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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피디 Nov 24. 2017

회사에 칼퇴령이 내렸다

비상이다

회사에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6시 퇴근 프로젝트.



어느 날 갑자기 전체 회의를 소집하신 대표님. 갑자기 '중대발표'를 하신단다.


11월 1일부로 전직원은 6시에 무조건 퇴근합니다


응? 네? 이건 또 무슨 소리...


6시 이후에는 회사의 전기 지원이 없습니다.
내가 가장 마지막에 나갈거예요.
책상 옆에서 컴터 끌 때까지 기다릴거임


오마이갓. 전체 회의에서는 언제나 파격적인 이야기를 하시는 대표님이지만 이번 발표는 갑 오브 갑이었다. 별안간 칼퇴령이라니.


사실 우리 회사는 원래가 심한 야근을 하는 회사가 아니다. 늦어도 9시 전에는 다들 퇴근하는 편이다. 아주 간혹 10시가 넘는 경우도 있지만. 나 같은 경우 '야근하지 않기 위해 낮에 엄청나게 빠르게 일하는 스타일'이라 그 바쁜 대행사에 다닐 때도 웬만하면 야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 오고는 팀장이기도 하고 내 욕심도 많아져서 매일 1~2시간 정도는 초과근무를 하곤 했었다. 그래도 일반적인 회사의 야근 강도에 비하면 애교 수준 아닌가. 그런데 이것마저 하지 말라니.


칼퇴령을 내리면 모든 직원이 만세를 부를 것 같지만 막상 회의 분위기는 축제가 아니었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했을거다. 대우가 좋은 대신 일당백을 해야 하는 우리 회사의 특성상 업무 강도는 비교적 센편. 한 사람이 하루에 해내야 하는 일의 양이 많다.


6시까지 일을 다 못 끝낼텐데요...
절.대.


대표님은 예상한 반응이라는듯이 말을 이어갔다.


나도 오랫동안 고민하고 내린 결정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칼퇴를 하면서도 최고의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라 믿어요.


칼퇴령은 창업 초기의 목표였다고 한다. 언젠가는 꼭 칼퇴하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생각하며 처음엔 밤 11시를 훌쩍 넘었던 퇴근 시간을 매년 한시간씩 줄여 여기까지 왔다는 것. 직원들을 굳게 믿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대표님의 진심 어린 말씀에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쌓여있는 일에 대한 걱정은 가시지 않았다. 모 팀장님이 손을 들었다.


근데 만약에...
배째고 야근을 하면요?


하긴... '일이 너무 많다'는 핑계로 30분 1시간 정도 더 하겠다고 하면 회사로서는 방도가 없는 것이 아닌가? 직원이 야근을 하겠다는데!


그러면 월급에서 까겠습니다.
내 월급을 바치면서까지 야근을 하고 싶으면 하삼^^


헐. 직원들은 말했다.


진정한 '열정페이'네요. 하하하.



칼퇴령, 그 후의 이야기


이렇게 우리는 칼퇴를 시작했다. 칼퇴령이 내리면서 아침 출근 시간도 9시와 10시 중에 선택할 수 있게 됐다. 10시 출근자들은 7시에 퇴근을 한다. 점심시간이 1시간 30분이니 우리는 하루에 7시간 반을 일하는 셈이다.


누군가 몰래 야근을 하는걸 방지하기 위해 퇴근은 다함께 한다. 6시가 되면 6시 퇴근자들이 문 앞으로 모인다. 한 명도 빠짐없이 나와야 나갈 수 있다. 참으로 웃지 못할 광경이다.


1) 칼퇴령이 내려진 이후 우리는 '집약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나부터 팀회의를 줄였다. 정말 다 모여야 할 때 외에는 메신저로 일을 분배하고 끝. 잡담시간, 간식시간도 줄었고 집중력은 높아졌다. 3주를 해본 결과, 신기하게도 우리팀의 업무 진행 속도는 이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 무엇보다 일하는 마인드가 달라졌다. 직원들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CEO를 보면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할라야 안 할 수가 없다. 이 좋은 문화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생산성이 감소해서는 안된다는 스스로에게의 압박도 한 몫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해내겠다'는 전투력으로 열정을 쏟게 됐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6시에 칼퇴하면서도 효율성이 최고인 회사'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해 더욱 열중하게 됐달까.


3) 저녁이 있는 삶, 책을 읽기 시작했다. 칼퇴령이 시작될 무렵 회사에는 100권의 책이 배달됐다. 직원들에게 주문 받은 책들이었다. 칼퇴령 발표가 있기 전이었는데 모두 대표님의 빅픽처였으려나. 여튼 읽고 싶었던 책도 생겼고 읽을 수 있는 시간도 생겨서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하게 마음의 양식을 쌓고 있다. (이렇게 브런치도 쓰고요)



어떻게 보면 우리 대표님은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을 참 잘 알고 있는듯 하다. 구성원의 동기 부여가 일의 효율성과 회사의 운영에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도.


이런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한 밤.


(우리회사 간식창고 깨알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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