은 정말 웃음기가 하나도 없는 얼굴로 말했다.


우리 회사의 목표는 5층 사옥을 짓는 거예요.

1층 문을 비행기 출입문처럼 이렇게 밀고 가는걸로 만들까 생각도 하고 있고...(블라블라)

그 사옥을 제주도에 짓는건 어떨까? (블라블라)


대표님 이사님 직원들과 먹은 점심. 대표님 차까지 끌고 밥을 먹으러 가는 일이 매우 흔하다. 처음에는 대표님이 일대일로 밥먹자고 해서 심각한 면담인줄 알았는데 그냥 밥이었음.

나에게 가장 중요한건

우리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거예요


응..? 뭐야.. 비행기 출입문...? 장난해?


처음엔 농담인줄 알았다. 이게 월요일 아침에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전직원을 소집해서 발표할 내용이야? 그런데 대표님은 누구보다 진지했다. 대표님에게는 5층 사옥을 짓는 것이, 그리고 그 5층 사옥을 지을 때까지 우리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게 진심이라는걸 3개월 동안 대화를 해보고 깨달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표님의 이런 마인드가 내 맘을 참 편하게 해준다. 이전의 회사들에서 나는 언제나 내쳐질 수 있는 존재였다. 회사라는 곳이 당연히 그렇지 않나. 회사가 자선단체가 아닌 이상 성과를 내지 못하는 직원을 거둬들일 필요는 없다. 그래서 나는 항상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회사를 사랑해서라기보다는 나의 밥벌이를 위해서, 쓸모를 잃지 않기 위해서. 극단적으로는 잘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는 일을 대하는 태도가 좀 달라졌다. 입사 과정은 엄청 까다로워도 직원이 되면 그 사람들을 끔찍하게 아끼는 대표와 이사님을 보면서, 단 한번의 실수나 잠깐의 슬럼프로 내가 잘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됐다.  회사가 나를 버리지 않을거라는 믿음, 내가 어필하지 않아도 나의 성과에 대해서 알아서 보상을 해줄거라는 믿음(실제로 그러하다)이 생기니 더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여러분이 아니면

이 회사가 아니어도 되는 사람입니다


이전에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항상 플랜B를 마련해두고, 회사가 날 버릴 수 있는게 당연하듯이 나도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회사가 있으면 옮기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생각을 할 일 없이 '5층 사옥을 지을 만큼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게 됐달까. 왜냐면, 우리 대표님이 5층 사옥을 짓는 날까지 나와 함께할거라고, 그 곳에 데려갈거라고 믿으니까.


흔히 직장인들이 가족 같은 회사에 치를 떠는 이유는 회사가 필요할 때만 가족을 운운하는 이중성 때문이다. 정작 챙겨줘야 할 때는 나몰라라 하면서 일 시킬 때는 가족이니까 너무나 편하게 시키는 아이러니. 가족이라면서 연봉 협상 때는 성과를 후려치고 성과급 시즌이 되면 회사가 어렵다는 감성팔이 하면서 정작 자기들은 엄청나게 챙겨가는 구조. 그럴바엔 일관성 있게 거리를 두는게 낫다.


내가 너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게 환상이라도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그 어느 때보다 동기부여를 받고 있고,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으니까. 나 스스로에게 생기 있는 시간을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다.




이런 시나리오라면,

이런 의미의 가족이라면,

가족 같은 회사도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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