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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기억 혹은 추억

by 혜령


바르셀로나.

기차를 타고 짐가방을 선반에 올리고 느긋하게 앉아 눈을 감았다.

이러면 큰일이 나는 거였다.

내리는 역에서 가방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일단 내리고 보니 한국에서와 같이 편안하게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던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테이블에 휴대폰이며 지갑이 올라와 있어도 아무도 손대지 않는 한국이 아니다.

남의 것도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면 지켜주고 무의식적으로 같이 감시해 주는 끈끈한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각심을 놓쳐버린 대가는 혹독했다.

고가의 카메라와 새로 산 가방 그리고 모자와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

그야말로 갈팡질팡 하다가 역무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했고 시내의 경찰서로 가서 신고하라는 말만 들었다.

길고 긴 가다림. 또 기다림. 내 가방을 잃어버렸으니 그들이 급할 일은 아니다.

거의 3시간의 기다림과 진술서와 상황설명이 끝나고 막연한 희망이 적힌 서류만 쥐고 거리로 나왔다.

하루 일정을 날려버린 황망함과 저녁이 스며드는 노을이 더욱 배고파지는 거리로 나섰다.

다행히 적당한 식당을 찾고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맛있어 보이는 문어요리와 빠에야를 주문했다.

아직도 바르셀로나는 다시 가지 못했다.

그래도 그 저녁 여권과 현금을 지켜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었던 람블라스 거리가 반짝이며 꿈에 보이곤 한다.

재회를 기다리는 애증이 스며있는 기억 혹은 추억의 어디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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