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와 '결국' 사이
무엇이라 말을 시작해야 할까.
매듭을 지어야 하는 시간이다. 봄꽃은 여전히 환한 얼굴을 보이고 있다. 목련을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아프고 절망했던 여러 해 전의 봄을 시작으로 이 봄도 연분홍 회한의 꽃비가 내린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도망가고 싶던 십 년의 시간은 나를 달리게도 하고 멈추게도 하더니 결국은 혼자 남겨둔다. 이 날을 기다렸던가.
무엇이건 할 수 있을 것 같이 홀가분한 이 외로움을 기다렸던가.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출렁이는 공간은 무엇인가.
무엇을 마주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분노와 아니면 비겁한 세월이 너무 두껍게 얼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길을 나서는 방향은 정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