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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밤
아드리아해의 미로
by
혜령
Jul 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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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어찌 되었건 그들은 살아남았고 백만 개 이상의 기둥을 바다에 세우며 삶을 건설했다.
광장에 서 있을 때조차 출렁이는 빛과 사람들 사이로 천년의 밤이 흐른다.
골목을 돌아 길을 찾아도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유는 내가 길치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즈넉한 벽을 끼고 조용한 동네입구에는 번잡한 관광지의 소음을 벗어나 쉬고 있는 고양이가 있다.
몇 백 년씩 시간을 품고 앉은 건물과 이끼가 오른 수로의 벽이 매끄러운 곤돌라의 미로여행을 바라본다.
400여 개의 다리가 길을 이어주고 수많은 운하로 별이 떨어진다.
혼돈이라고 당황하기에는 매력이 더 많은 미로의 도시이다. 문득 오페라 극장이 등장하고 과일을 파는 시장이 보이고 이윽고 산마르코 광장에 도달하는 밤이면 탄식의 다리를 바라보며 바람에 몸을 맡긴다.
황금빛 조명아래 밤의 음악이 울리고 늦도록 고백에 목마른 사람들의 건배가 이어진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고 머리는 알람을 울리지만 마음은 서너 갈래 물길 위를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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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이런 일이 있어도 좋다. 불현듯 떠나고 조용히 돌아오는 나를 보는 일. 새로운 한살을 시작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일상의 파도를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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