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

잃은 것과 얻은 것

by 혜령


베토벤의 산책길.

그가 느꼈을 소외감과 들리지 않는 불편함과 두려움을 조금은 식혀주었을 작은 숲길을 걸었다. 빈의 중심에서 트램으로 30분가량의 거리는 꽤 멀게 느껴졌다. 경제 상황이나 그의 마음이 빈에서 조금 멀어지고 싶게 했는지 모르겠다. 조용하고 푸른 그 길에 오르는 동안에 남이 감지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아픔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 청력은 모든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점점 불안하고 벗어날 길 없는 절망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낸 것 일지도 모른다.

독일의 본에서 태어났으나 오스트리아 빈에서 그의 날개는 힘을 얻었다. 천재의 길이라고 단순화시키기에는 인간적인 고뇌와 육체적인 고통에 지속적으로 시달리고 극복하는 과정이 녹록지가 않아 보였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어린 시절의 거칠고 엄격한 교육이나 젊은 혈기가 불러온 사회적 부적응이 그를 고독으로 몰았다. 사랑 또한 순탄치 못해 단 하나의 혈육인 딸의 보살핌조차 받지 못한 아버지였다. 그야말로 딸을 딸이라 부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니 인간의 본성인 혈육의 사랑이 결핍된 외로움과 상실감이 컸다. 조카에게 애정을 기대었으나 그마저 절망으로 끝났다.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사형 선고였고 언제 집행될지 모르는 그 끝을 잡고 끝없이 절망하고 고뇌했으나 태연히 죽음을 맞이하겠노라 울부짖기도 했었다. 그 소리가 그 울림이 산책길의 스스한 바람에 맺혀있는 듯하다.

그 길을 걸으며 인간과 신의경계가 얼마나 혹독한 태풍의 눈인가를 절감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베토벤에게는 수많은 후원자들이 있었고 그중 파스콸라티 남작은 특별했다. 창을 열면 빈의 정경이 보이는 건물의 5층을 언제가 이용할 수 있게 베토벤에게 배려했던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교향곡 5번 <운명>을 작곡했다. 지금도 창밖으로 빈대학과 넓은 거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베토벤은 빈에서도 수십 번 이사를 했고 여기저기 그의 흔적이 있었지만 이곳 파스콸라티 하우스를 보고 싶었다. 운명이 문을 두드린 현장을 보고 싶었다.

그가 살던 19세기의 모습은 광장이 더 넓었고 전원 풍경이 보였다고 한다. 슈테판 성당 뒤쪽에 있던 빈대학이 이곳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불행했을지도 모르는 인간남자로서의 베토벤은 음악가로서는 천재였고 빈의 사랑을 아낌없이 받았으며 마지막 가는 길 또한 아낌없는 애도를 받았다.

1만 명 이상의 시민이 참석해 빈의 큰 사건으로 남았다.

빈은 그를 사랑했고 존경했으며 충분히 예우했던 것이다.

파스콸라티 하우스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주변을 걸어보며 그와 교감하고 싶었다. 천재보다 인간으로 그의 상처에 공감하고 싶었다.

오르는 길은 반질한 돌바닥이었고 시내 쪽으로 작은 오솔길 같은 내리막 길도 있었다. 흠뻑 운명을 들이키며 뜨거운 햇살을 받았다.


오후 3:00 - 오후 4:00

2023년 5월 22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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