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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by 혜령


그렇게 생각했다.

미지근한 것들이 어떤 상황을 만나 뜨거워지는 것.

그것은 만남이기도 하고 이별이기도 해서 어떤 이유로 그러한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이 쓸쓸하고 외롭다가 오히려 이별뒤에 오는 여백을 만나 더운 숨으로 살아난다.

다만 모든 흔적과 기억을 담담한 그릇에 넣어두고 보는 일이 남았을 뿐이다.

가시가 되어 찌르면 아파하고 꽃이 되어 향기롭다면 추억한다.

어제와 다른 바람이 분다면 오래된 벽을 가진 성으로 오른다.

흩어지기를 주저하는 돌틈과 흙이 경계를 이룬 정원 어디쯤, 지는 해가 걸려 눈을 멀게 한다.

성벽에 기대어 울리는 기타 소리는 기억을 멀게 하고 멈추어 떠나지 못하는 나는 골목 끝에 서있다.

뒤를 돌아보면 사람의 등과 거꾸로 선 시간이 보인다.

잔잔하고 낯선 여백이 가시도 되고 꽃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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