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또는 핑계
강을 건너고 다리를 지나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건너고 난 다리가 부서지는 일은 인생에서도 일어난다.
어쩌면 스스로 다리를 무너뜨리며 길을 나섰는지도 모른다.
다시는 못 돌아가려고.
안 돌아가려는 결심과 못 돌아가는 회한이 동주하는 이 문장은 화려하고도 아프다.
나를 남겨두고 떠난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통한의 눈물로 수장되어도 죽지 않는다.
그 시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아마도 나는 그 시점에 지금의 나를 위해 사진을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그 밤의 베네치아가 오늘의 나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품고 나타났다.
시간을 거슬러 사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갈 수 있을 때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요동친다.
훗날 정말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상황을 만 나리라는 것을 너무도 확연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잘 만들어진 핑계가 되어 마음속에 뿌리를 내린다.
남은 것이라고는 그런 고집뿐이니 그것이라도 잡고 버티어 살아볼 요량이다.
다 실행하지 못하고 끝날수도 있는 삶의 시간을 남겨두고 계획만 무성하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지도를 보고 가이드북을 사 들이고
틈틈이 뒤적인다.
항공권과 숙박료와 체류비를 짐작해 보며 행복해하거나 절망하거나 그러면서 긴 겨울을 즐기기도 한다.
바르샤바의 가을은 딸아이의 학술회로 같이 간 곳이다. 그 거리의 아련한 풍경과 여유로운 감성이 사진 속에 살아있다.
다시 그곳에 돌아갈 수 있을까.
그 골목 그 공원을 지나 작은 광장이 끝나는 곳에 퀴리기념관을 다시 갈 수 있을까.
운이 좋다면 십 년 이상 남은 시간 중에 그런 행운이 다시 올 수 있겠지.
노르망디의 몽생미셸도 에르르타도 그런 아쉬움과 바람으로 선명하다.
문득 무겁게 다가오는 '다시는 못 돌아가'라는 말이 새로운 우선순위를 만든다.
다시 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기회의 시간을 하루하루 건너며 아름다운 시간으로의 재회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