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피디 Feb 06. 2018

항공권 세 개를 결제했다

20대의 마지막, 발악이다!

신년행사를 올해는 비교적 빨리 끝냈다. 일년의 휴가 계획을 확정하고 항공권을 끊는 일. 회사의 휴가 방침이 '통보제'로 바뀐 뒤로 휴가를 계획하는 마음이 더 편해졌다. 내가 가진 연차 내에서 휴가 날짜를 정하고 이메일로 '통보'하면 그만이다. 그것까지 모두 클리어!


작년 11월 타이페이에서

4월에는 도쿄, 7월에는 방콕, 9월 추석 연휴에는 동유럽으로 떠난다. 도쿄는 혼자 '카페투어'를 컨셉으로 쉬다 올 작정이고, 방콕에는 남동생 제대 기념으로 가족들과 다녀올 예정이다. 동유럽에는 작년에 파리를 함께 다녀온 맘 잘 맞는 동생과 함께 프라하와 부다페스트를 즐기다 올거다. 항공권 세 개를 끊고 한껏 상기된 얼굴로 엄마에게 통보 비슷한 보고를 올렸다. 엄마는 말했다.


누굴 닮아 그렇게 싸돌아 다닌다니


여기에 격달로 출장이 있고, 회사에서 연 1회 보내주는 해외여행이 있다는건 아직 말 안했는데 엄마. 심지어 이번 해외여행 뽑기에서 보라카이를 겟했다고! (우리 회사는 1년에 한번 직원 해외여행을 보내주는데 이번에는 뽑기로 도시와 비즈니스 항공권 여부를 정했다. 나는 운좋게도 정말 가보고 싶었던 보라카이와 비즈니스 항공권이 당첨됐다. 아싸)

작년 10월 후쿠오카에서
작년 10월 후쿠오카의 한 호텔에서

말은 그렇게 해도 엄마는 내가 이렇게 '싸돌아다니는걸'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엄마는 워낙 천성이 소심하고 겁이 많아 여행을, 그것도 여자 혼자 해외여행을 다닌다는걸 상상도 못했단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고 즐기고 싶은 욕망은 언제나 있었는데, 현실의 팍팍함과 천성의 벽에 갇혀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으로만 남았단다. 그렇게 못 이룬 꿈을 딸이 원 없이 즐겨주고 있으니 엄마는 내심 만족스러운가보다. 내가 멋지다고 자랑스럽다고도 했다.

작년 5월 홍콩에서
작년 8월 오사카의 한 호텔에서

돈은 언제 모으려고 저렇게 밖으로 돌아만 다니느냐는 외할머니의 핀잔에 방패막이가 되어주는건 언제나 엄마였다.

젊었을 때 다녀야지 돈 모으는게 무슨 소용이야! 지금 모아봤자 얼마나 떼돈 모아 부자가 될거라고. 다녀. 원 없이 다녀.
작년 3월 교토에서
작년 3월 오사카에서
응 엄마^^ 이미 세개나 결제해써^^


그런 엄마의 쉴드에 더더욱 부응이라도 하듯, 나는 올 한해 정신 놓고 여행을 다녀볼 계획이다. 내 20대의 마지막 목표는 여권의 남은 종이들에 도장을 꽉 채워보는 것이다. 도장만 꾹 찍어오는게 아니라 인생 경험도 꾹꾹 담아 오는 것이다.  


행복은 더 진하게 느끼고 인생의 참맛은 더 깊이 맛보게 되기를. 그래서 앞자리가 바뀌는 그 순간에 "늙었다, 아쉽다"는 한탄보다 "후회 없이 놀았다"는 끝내주게 멋진 말을 내뱉게 되기를. 진짜 서른의 향기가 나는 여자가 될 수 있기를.

작년 10월 프랑스 에트르타에서
작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엄마, 사주집에서 그러는데
나는 많이 다니면서 역마살을 빼야 한대.
안 그러면 나쁘대. 안 좋대.


엄마가 항상 내편인걸 알면서도 혼자 좋은걸 보러 다니는게 내심 미안한 딸은 이렇게 명리학의 힘(?)을 빌어 스물아홉의 객기를 정당방위로 포장해본다. 쏘쿨한 우리 엄마.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다.


누가 뭐래니.


헤헤. 그래도 엄마. 나 아니었으면 7월 방콕도 가자고..가자고..가야지..만 외치다 끝났을거야! 그래서 내가 그냥 결제 해버렸어^^ 담달부터 카드값만 꼬박꼬박 나한테 납부하면돼^^(퍽)


아...! 신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트릿푸드부터 미슐랭까지 '파리 맛집 추천 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