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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비가 와도 좋아

by 혜령

베네치아 숙소를 찾아 들어갔을 때 고대 궁전을 보는 듯 낡고 어스름한 공기에 조금 놀랐다. 만지면 빠지는 샤워꼭지에 더 놀라고 침대 위의 캐노피는 불안한 높이에서 먼지를 안고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가시지 않았다. 음. 그래도 역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였고 한적한 골목이었으나 으쓱하지는 않았고 몇 걸음 걸어가면 번화한 식당과 사람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있는 곳이다. 기필코 베네치아의 야경을 보겠다고 결심한 나에게는 세상 안전한 위치였던 것이다. 비가 내리는 산타루치아 역을 빠져나오던 장면은 아주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바다로의 입장. 배버스를 타고 한 바퀴 돌기로 하고 전망이 좋은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한동안 비 내리는 바다와 속력을 내는 배와 물에 떠 있는 정류장에 몰리는 사람들을 보며 베네치아를 실감한다. 섬으로 향하는 보이지 않는 길이 불빛하나 없이도 화려했다. 자연과 물이 허락한 길을 인간이 누리는 이 도시의 얼굴.

찰스부 르그에서 베네치아까지는 6시간 정도의 시간을 기차로 달린다. 그래도 갑자기 이 도시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순종하고 날을 잡아 감행했다.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었다. 3일간의 일정이 금방 불어 올린 풍선처럼 둥둥 떠오르기 시작했다.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쯤이었고 산타루치아 역에서 간단한 샐러드와 조각피자로 식사를 한 후 열심히 돌아다닌 보람이 있다. 비가 내리는 베네치아의 풍경도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바다가 안아주는 오후의 시간을 흠뻑 즐기며 내 인생의 첫 베네치아를 맞이하고 있다.



그 후...

갈아타려는 역에서 3분 남기고 플랫폼 번호가 바뀌고 눈앞에서 차를 놓치지.

12시의 오류에 빠져 정오와 자정을 두고 관람시간을 넘기고 결국 입장권을 두 번 사게 되지.

기다리던 버스가 바로 와서 달려가 탔는데 반대방향의 길로 달리는 낯선 타국의 밤도 있어.

그런 날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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