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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by 혜령

성벽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구시가는 조그만 산에 올라앉은 카이저 성을 안고 있다.

등산은 아니고 약간의 경사를 즐기며 산책하는 기분으로 오르면 오렌지색 도시를 물들이는 노을의 눈부심에 만나게 된다. 이토록 충만한 저녁이 짙어가면 경사진 바닥에 삼삼오오 자유롭게 앉아 맥주와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친근하다.

뉘른베르크의 크리스마스마켓이 아름답고 유명하지만 시즌이 아닐 때는 시장을 겸한 광장일 뿐이다.

수공업이 발달했던 이곳은 성입구에 수공예인의 거리가 남아있다.

역에서 내려 큰 거리로 나오면 성안으로 들어가는 쾨히니 문이 있고 성벽을 따라 걸으면 인권의 길이라는 하얀 기둥의 조형물이 나온다. 숙소 옆이었으므로 매일 지나며 보었던 곳이다. 유엔 인권조항을 각기 다른 언어로 기둥에 적어 놓았다.

와인창고가 있는 다리와 박물관 다리에서 보이는 운치 있는 건물이 저녁 산책 길을 조화롭게 한다.

성벽 안의 시가지와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는 강, 그리고 언덕의 카이저 성은 뉘른베르크를 더욱 아늑한 도시로 추억하게 한다. 역에 가까워 거점 숙소로 정했고 산책하기에도 좋은 아름다운 저녁을 맘껏 누리게 되었다.

뉘른베르크체크아웃ㅡ이런 날이 왔다.

늘 그렇듯이 올까 하는 의심과 기대가 공존하는 순간이 현실로 나타났을 때의 보람과 안도감과 또 서운함 같은 것이 교차하는 아침이다. 새벽에 일어나 준비하고 충분히 쉬고 떠날 수 있다.

일주일 동안 내려다보며 이것저것 기웃거렸던 타이 음식점은 결국 한 번도 못 갔다. 아파트형 호텔이라 주방이 갖추어져 있고 가지고 온 음식 재료도 남은 것이 있어서 가볍게 해 먹다 보니 갈 일이 없었던 것 같다.

긴 여행에서 식사비가 차지하는 비용이 크다 보니 절약하려는 마음도 반이상 작용했다. 반드시 주문해야 하는 음료나 팁문화도 여행자에게는 부담이 될 때가 있으니까.

여행의 말미에는 어차피 외식을 하는 기간이 일주일 정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독일이 식재료 값이 저렴하다는 생각을 한다. 소고기 안심으로 고추장찌개를 해도 재료비는 만원 정도이다. 두세 명이 나누어 먹을 수 있다. 라면을 먹어도 셋이면 오만 원이 넘는 이곳의 물가가 주부의 습성을 일깨운다. 물병에 넣어 가지고 온 쌀도 요긴하다. 저녁에 밥을 지어먹고 다음날 아침에는 누룽지를 끓여 따뜻하게 먹는다. 두 끼를 해결하는 셈이다.

알뜰한 재미에 외식은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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