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켜지 않는 시간
내가 무엇인지 몰랐을 때
그랬던 것 같다.
가만히 떠오르는 기억이 열리면 읽던 책을 두고 창으로 가까이 가서 밖을 본다.
해가 지는 하늘이 무수한 의미를 보여주는 시간을 찬찬히 녹여 먹는다.
미미한 고독과 근원적인 슬픔의 맛이 배인 구름이나, 놀이터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소리가 시고 아프다.
다 내려놓은 해가 기어이 지고 나면 그림자 되는 노을이 바삐 따라 진다.
소멸의 얼굴로 마주 바라보는 하늘이 이윽고 어둠이 된다.
가로등이 켜지고 자동차 불빛이 환해지고, 오히려 창 안이 어두워지는 시간이 되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알맹이 같은 것이 가슴을 채운다.
발바닥이 아플만큼 서 있었다는 것을 느끼고 조용히 주저앉는다.
고요와 어둠과 혼자의 삶이 온전히 주어진 시간, 불을 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