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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

by 혜령

여행지에서 꼭 사과를 먹는다.

평소에는 찾지 않다가도 여행을 떠난 곳의 아침에는 사과가 필요하다.

미명의 새벽이 낯선 실루엣으로 잠을 깨우면 더듬어 사과를 씻어 한입 베어문다.

비로소 아침이 시작되고 잠을 깨고 일어난다.

미각과 청각과 생각을 깨우는 그 시간이 그날의 일정을 시작하는 의식이 되었다.

그런 시작 그런 달콤한 긴장감이 여행을 부르는 꿈에 한몫을 한다.

이른 시간에 문을 열어 온 동네를 버터냄새와 커피 향으로 채우던 파리의 골목 빵집.

새벽에 추위를 떨치고 기차역으로 나온 나를 반겨준 체르마트의 따뜻한 프리첼.

급하게 환승하는 배고픈 이방인에게 안성맞춤인 기차식당의 뜨거운 수프 한 그릇.

추억은 꿈이 되고 다시 꿈을 찾아 길을 나서고 추억을 품고 돌아온다.

어떤 식으로든 꿈을 가진다는 것은 생을 밝히는 일이다.

생각하고 계획하는 모든 일정이 달콤한 흥분이 되는 사건이다.

일어나는 것도 설거지도 세탁도 모두 그 행복한 일정을 위한 대가라면 아무 불만 없이 다 할 수 있다.

그것마저 더불어 즐겁기까지 하니 꿈이 갖는 힘은 어마어마하다.

그것은 내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 없던 아우라를 만들고 사라져 가던 생기를 끌어올린다.

살아있게 살고 싶게 만든다는 것이다.

시간은 샤워기 끝에서 퍼지는 물처럼 쉴 새 없이 퍼부어 마음을 바쁘게 하지만 또한 뜨거운 물에 하루의 피로를 내려 보네는 개운함도 있다.

꿈을 갖고 그 핑계로 힘을 만들고 살아내는 삶이 고맙고 기특하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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