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피디 Aug 24. 2016

스타트업의 복지를 만들다

지각 안 하면 상 주는 회사

보통 '스타트업'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들이 있다.

파격적인 복지제도, 자유로운 출퇴근, 개방적인 분위기 등등.

나 역시도 스타트업을 선택하면서 이런 것들을 기대했었다.



이렇게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오는 카페 같은 회의실에 앉아 정장이 아닌 캐주얼 차림으로 수다 같은 회의를 한다거나. 꼭 내 책상이 아니더라도 사무실 곳곳에서 자유롭게 앉아 일한다거나. 출퇴근도 휴가도 직원의 자율에 맡긴다거나. 그런 되게 혁신적인 거. 그런 거.  



그런데 입사를 하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나는 물었다.

복지제도는 뭐가 있나요?


마케팅과 회사 운영 전반을 맡고 계신 우리 팀장님 曰,

아 맞다 복지제도! 뭐하면 좋겠어요?


에?-_-


그렇다. 그런 것이었다. 복지는 없던 것이었다. 이제부터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참으로 좋은 회사다. 세상에. 내가 복지를 만들 수 있다니. 하하하.


그때부터 팀장님과 나는 회사의 복지제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회사가 아직 신생이고, 고로 돈도 별로 없는 데다, 체계가 잡히기 전에 너무 개방적인 제도는 무리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모든 사항을 추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직원들을 위한 소소한 복지들을 늘려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장 먼저 도입한 건 바로 돌체구스토! 아침마다 회사 옆 카페로 원정 가던 직원들을 불쌍히 여기어 커피머신을 구입하고 캡슐도 다양하게 구비해 놓는다.


출근은 조금 여유 있게, 9시 반으로! 아침 시간 30분 여유가 이렇게나 행복한 것인지 이전엔 몰랐더랬지ㅠㅠ


지각하지 않은 자, 3만 원을 받으리! 내가 생각하는 가장 놀라운 복지. 한 달 내내 지각을 한 번도 하지 않으면 말일에 3만 원 상품권을 받을 수 있다.


Happy birthday party & 5만 원 상품권! 생일에 케이크만 있으면 섭하다. 5만 원 신세계 상품권을 선물로 준다.


매주 월요일 아침식사 제공! 매주 월요일에는 샌드위치 또는 김밥 등의 간단한 조식을 제공한다. 주간 미팅을 진행하면서 냠냠 ♬


회사 근처 피트니스 50% 지원! 체력은 국력이다. 특히 우리 회사에 감량을 목표로 애쓰고 계시는 분들이 많아서(우리 팀장님부터) 헬스비를 무려 반이나 지원해준다.


매달 한 권씩 지식충전, 도서 구입비 지원! 직무 서적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한 사람당 한 권씩 읽고 싶은 책은 모두 살 수 있다.


간식은 먹고 싶은 걸로 언제든지! 매주 한번 총무님이 간식을 주문하기 전에 먹고 싶은걸 얘기하면 언제든지 OK. 우리 회사 사람들은 컵누들을 좋아해서 항상 쟁여 놓는다.


이외에도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훈련비 지원, 야근 택시비 지원, 원하는 노트북 구매 가능 등의 복지 사항을 만들었다.



사실 이번 브런치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 이만큼 복지가 좋아요'라는 것은 아니다(실제로 그렇게 뛰어난 복지도 없고요). 복지제도와 같은 어떤 제도를 만드는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1. 스타트업에서 의견을 말하는 건 권리가 아니라 '의무'


초기 스타트업에서는 결정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그 결정은 구성원의 합의에 기반한다.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 문제는 물론이고 아주 사소하게 월요일 아침 메뉴를 정하는 것까지도 서로 이야기를 해서 결정한다. 복지를 만들면서도 수차례 이야기 나눴었고, 당장 이번 주에는 연봉체계 수립과 채용절차 변경에 대해 두 시간의 논의를 가졌다. 회사의 시스템을 완벽히 갖출 때까지, 그리고 갖춘 후에도 우리의 이러한 의사소통 과정은 계속될 것이다.  


아직 보수적인 기업문화에 익숙한 나는 처음에 이 과정이 어쩐지 조금 불편했었다. 어느 정도는 세팅이 되어있는 환경에서 상명하복의 프로세스만을 겪다가, 모든 상황에서 나의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는 것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을 잘 하지 않는 성격 탓인지는 몰라도 무엇이든 '헛소리'라도 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입사 6개월에 접어드는 지금에서야 왜 무슨 말이라도 하라고 하는지 이해가 간다. 말을 하려면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 하고, 생각을 하려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 끝엔 이해가 있고 그때서야 의문점이 생긴다. 그리고 의문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기업은 가장 많이 성장한다. 그래서 스타트업에서 각 구성원의 발언권이란 권리라기보다 의무에 가깝다.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 것은 회사의 성장을 나몰라라 하는 것과 같을 수도 있으니까.



#2. 단단한 껍질을 뚫고 스타트업人으로 거듭날 것


스스로 반성을 많이 했다. 스스로 스타트업에 맞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이곳에서 내가 가져야 할 오너십(Ownership)의 크기에 대해 짐작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내 직무인 PR 일을 하면서도 자꾸만 이야기를 들으려고만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면서 깨닫는 바가 많았다.


'맞고 틀린 것'을 찾으려 했던 지난날에서 벗어나 눈치 보지 않고 내 생각을 지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더불어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이렇게 구성원의 '생각'을 자양분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다.



+물론, 우리 회사 복지도 더 많아지면 좋고^^^


매거진의 이전글 힘든 시간은 모두 값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