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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by 혜령


아름다운 시간에는 절박함이 배어있다.

모든 것이 움직이고 손에 잡힐듯한 세월도 빠져나가는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흩어진다.

유년기의 두려움은 죽을 듯이 어두웠고 개울가에 들꽃은 친구처럼 다정했다.

스므살이 멀기만 하던 시절에는 창창한 꽃대가 성가시기만 했고 , 이름만 화려한 이십 대의 시간은 흩어지는 불꽃처럼 허무하기도 했다.

조금은 느슨해진 서른 즈음엔 혼자 하던 전쟁의 부서진 틈에서 막살아 나오던 때였다.

전리품도 있고 부상도 입었지만 살아있어서 감사했고 행복했다.

마흔이 눈앞에 당도했을 때 차라리 설레는 심정이었다 불혹이라고 하지 않는가.

조금 편하게 놓아버릴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망설이는 시간을 아끼자는 생각이 시작되던 쉰의 가을은 달려드는 매혹들 앞에 쓰러지기로 했다. 가벼워지고 야윈 영혼의 부피는 날듯이 투명해졌다.

떠나고 돌아오고 다시 떠나는 삶이 성이 되어 우뚝 섰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지 않아도 망설이는 시간을 떨구지 않아도 살다 보면 다 알게 된다.

살아내는 데는 그다지 많은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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