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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피디 Feb 09. 2018

"엄마, 나 회사에서 보라카이 보내준대"

단체 여행 아니고, 단 둘이서

"타닥타닥"


타자 치는 소리가 고요하게 울려퍼지던 어느 날. 대표님이 또(!) 전직원을 소집하였다.




칠판에는 직원들의 이름이 하나씩 적혀져 있었다. 주니어 사원들 말고 대리급 이상의 직원들만.


'뭐지? 연초니까 멘토-멘티를 정하려는건가. 사원들의 회사 생활에 도움이 되기 위해?'


이거슨 지극히 일반적인 회사에 3년 있다가 이곳으로 온 전혀 크리에이티브하지 못한 나의 생각일 뿐이었다.


자, 2018 해외여행 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꺄!!!!!!!!!!!!!!!!!!!!!!!

천장을 뚫을듯한 직원들의 함성소리가 울려퍼졌다. 사실 전혀 기대를 못했다. 원래 매년 해외여행을 보내주는걸로 알고는 있었지만 작년보다 올해 직원이 거의 두배가 늘어난데다 새로운 브랜드의 런칭으로 지출이 많았다. 그래서 올해는 해외여행 복지가 사라질 수 밖에 없겠다 생각했고, 직원들도 그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런데 이런 서프라이즈라니.


여행은 2인 1조입니다. 지금부터 여기 적힌 선배 직원들은 함께 여행갈 후배 직원을 뽑습니다.


우어어. 2인 1조라니. 솔직히 '회사가 보내주는 해외여행'이라는 것이 직장인의 입장에서는 100퍼센트 달갑지만은 않은게 사실이다. '업무의 연장선'이 될 위험 때문. 비싼 소고기를 먹어도 회식은 회식일 뿐 외식이 될 수 없듯이 대표님, 이사님, 부장님, 팀장님이 모두 함께 가는 여행은 순수한 여행이라 할 수 없는 법이다. 밤이 되면 눈치 봐서 상사와 '술 한잔'을 해야 하며, 동남아 모든 곳에는 한국인 관광객을 위한 노래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런데 후배 사원과 단 둘이 가는 여행이라니! 이것이 진정한 여행이고 복지 아닌가. (물론 나랑 같이 가는 사원은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굉장히 기뻐했으니 아닐거라 믿어ㅠㅠ)


후배 직원들은 이 통에서 공을 하나씩 뽑습니다.
공 안에는 가게 될 도시와 '비즈니스 항공권' 여부가 적혀 있습니다


오마이갓! 흥분의 도가니였다. '잘 뽑아야 된다'며 선배 직원들은 장난 어린 협박(?)을 하고, 후배 직원들은 '아 어떡해'를 외치며 발을 동동. 로또 당첨보다 더 떨리는 순간.

꺄악!!!!!!!!! 팀장님!!!!!!! 비즈니스!!!!!!! 비!!!!!즈니!!!!!쓰!!!!!!!어머 어뜨케!!!!!!!! 저 비즈니스 첨 타바옄!!!!!!! 헐!!!!!! 보라카이!!!!!! 팀장니임!!!!! 보라카이에옄!!!!!!!!!!!!!!!!

(실제로 이것보다 시끄러웠다)


그러하다! 내가 뽑은 이쁜이 사원은 보라카이로 가는, 심지어 비즈니스 항공권으로 가는 공을 뽑았다. 아이고 내새끼 장하다.


도시들은 다양했다. 사이판, 세부, 유후인, 마카오, 삿포로, 오키나와 등. 이코노미를 타는 직원들이 반, 비즈니스가 반. 뽑기를 마치고 나자 질문들이 쏟아졌다.


언제 가나요? 몇박인가요?
숙박도 지원해주시는 건가요?
가서 먹을 것도요?


여행은 기본 4박입니다.
모든 경비를 회사가 지원합니다.
남은 11개월 동안 한 달에 한 팀씩 떠날거고, 여행지는 다 내가 가본 곳들 중 좋았던 곳들로 정했어요. 숙박은 좋~은 호텔로 보내줄거임.

대신 항공이랑 호텔 사진 찍어올 것!


아이고.. 아무렴요.. 호텔 사진 백장도 찍어올 수 있습니다. 충성충성. 이렇게 우리 회사 직원들은 본인들의 개인 휴가 외에 한건의 해외여행을 더 할 수 있게 됐다.




서른이 넘는 직원이 거의 없는 젊은 회사의 수장인 대표님은 항상 말했었다. '가장 예쁜 나이인 직원들에게 그 시간을 누리게 해주고 싶다'고. 넉넉한 연봉을 챙겨주고 칼퇴를 시키면서 우리에게 돈과 시간을 보장해주고 싶어하는 그 마음을 알기에, 직원들의 충성도는 높을 수 밖에 없다. 실적이 잘 나오면 방 안에서 기쁨의 소리를 지르고, 영하 15도에 자진해서 야외 촬영을 나가는건 임원진이 아니라 직원들이다. 회사가 퍼주려고 하는데 열심히 안 할 직원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2030 밀레니얼 세대가 원하는 '동기부여의 방식'이다.


나는 6월로 정해졌다. 가서 어떻게 재미나게 놀지 계획을 세워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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